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있듯이 자식은 어딘가 모르게 부모를 닮게 되어 있다. 말하는 것은 물론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 거수 일 투족 부모를 닮아간다는 말로서 자식은 이처럼 부모를 통해서 보고 배우는 가운데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물론 주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창세기 1장에는 인생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이루신 사역에 따라 창조되었고 그분의 성품과 생김새를 닮아서 지어졌다는 말이다. 이에 마태복음 5:43-48은 우리가 그분의 온전하심을 닮아서 온전해질 것을 교훈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온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분의 온전하심을 닮아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온전하려면 내 힘으로 하지 말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와 같이 명령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아버지가 친히 하시는 명령으로서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누가 보더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원수 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를 핍박하는 사람에게 보복을 해도 모자랄 텐데 어떻게 그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느냐 하는 말이다. 아무리 사랑과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이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악으로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보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벧전 2:23에서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신다"고 말씀한다. 심지어 성경은 악을 행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구제할 일이 있으면 구제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할 때 내 힘으로 하려 해서는 안되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함으로서 가능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이 허락하시면 원수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고 그들의 비난에 대해서 정중하고 친절하게 답하되 욕을 욕으로 갚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3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이는 곧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예수를 인생에 주인 삼을 수 없다는 의미로 성령을 통해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아버지를 찾는다 할지라도 그분의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면 아들로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가르치면서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교훈하신 바 있다. 이는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 부패하는 세상이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라는 말이다. 나아가 우리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 되시는 주님을 비출 때 사람들이 우리를 그분의 아들로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온전하려면 세상을 닮지 말라
마태복음 5장에서는 세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세리와 이방인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고 있다. 이들은 세상을 뜻하는 대명사로서 철저히 세상인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처럼 세리나 이방인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신이 잘 아는 형제에게만 문안을 드리기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리나 이방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로 인정하실 수 없으며 주님으로부터 오는 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들은 예수를 모르지만 주변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엉터리 같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약삭빠르게 처신하면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해 타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그렇게 처신하지 않으시는데 햇빛과 비를 주는데 있어서 악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 가리지 않고 골고루 허락해주신다. 그분이 창조하시고 그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나눌 때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말로서 그분은 악인에 대해서도 관대함과 오래 참음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온전히 닮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심령에 자리 잡기 쉬운 세상을 짝하기 원하는 성품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육신이 좋아하는 것을 쫓아다니는 성품을 버리지 못한다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기에 바울은 고전 13:11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그는 자신의 마음이 옥토 되어 믿음이 장성함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버리겠노라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우리도 육신에 속한 사람이 아닌 신령한 사람이 되고 영적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죄를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심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거듭나기를 간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처럼 온전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품어라
그렇다면 주님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그분은 이 땅에 찾아오시는 순간부터 공생애의 삶을 이루는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다. 태어나시는 일도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일도 오직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루셨다는 말이다. 주님은 이렇게 함으로서 모든 일에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이루고자 했는데 어렵고 힘든 형편에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순종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믿는다는 사람들조차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한없이 인색하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욕심과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원수가 되기도 하는데 이처럼 세상의 이익을 쫓는 가운데 주님을 멀리하다보면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생들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구속해 주셨다. 그러한 이유로 십자가 안에서는 원수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이웃에 대한 사랑만 나타나는데 로마서 5:10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될 것이라"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주님을 통해서 화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원수 갚는 것까지도 그분에게 맡겨 드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로서 원수 되었던 이웃을 품으면서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땅을 사는 동안 그분의 마음을 품고 화목의 복음을 전함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보다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마태복음 5:48절에서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교훈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에는 깊은 진리가 있는데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주고 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하늘 아버지를 닮아 가는데 맞춰져야 하는데 아버지의 성품을 본받되 그분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본받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바울이 골로새서 3장에 말씀하는 하늘의 지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으며 그분의 온전하심을 나타내기가 어려운 일이다. 오직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함으로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지혜를 따를 때 그분의 온전하심을 닮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서 그분이 기대하시는 온전함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