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라는 또 다른 이단
그리스도인은 항상 미혹당하기 쉬운 이단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단의 특징은 그 정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정통 복음이나 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있다. 이에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미혹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많은 이단 사상들이 출현한 바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포섭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라고 본다. 심지어 신학을 공부하고 전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러한 이단에 미혹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사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 이러한 이단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이단에 빠져들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이름 하여 음모론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회의 위기 상황이나 인간의 한계 상황에 직면하여 유포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을 주관적으로 이해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할 때 평소에 간과되었던 부분에 대해 과다하게 집중하면서 가정과 비약이 덧붙여져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특별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건의 진행에 있어서 개연성에 집착하는 가운데 사건 발생 시에는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지하는 대로 작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되었다고 믿으면서 이러한 말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지극히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결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의사당을 공격하고 인명살상을 주도하는 전대미문의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 백신 반대 운동을 벌이거나 코로나 병균이 무해하다는 등의 음모론을 퍼뜨리면서 의학계와 방역 체계에 심각한 훼방을 놓기도 한다. 치명적인 전염병의 현실에도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거나 방역을 방해하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미국의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세력과 결탁하며 공권력의 집행을 방해하거나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음모론자 하나냐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목회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구약에 나오는 요나처럼 선지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날 세상이 타락하고 혼돈으로 빠져드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믿는 그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선지자 노릇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현대 목회자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28장에 보면 두 사람의 선지자를 만나게 되는데 예레미야와 하나냐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통치를 예언했는데 그는 나무 멍에를 만들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라 외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반면에 하나냐는 이를 반대하고 나섰는데 그는 하나님이 2년 만에 끌려간 포로를 돌이키고 바벨론으로 가져간 성전의 기구들을 되돌려줄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른 말씀을 주시는데 "쇠로 된 멍에를 만들어 백성에게 다시 증거하라"는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하나냐와 백성 앞에서 이를 온전히 증거하고 하나냐가 올해 안에 죽을 것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때 하나님의 심판이 신속히 이루어졌으며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2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냐 선지자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도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년 만에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이 지어낸 말이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킨 하나냐는 백성들이 회개하고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말았다. 죄를 범한 왕과 백성들이 회개를 해야 했지만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없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죄를 범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공연하게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하나냐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음모론을 적극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앙인들이고 복음 사역자들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들 가운데에는 미국 기독교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복음주의 목사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이 알면서도 이와 같은 음모론을 옹호하고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거짓된 메시지를 전했던 하나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람들을 혼돈에 빠트렸던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선지자의 직무를 회복하라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역사적인 격변기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침체되고 이단이 성행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서 인류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어려운 시국일수록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선지자들이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선지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다수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시대적 사명 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영적 고갈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오랫동안 영적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일련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음모론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무력감, 상대적 박탈감, 낮은 통제감, 높은 불확실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음모론에 더 쉽게 빠질 수 있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영국 켄트대의 심리학자 Cichocka 교수에 의하면 비현실적으로 부풀려져 있는 과도한 자존감이라 할 수 있는 Narcissism (자기 사랑)이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더 큰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나타나고 있는데 Christian Post 신문에 따르면 49%의 미국 개신교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통해서 음모론에 대해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을 듣는다고 한다. 목회자 가운데 13%는 교인들이 음모론을 공유하는 것을 듣고 있느냐는 질문에 적극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중에도 25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동의할 가능성이 61%로 더 높게 나타났으며 백인 목회자들 (50%)이 흑인 목회자들 (36%)에 비해서 교인들이 음모론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더 자주 듣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복음주의를 대표한다는 백인들이나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 이러한 음모론에 더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음모론이라는 것이 그 어떤 이단 사상 못지않게 교회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믿는 사람들은 시대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는 영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같이 자신의 말을 통해서 신앙인과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올곧게 전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음모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에 나타나는 문제와 어려움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게 돌리려 하는데 있다고 본다. QAnon으로 대표되는 음모론만 보더라도 허무맹랑할 따름인데 자신을 이러한 세계관에 가두어놓고 진정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고 믿는지 냉정히 생각해볼 일이다. 이제는 복음으로 돌아가서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부르짖던 세례요한을 본받아 시대적 선지자의 직무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