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나무재단이 최근 학교폭력 재연(再燃) 현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푸른나무재단은 학교폭력의 피해로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인 설립자 김종기 명예이사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시민사회에 알리고 학교폭력 예방과 치료의 목적으로 설립한 청소년 NGO다.
김종기 명예이사장은 과거 한 콘서트에서 "저는 크리스천인데 하나님께 기도도 할 수 없었다. 원망이 들었고, 아들 대신 복수를 하고 싶었다"며 "그런데 아들을 괴롭혔던 아이들을 만나 반성문도 받았는데, 그 아이들이 몸을 떨며 부끄러워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제가 보복을 하면 다른 악순환을 낳게 되고 불행의 씨앗이 끝이 없는 것을 알게 됐다. 다 내려놓고 용서를 하고 왜 아들이 그토록 힘들게 죽었는지, 그 못다한 죗값을 내가 치르는 고생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단체를 설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푸른나무재단은 이번 입장문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은 평생을 가는 정신적 고통"이라며 "고통의 치유에 다가가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되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가 병행되어, 긍극적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푸른나무재단의 입장문 전문.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은 평생을 가는 정신적 고통이다.
고통의 치유에 다가가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 되어야하고,
그를 바탕으로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가 병행되어,
긍극적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학교폭력의 재연(再燃): 시즌2'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학폭 시즌1이 학교현장에서 재학생들 간에 이루어지는 현재 상황의 학교폭력을 말한다고 하면, 학폭 시즌 2는 재학시절에 발생한 학교폭력이 5~10년이 경과한 이후에 동일한 피해자와 가해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학교폭력을 말한다.
결국 시즌2의 상황을 재연시키게 된 것은 초중고 재학시절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야기시킨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이다. 이런 시즌 2의 재연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냥 시기심이나 아니꼬움으로 이런 재연이 가능하지 않다. 깊은 정신적 상처와 심각한 트라우마가 그 근원이다. 피해자는 이런 시즌2의 재연으로 그 깊은 상처를 치유받을 기회를 가져야한다. 마음의 상처 특히 타인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아야하는 것은 이 세상 누구나 누리고 존중받아야 할 최대의 가치이며 권리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 학교폭력의 아픈 기억으로 정신의 상처를 입어 인생의 황금같은 시기를 멍들어 산 젊은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누구라도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 폭력으로 얼룩진 기억이 있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아픔으로만 덮어둔 과거의 기억, 5~10여년을 침묵해 오던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간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하나 둘씩 용기를 내기 시작한 둣하다. 개인적인 상처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사건을, 유명해진 가해자와 의도하지 않게 마주하면서 부정적 심리반응이 일어났고 이를 용기 내어 폭로하며 일생의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대중의 호응이 크게 일고 있다.
최근 연달아 연예인 및 운동선수 등 유명인들의 과거 학교폭력이 드러나고 있다. 유명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가해자의 모습이 드러나자,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억지로 외면하거나 억압해왔던 분노와 증오 등의 복잡한 부정적 감정을 토로하게 되고야 말았다. '가해자는 저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고 있는데, 피해자인 나는 혼자 아파하며 고통 속에 살아요.' 라며 피해자들은 절규한다.
가해자였다고 알려진 유명 연예인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소속단체의 영구적인 제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내기도한다. SNS에서는 가해자인 유명인을 비판하며 '손절'하는 '캔슬컬쳐'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일각에서는 아쉬움도 표출한다. 철모르던 청소년시기의 한때 잘못으로 구만리 같은 앞날의 삶을 모두 망치게 하는 것도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그것이다. 가해자 유명인을 마녀사냥 식으로 내몰면 안되지 않느냐하는 견해이다. 피해자의 과거 한을 풀자고 한때 가해자였으나 현재는 아닌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위태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말도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아픔을 도외시 하지 않으면서 가해자 유명인도 함께 보호하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꼭 필요하다.
학폭 시즌2 현상의 긍극적 해결점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가 함께 공생공존하는 윈윈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즉 피해자는 만성의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 상태를 벗어 날 수 있어야하고, 가해자는 엄청난 심적 부담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죄의식 탈피는 용서와 사과로부터 시작되고, 우정과 인간성의 회복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푸른나무재단은 학폭 시즌2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을 천명하고, 그런 기조 위에서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을 둘러싼 새로운 형태의 담론을 시작하고 있다. 십수년의 세월을 홀로 아파해야 했던 피해자와 한순간 드러난 잘못으로 모든 성취와 업적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가해자. 이미 벌어져 되돌이킬 수 없다. 엎질러진 물이다. 시간을 돌이켜 학교폭력이 발생했던 학창시절 그 현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서 단숨에 해결 할 수 있으련만... 그런데 과거로 돌아 갈 길은 없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 사죄하고 용서 받고 그래서 함께 화해함으로써 우정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기적처럼 보이지만 결코 기적이 아니다. 이런 기적적인 화해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현재의 학교폭력 발생 현장 즉 시즌1 현장에서는 이런 사과와 용서, 회복의 과정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 푸른나무재단은 그런 일을 지금 27년째 해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학교폭력 시즌2 현장을 맞으면서 이일에 새로운 각오와 자세로 임하고자한다.
학교폭력 시즌2 현상에 임하면서 우리 재단은 향후 다음과 같은 활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학폭 시즌2에 대한 푸른나무재단의 입장>
-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은 평생을 가는 정신적 고통이다.
- 고통의 치유에 다가가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 되어야하고,
그를 바탕으로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가 병행되어,
- 긍극적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우리 재단의 재학생 중심의 '화해클리닉'의 기능을 학폭 시즌2 현상에도 확대 및 강화해나간다. 학교폭력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피해자를 치유하고 가해자를 선도하고자 한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한 용서와 회복을 위한 시스템을 후기 청소년(청년), 성인까지 확대할 것이다.
둘째, 시즌2(학교폭력의 재연)를 예방하기 위한 시즌1(학교현장에서 재학생들간의 일어나는 학교폭력)의 학교폭력예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시즌1은 필연적으로 시즌2를 함축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재확인 하게 되었다.
가해자도 이제는 시즌2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가해자 자신과 학부모는 시즌1에서 충분한 화해가 이루지지 못한다면 평생의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셋째, 사회 전 구성원이 학교폭력예방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범국민 캠페인을 시작한다. 우리는 비폭력 캠페인 및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가정, 학교, 사회의 구분 없이 전 국민이 적극적 예방자로 나서기를 희망한다.
학교폭력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그 시점, 그 현장에서 예방되고 회복하여야 한다.
지금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화해와 용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에 우리는 학교폭력 미투와 관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및 전문가의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고 지금의 논란이 가지는 함의를 도출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 대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2021.02.17.
푸른나무재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청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