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교수(월드미션대학교)
최윤정 교수(월드미션대학교)

근간에 TV 방송에서 다룬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인 공분을 사면서 '정인아미안해' 운동이 들판의 불처럼 번지고 있다. 16개월짜리 입양아가 죽어간 정황은 참담함과 끔찍함 그 자체다. 인간으로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더구나 이 입양가정은 부계와 모계 모두 독실한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반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동학대는 사실 입양가정 뿐만 아니라 친부모 슬하에서도 빈번한 일로 나타나고 있다. 아동학대가 양부모의 악행에서 기인한다는 단시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인간 저변에서 어렵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을 때 다음과 같은 점이 위험요인으로 대두된다. 

우선 개인적 특성이다. 아동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있을 때 또는 가해부모의 정신적 육제적 질병, 결혼생활의 불만족, 본인의 학대 경험, 잘못된 신념과 양육태도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그 밖에 가족의 기능적 특성으로 가정폭력 및 부부간 불화, 많은 가족 및 자녀간의 짧은 터울, 조실부모 등의 이유를 들 수 있고, 사회경제적 특성으로는 가정의 생계 위기, 사회적 억압과 차별, 아동체벌에 대한 문화적 인식, 사회 자원의 결여 등을 들 수 있다. 어찌됐건 오늘날 많은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에 대한 담론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소설가요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사람은 '공감'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과 거리가 먼 타인일수록 그 사람이 아무리 큰 고통 속에 있다하더라도 측은지심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한 사진을 보고도 그것을 없애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도덕적 괴물의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실제로 정인이 사건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많은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참혹한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연민하며 많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죄성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가? 수전 손택은 계속해서 말한다. 사람들은 되려 이웃의 고통에 대해 연민하며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만족감과 자부심에 빠진다. 그리고 관망자의 입장에서 웬만한 충격적인 소식과 이미지가 아니면 금세 무감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타인의 고통은 잠시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도덕적인 결단은 결코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그녀는 일침을 가한다.

정인이 사건 이전에도 많은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 때마다 공분이 이는 듯 했으나 다중들은 일상의 무게에 눌려 분노의 게이지를 쉽게 끌어내리곤 했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는 철저히 인간의 몫이다. 하나님이 그 부조리를 알아서 해결해주시지는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제들을 만들어왔고 법이든 제도이든 하나의 기제가 나오기까지 많은 희생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역사는 곧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건재한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정인이가 희생되어야 아동학대의 부조리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지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정인이의 고통에 공감하며 연민하고 있다. 과연 여기에서 희생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이내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고 또 다른 희생을 자초할 것인가? 도덕적 결단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사회의 법과 제도적 장치만큼은 이번 기회에 제발 확실히 해두자. 정인아 미안해, 어른들이 정말 미안해! 

 월드미션대학교 최윤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