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중학생 시절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중 2 늦가을 무렵 학교 동아리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했다. 은평천사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돌봄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내내 천사원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밥도 먹고 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갈 무렵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며 유난히 살갑게 굴던 열두 살짜리 소년이 자신에게 약속을 하나 해달라며 귓속말을 걸어왔다. 조금 있으면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성탄절 이브에 자신을 꼭 다시 보러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마 약속을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자 나는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소위 철이 들고 나서야 나는 그 때 한 약속을 겨우 기억해냈다. 해마다 소년은 나 말고 몇 사람에게나 더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또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을까? 그 중에서 몇 사람이나 약속을 지켰을까? 나처럼 약속을 하고 돌아서선 이내 잊어버린 사람은 없었을까? 그러는 사이에 소년의 마음엔 불신의 굳은 살이 박이고 자신과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상처로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히지는 않았을까?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소년과 새끼손가락을 걸던 장면이 아스라이 떠오르곤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때의 경솔함은 후회를 넘어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깊은 반성으로 다가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 성탄절은 구약에서 예언한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2천년 전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더라면 인간은 어찌될 뻔 했는가?
한 아기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선언한 사명을 공생애 동안 다 이루어내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뿐만 아니라 그가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과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하늘에 오르실 것 등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 23:19) 언약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