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산다’는 건 익숙한 명제다. 그러나 이 말이 삶에 깊숙이 와 닿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한 적도 있다. 매일 죽음을 경험했지만 당당히 부활의 삶을 살아낸 바울.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바울, 도마, 베드로의 순교지를 돌며 부활의 의미를 되짚은 책 《부활》(규장)이 최근 출간됐다. 베스트셀러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와 영화 <제자, 옥한흠>을 연출한 김상철 감독이 공동 집필했다.
이 선교사는 몽골에서 7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2012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학교를 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부활이란 단순히 다시 살거나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된 관계 안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이라며 “부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을 이미 이 땅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이메일로 주고받은 그와의 일문일답.
Q. 책 《부활》을 소개해주세요.
A. 2018년 후반부터 기독영화 감독인 김상철 목사님의 다큐멘터리 <부활> 작업을 돕게 되었습니다. 부활이라는 주제를 공중파 방송에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일반 대중과 나눈다는 중요한 선교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선교가 아닌 한국교회를 위해서 드려지는 십일조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영화 제작에 함께 힘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말 이 작품이 MBC 성탄특집으로 방송된 후에 뜨거운 반응이 있었고 이 다큐멘터리 과정을 책으로 담기로 결정했습니다.
돌아보면 2006년에 첫 책 《내려놓음》을 내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사역의 문이 열렸습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의미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너머의 삶에 대한 분명한 확신 없이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 불가능함이 너무나 자명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한 바퀴만으로는 수레가 굴러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내려놓음> 다음 단계의 묵상과 메시지로 인도하고 계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Q. ‘부활의 확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A.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옆에서 들었고, 기적을 행하시는 현장에도 함께 했습니다. 또한 자신들도 예수님의 권능을 힘입어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쫓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그분을 통해 자신들이 이 땅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아인 건 인정했지만, 정치적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고 믿었습니다. 즉 세상에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분이 필요했던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가 십자가 지는 삶이었음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음에도 그들은 그 사실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 눈으로 경험하고서 이들의 삶이 180도 바뀝니다. 예수님 생전에는 두려워하고 의심이 많고 자기중심이었던 그들이 전혀 다른 복음의 용사들로 거듭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각자 선교지로 나가 사역하던 가운데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성령이 주시는 확증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된 부활이 실제한 일이고 또 우리에게 소망 가운데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 믿음의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담대함과 평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 나타난 여러 변화와 담대함을 추적합니다.
Q. 그럼 ‘부활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A. 우리에게 있어서 부활은 단순히 다시 살거나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된 관계 안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은 관계와 삶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부활의 삶이란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인데,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는 곳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스템이나 구조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계 방식이 우리의 관계를 덮어 버리고 주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 경험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짧은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 중 어떤 것들은 영원한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구원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고 부활을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의 삶에서 그것을 준비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면 그 순간부터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A. 다시 말하지만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되면 삶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초청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을 이미 이 땅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알아 가는데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게 되지요.
부활을 생각하면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것에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게 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학교와 건물을 세우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는 그것들을 들고 가서 설 수 없습니다. 제가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쓰고 설교하지만, 책이나 설교문을 들고 서지 못합니다. 내가 쌓아 놓은 업적이나 사역 리스트들을 가지고 서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도구이고 그릇이지 내용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하늘나라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압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쌓아갑니다. 그분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그분의 성품 그리고 그분과 쌓아간 특별한 추억의 관계 등은 부활의 삶을 채우는 중요한 내용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성장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요. 부활의 삶에 있어서 우리의 영원한 삶에 영향을 미칠 이 관계들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돌아보고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됩니다.
Q. 바울 순교지 터를 돌아보셨는데, 어떠셨나요? 특히 암 투병중인 천정은 자매와 동행하시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A. 책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었는데요. 한 가지만 나누자면, 사도 바울 처형터에 세워진 성당 맨 안쪽 후미진 부분 중앙에 큰 유화가 걸려있습니다. 바울의 잘린 목에서부터 피가 터져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눈과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암울하고 처절해 보이는 현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 위 천정 가까이에 또 다른 그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서 사도 바울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해 기다리시고, 그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천사들에 이끌려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에 제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 나오는 그의 고백에 기초한 그림이었습니다(딤후 4:6~8).
바울은 이미 자신의 삶의 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보았습니다. 죽음 너머를 볼 수 있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천장에 묘사된 그림을 보고 바울의 처형 장면을 다시 보니, 목이 잘리는 처절한 상황에 대한 묘사조차 더 이상 암울하고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그 고백을 현재 살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천정은 자매였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녀에게 어느 날 암이 찾아왔습니다. 암 투병으로 씨름하던 중에 그녀는 교회를 소개받았고, 성령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얼마 후 암이 사라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 어느 시점에서 암이 재발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75차 항암 치료를 마쳤습니다. 제가 만나본 그녀는 여전히 밝은 웃음의 건강한 표정을 한 젊은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윈 볼 외에는 그녀에게서 아픈 기색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찌 보면 살얼음판을 걸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상황이었을 터인데도 놀랍게 그녀에게서 죽음과 어두움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은 자매는 암 병원 병동을 다니며 많은 암 환우들을 위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암을 가장 오래 앓고 있고, 또 병원 생활도 오래 했기에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암 환자들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암은 제게 선물이고 죽음은 소망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매를 보면서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있으면 고통은 ‘우리를 영원의 열린 문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됨을 확인합니다.
Q. 이어령 교수님과의 인터뷰도 책에 실려 있는데, 그 분과의 만남은 어떠셨나요?
A. 이어령 교수님도 지금 암과 투병중이십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암과 더불어 죽음의 순간까지 믿음으로 살아내는 삶을 경험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은 사랑하는 큰딸 이민아 목사님을 암으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무신론자로 살아가던 이 교수님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해 준 딸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딸이 암에 걸려 고통하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당당했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믿음으로 죽음을 대면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의 입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묵상은 방대하고 치열했습니다. 원래 보좌진들이 영화팀에 당부한 바는 교수님의 건강을 고려해서 한 시간 이상의 인터뷰는 무리가 되니 인터뷰를 그 안에 마무리해 달라고 했지만 교수님이 세 시간 넘게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교수님은 평생 글을 쓰고 강연해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정작 노년에 영원한 세계에 입문하고 보니 그간 쓴 글 대부분이 자신의 자랑 이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죽음과 부활과 영생의 문제에 대해 묵상하고 그 세계를 그려보니 후대의 누군가도 이를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기에 그것을 일반인의 언어로 설명하고 후대에 남겨주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그렇게 열정을 다해 말씀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에 기다릴 것을 진지하게 풀어가는 그분의 노력을 보며 앞에서 인용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생각났습니다.
Q. 선교사님은 왜 안정적일 수 있었던 삶을 내려놓고 몽골 선교사가 되셨나요?
A.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시절, 코스타라는 유학생 집회에서 2년간의 단기 선교를 서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역지를 찾다가 졸업 후에 가족과 함께 몽골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던 중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 가정이 선교지에 있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그곳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생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몽골에서 8년차 사역하던 중 몽골 땅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전을 받고 그곳을 떠나서 2012년에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대학교와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일을 7년 반 사역했습니다.
Q. 인도네시아 선교사로서 앞으로의 선교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비전은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인도네시아가 현재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인데 그 순위가 내려가는 것과 인도네시아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서 이슬람권 선교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교육을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보고 그곳에 대학교와 기독교 초·중·고등학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권에 대학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대가 될 것을 믿고 그 일 가운데 좋은 팀을 만들어서 쓰임 받고자 하고 있습니다.
Q. 김상철 감독과 함께 책을 작업하시면서 느낀 점이나 칭찬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기독 영화를 만드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 일이 어렵고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겪어보니 재정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되는 일입니다. 김상철 감독님이 꾸준히 기독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비결은 그의 우직함 때문입니다.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버티고 한 발 한 발 가는 그 열심 때문에 옆에서나마 끝까지 도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분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보면서 작품에 대해서 신뢰하면서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을 보면서 한국 교계의 귀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Q. 끝으로 책 《부활》을 접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우리가 다시 살게 되어 수백만 년이 지난 어느 시점, 우리는 이 땅의 삶 가운데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한국 축구가 올해 성적이 어떠했는지, 또는 주식 투자로 어느 정도 손실을 보게 되었는지를 기억할까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누가 받았는지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우리의 영원한 삶에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의 횡포가 이 땅에 가득하고 두려움이 사람들을 휘어잡으려 하는 이 때에 부활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면 로마 시대 때 몇 차례의 전염병 유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원 후 165년에 로마 제국에서 세 명중 한 명꼴로 죽었고 251년에는 하루에 오천 명씩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병에 걸린 가족들을 길바닥에 내어던져 놓았습니다. 정부도 황제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로마 사람들은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병자들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생존 비율이 훨씬 높았는데 특별한 병 고침의 은혜를 입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가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명성과 함께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속히 늘게 되었지요. 결국 로마제국은 그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사랑을 실천한 기독교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동일한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삶을 살게 되면 가장 어두운 때가 새벽을 향한 소망을 따라 일하게 되는 때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