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손에 붙들고 있는 복음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복음의 방향으로 쉬지 않고 전진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애틀과 같이 세상적으로 풍족한 도시에 살다 보면 언뜻 복음전도와 같은 단어는 낯설게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상의 수많은 곳에서는 생명을 담보로 한 복음의 확장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이다. 최근 이곳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이 매년 2백만에 달한다는 기사가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아마도 수십년 뒤에는 기독교 인구가 무슬림을 앞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인구의 85%가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곳을 향한 기도는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직접 그리고 정확한 시간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는 1960년대 초에 인도네시아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계셨다. 특히 티모르 섬은 주요 관심 지역이었다. 어느 날 로테(Rote) 섬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요하네스 라투벨루라는 청년을 불러 환상 가운데서 티모르 섬에 가서 치유 사역을 하라고 명하였다. 비록 목회자였던 그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그를 반대했지만 이내 곧 그를 파송하게 된다. 말씀과 기도사역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라쿠벨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유 사역을 통하여 티모르 섬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말랑과 바투 지역의 한 성경학교에서는 1965년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학생들이 티모르 섬으로 전도팀을 만들어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회개의 바람이 일어났고, 주술과 우상을 섬겼던 이들이 온전히 그러한 것에서 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인도네시아를 추수할 준비를 하게 된다. 비록 식량의 부족과 정치적 구테타가 일어나 전국이 피바람 가운데 놓였지만 성령님의 발걸음은 쉬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러한 경제적 공항과 구테타를 통해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하나님 앞으로 향하게 하셨다.
그러던 1965년 9월 어느 주일 저녁 2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을 때, 2000년 전 오순절의 역사가 다시 한 번 더 일어났다. 길 건너편에 있던 경찰서의 화재경보가 울리며 불에 타오르기 시작한 교회를 위해 소방차를 불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성령의 불꽃이 교회를 뒤덮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방언을 하며 기도를 하였고, 그 주변에는 회개의 물결이 흘러 넘쳐 수많은 이들이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날 회개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평신도로 구성된 70여개의 전도단을 만들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신유와 기적의 은사가 늘 함께 하였으며, 특히 성찬식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밤에 산 길을 걸을 때 초자연적인 빛이 인도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오병이어의 기적은 물론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까지 일어났다. 이렇게 전도된 이들의 수는 수십 만명에 이르게 되었고, 조그마한 섬에서도 2만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주님을 영접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복음의 확장은 쉬지 아니하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던 인도네시아를 강타했던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는 이러한 부흥의 물결은 이미 성경 시대에 끝났다고 말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삶에 동일하게 들어 오셔서 쉬지 아니하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지금 인도네시아에 일어 나고 있는 '기독교의 붐'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많은 이들이 무슬림 사회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깨어 있는 기독교 리더들의 뜨거운 그 리더십은 식지 아니하고 내일의 더 큰 역사를 위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와 같은 성령의 바람이 시애틀에서 다시 한 번 더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러하기에 지금 시애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리더십'일 것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은 지금의 영적리더들에게 "너의 인생의 비전은 무엇인가?" "너의 심장은 누구를 위하여 울고 있으며, 너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너의 십자가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라고 묻고 있다. 당신은 이에 답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입술을 주목하고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