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예레미야 70년 예언과(렘 29장)과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3. 이스라엘 선교사역을 향한 한국교회의 부르심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땅 끝'선교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땅 끝' 개념이 이방인을 향한 원심에서 복음의 출발지인 구심점 예루살렘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선교시대를 맞이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교회는 원심의 이방선교와 함께 구심의 이스라엘선교에 새로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선물로 주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시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극동과 극서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다. 아시아는 '땅 끝'을 향하여 서진하는 복음의 마지막 반환점 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과 이스라엘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이룬 많은 나라들 가운데 선진국에 진입한 특별한 두 나라이다. 두 나라는 같은 해에 독립하였다는 역사적 공유점도 가지고 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해결해야 할 지역갈등(팔레스타인과의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의 과제)을 안고 있는 점에서 같은 시대의 역사적 동반자이다. 최근 들어 점차 증대되고 있는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역사적으로 한국은 반유대주의 경험이 없었다는 점이다. 서구기독교 역사는 그 자체가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반유대주의로 점철되어 왔다. 이스라엘 독립 이후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유대인교회가 '기독교인'이라는 명칭 대신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라는 뜻으로 '메시아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더구나 이차대전 중에 있었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는 나치정권에 의하여 자행된 만행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독일교회의 동조가 있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한국과 한국교회는 반유대주의를 경험할 기회조차 가지질 못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는 유대인공동체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영적으로나 민족적 정서에서 이스라엘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메시아닉교회들이나 유대인선교단체들이 최근 들어 한국교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사야 55:5은 반유대주의 정서가 없는 한국적 상황과 관련된 본문으로 해석된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라는 본문 내용에서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나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고이'(ywG)는 일반적으로 이방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단어가 단수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수('nations')로 번역하면서 그들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으로 몰려오는 만방(고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사 2:2-4).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나라가 이스라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아'는 단순한 정보차원의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앎이라는 점에서 '네(이스라엘)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대인 공동체가 없었던 한국과 같은 나라를 의미한다. 전 세계에 100명 이상의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94개국이다. 현재 유엔가입국이 193개국인 점을 감안할 때, 유대인 공동체가 없는 나라는 99개국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기독교적 영적 수준과 OECD에 속하는 경제력을 함께 갖고 있는 나라로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런 한국교회를 지금 이스라엘이 부르고 있고, 한국교회는 이제 그들에게로 달려갈 사명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