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21년 6월호 “The Austin American- Statesman”지에 “Two Brothers, One Diagnosis, Two Choices”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2019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48세인 마이클과 45세인 다니엘 두 형제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심장 정밀검사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관상동맥 질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동일한 내용을 담은 검사 결과지와 치료 계획서를 두 사람에게 각각 건넸다.
[2] ‘즉각적인 생활 습관 변화, 식이요법, 수술 가능성.’
형 마이클은 결과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다음 날부터 담배를 끊었고, 3주 후 수술대에 올랐다. 2년 후 그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면 동생 다니엘은 결과지를 보는 척하다가 서랍에 넣었다. “나는 아직 젊어. 좀 더 두고 보면 되지.” 그는 다른 병원을 두 군데 더 돌아다니며 더 나은 소견을 찾으려 했다.
[3] 1년 후 다니엘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수술 합병증으로 지금 심각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동일한 진단.’ ‘동일한 경고.’
그러나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찢었고, 다른 사람은 진단서를 무력화하려 했다.
성경 속 아비 요시야 왕과 아들 여호야김 왕의 대조적인 이야기가 2019년 텍사스에서 다시 펼쳐진 것이다.
[4] 예레미야 36장과 열왕게하 22장에 바로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원전 605년,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군대가 이집트를 무너뜨린 뒤 곧장 남쪽으로 내려왔고, 작은 나라 유다는 거대한 제국의 발밑에 놓이게 되었다. 유다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한 모든 말을 기록하라.”
[5]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신다.
“혹시 유다 백성이 듣고 각자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 죄를 사하리라”(렘 36:2–3).
당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예레미야는 자신의 동역자이자 서기관인 바룩을 불러 구술로 책을 기록하게 한다. 그것이 첫 번째 예레미야서이다. 그걸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읽어주었더니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6] 어떤 이는 떨고, 어떤 이는 탄식했다. 왕궁의 관리들까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말씀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것은 나라가 돌이킬 마지막 기회다. 당장 왕께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두루마리 책은 결국 유다 왕 여호야김에게 전달된다. 이때 왕은 가장 따뜻한 겨울 궁전 안에 앉아 있다. 신하 여후디가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들어와 왕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한다.
[7] 한 줄, 또 한 줄. 심판의 경고가 왕의 귀에 울려 퍼진다. 방 안은 조용하다. 들리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타닥타닥!” 화로에서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읽는 소리.
이제 모든 시선은 왕에게 쏠린다. 과연 왕 여호야김은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여후디가 서너 쪽을 읽으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베어 화롯불에 던져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렘 36:23).
[8] 이 “면도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던 도구”였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그 칼을 빼앗아 말씀을 난도질하는 영적 살인 무기로 전락시켜 버렸다.
칼로 읽은 말씀을 “베었다”라고 했는데, 이 단어는 단순히 종이를 반듯하게 자르는 표현이 아니라 "헝겊을 거칠게 찢거나 가죽을 북북 찢어발길 때 쓰는 강한 단어"이다. 즉,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대적하듯 거칠게 찢어버렸다”라는 뜻이다.
[9] 그의 행동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말씀을 향한 노골적인 적개심이었다.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옷과 마음을 찢었어야 할 왕이 도리어 그 말씀을 갈기갈기 찢어서 불에 태워버렸다. 어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처럼 신성모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여호야김의 행동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성경에 또 기록되어 있다.
[10] 열왕기하 22장 11절이다. 약 17년 전, 여호야김의 아비 요시야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게 하다가 성전 한구석에서 오래 잊혀 있던 율법책을 발견한다.
그것은 유다의 운명을 바꿀 말씀이었다. 그 책을 서기관 사반이 왕 앞에서 읽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경고가 왕의 귀에 들려오는 순간, 요시야는 아들 여호야김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여기서 “찢다”라는 동사는 예레미야 36장에서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찢을 때 사용된 바로 그 단어(קָרַע)이다. 아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찢었다. 하지만 그의 아비 요시야는 "자기 옷을 찢었다." “옷을 찢었다”는 “마음을 찢었다”라는 의미이다. 율법책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고 자기 마음을 찢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12] 두 사람의 결과가 궁금하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여호야김은 비참하게 죽었다. 왕으로 죽었지만, 시신이 왕실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버려졌다. 반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요시야의 회개 때문에 유예가 되었다. 비록 그가 전쟁 중 화살에 맞아 죽지만, 백성은 그를 위해 울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 애가를 지어주었다. 그는 왕실 묘실에 장사 되었고, 온 유다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죽어서도 그는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
[13] 이런 장면은 자연스럽게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이 말씀은 추상적인 교훈이 아니다. 여호야김과 요시야의 삶이 그 증거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역사, 한 가정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