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보통 날씨가 아닙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장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식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본래 뜨거운 여름의 날씨가 더해져서 마치 용광로를 달구듯 찌는 더위는 인간의 욕망이 더 한층 타오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엊그제, 교회 남선교회에서 오래 함께했던 친구 집사님이 하늘나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직업병으로 인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아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다가, 엊그제 운명하셨습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려, 송구스런 마음이 더욱 가슴을 채웁니다.
남선교회 회원 중 한 집사님은 돌아가신 집사님을 위해, 직업병으로 인한 것임을 확신하고 회사와 국가기관으로 오가며, 산업 재해임을 밝혀내, 지금까지 회사로부터 산재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매달 수령해, 투병생활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한 형제로서,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은 정말 신앙인으로서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바르게 세워 보겠다며 믿음으로 고군분투하며, 열과 성의를 다하고, 전심을 다해 사명으로 일하는 그 모습은, 비록 서리집사이지만 한국 기독교 신앙인들, 특히 항존직은 물론이고 모든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선한 행동입니다.
돌아가신 서리집사님은 교회에 오래 나오시면서 많은 수고를 하셨던 분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많은 고통을 감내했고, 곧 닥쳐올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늘 아래서도 믿음으로 견디면서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담임목사가 한 번도 심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목사라면 한 번쯤은 심방을 하셔서 기도하며 찬양으로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담임목사라는 분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여전도사만 가끔씩 체면치레로 심방하는 이런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있는 가족들과 본인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교회 바로 세우기' 모임 회원이었기에, 지난 주일 오후 임종 후 장례식 절차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교회에 알렸습니다. 담임목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담당 교구 목사와 여전도사 2명만 장례식장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부목사와 여전도사와 권사 몇 분이 오셨고, 담임목사는 마지막 날 가는 예배 집례만 10분 정도 인도한 뒤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담임목사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바쁘다는 핑계만 댑니다. 성도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이 제일 우선순위 아니겠습니까? 하던 일도 급히 중단하고 장례식에 필히 참석하셔서 고인을 애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은 가족들에게도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주님을 위해 남은 인생을 최선 다해 봉사할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를 해야 할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교묘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저 분이 과연 목사가 맞는지' 의심이 갔습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에게 사명감 따위는 어디로 사라졌는지요.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통 구별이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조금 큰 교회다 싶으면 부목사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개인볼 일은 어찌 그리 많으신지, 부목사 여러 명을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은 꼭 군대나 사회 직장 같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목사님들은 교회는 물론, 안 믿는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도 다 돌아보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웃들이 목사님들을 참으로 좋아하고 존경했으며, 늘 인정 넘치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대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목사님들은 양복만 입은 채, 아무 일도 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실 적에 양복을 입으셨습니까? 심지어 주님은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까지 당부하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부흥회 강사비나 세미나에서 받았던 강사료를 교회에 전액 헌금하거나 주례비나 장례비는 일절 사양하는데, 오히려 주례비나 장례 집례비가 적다고 투덜대는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돈이 좋으면 사회에 나가 장사나 사업을 하든지, 돈 버는 직업을 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옷, 좋은 구두, 좋은 자동차, 그리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날마다 갖추시는 목사님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이 무더운 여름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 그 고생을 하는데도, 위로는커녕 헌금을 적게 내는 성도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헌금을 많이 내거나 식사를 자주 대접하는 성도들을 챙기고 설교 시간에도 그 분을 높이 치켜 세우는 모습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가 싶습니다. 그런 분들의 설교는 도통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헌신예배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강사들에게 헌금을 많이 내도록 유도하고, 담임목사를 지키고 세워 달라는 내용을 은근슬쩍 부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집사나 권사, 심지어 장로들까지 재판을 열어 면직·출교를 단행하는데 앞장섭니다. 주의 종이 맞습니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능숙한 말로 덮어버립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는데, 정말 주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까? 장로라는 일부 사람들도 목사 편에 합세해서 성도들을 내어쫓는 일에 함께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여기가 교회인지 아니면 죄를 생산하는 이리의 소굴인지 헷갈립니다.
입으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 '성도들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성도들을 내어좇는 이중잣대에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처음 말씀하신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교회의 상위기관인 노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회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행여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함구하고 있습니다. 실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거기다 노회재판국이라는 곳은 성경 말씀대로 공명정대하게 판결해야 하는데, 그곳마저 특정 장로와 목사 편에 서서, 그들보다 더 불공정하게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교회를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성도들은 실제로 많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양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넉살만 늘어놓은 채 오히려 성도들의 고소고발에 혈안이 된 모습 때문에, 성도들은 '정말 이 교회 나온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총회 재판을 이기기 위해 로비 활동까지 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노회나 총회에서 청렴하고 투명하며 공명정대하게 재판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요 성경에 기초한 상식임에도, 일부 사람들은 이를 망각한 채 성경 말씀을 훼손해가면서까지 그들의 편에서 움직입니다. 그들은 차라리 지금 당장 직분을 내어놓는 것이, 나중에 음부로 들어가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한국교회에는 성경 말씀으로 살아가려 무던히도 애쓰시는 좋은 목사님들이 물론 많지만, 오히려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한 이리나 늑대 같은 장로·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 전도는 갈수록 암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 많으시고 온화한 성품으로 이웃들을 돌아보고 애쓰시던 그때 그 시절에는 비신앙인들도 목사님들을 참 좋아하셨고, 미안해서라도 교회에 한 번 나가겠다고 약속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미안해서 한 번 왔다가 지금 장로가, 목사가 되신 분들도 있겠지요.
이제 내려놓을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지 않는다면, 정말 한국교회 위기는 금방 닥쳐올 것입니다. 나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 전도를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이를 막는 각종 규제는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는데, 발빠르게 대처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쳐서야 되겠습니까?
확고한 믿음의 기틀 안에서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것도 과감히 내려놓으며, 박물관에 가야 할 각종 쓰레기 같은 규제들은 과감히 버리고,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으로 다시 거듭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원로장로, 원로목사 제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위임목사 제도도 폐지돼야 합니다. 연로하신 목사님들이 이 일에 적극 앞장서야 합니다. 이 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한, 한국교회의 앞날이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오래 묵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이사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워질 것입니다.
장로는 장로로서, 목사는 목사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주님께서 안심하실 수 있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더 큰 사랑으로 다가 갈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금전의 바벨탑, 명예의 바벨탑, 교만의 바벨탑, 자랑의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종은 그저 종일 뿐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 외에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바로 주님의 종이요 제자들인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는 목사 제도도 이제는 틀을 바꿔야 합니다. 믿음은 물론이거니와, 인성과 인품의 함량이 충족됐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이 없는 종은, 양들을 이끌 수 없습니다.
장로를 기름 부어 세우는 일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은 물론, 인품과 리더십, 성도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사고 방식과 추진력, 그리고 겸손한 분들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돈 많고 인기 좋은 사람들을 위주로 세운다면, 문제는 늘 발생할 것입니다. 투명한 방법으로, 정직한 성도를 장로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품으로 친구를 이사보내면서, 더 안타까운 것은 담임목사에게 기도 한 번 받지 못한 채 떠났다는 것입니다. 실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억지로 장례식장에 와서 달랑 몇 분간 자리했다 사라지는 그런 담임목사는 이제 강단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노회와 총회는 지교회 담임목사가 잘못하고 있음에도, 같은 목사의 편에서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비하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그들이 지금은 주님을 믿는다고 자처하지만 훗날 천국에 가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