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후기 인상파로 알려진 폴 고갱(1848. 6. 7-1903. 5. 8)의 유언과 같은 말기 작품이다. 제목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이다.
번역하면 이런 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필자는 문화에 대한 강연을 할 때 늘 이 그림으로 시작한다. 이 그림을 통해 고갱이 당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근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근대인으로 살아가던 고갱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던진 중요한 질문, 그리고 후기 근대인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지는 이 질문은 바로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오늘은 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한다. 바로 폴 고갱의 작품을 빌어서 말이다.
◈정체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는 아직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 전, 모더니즘 사상이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아 영향력을 끼치던 때이다. 근대란 '인간'이 본격적인 세상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라 말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중세 시대에서는 '신, 즉 하나님'이 모든 세계의 '주체'였다. 하지만 근대 사상과 그것의 실천인 정치와 윤리에서 모든 판단의 시작과 기반은 바로 인간이 됐다. 지면의 한계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바로 당시에 이러한 사상을 전달하는 중요한 미디어의 역할이 바로 예술가와 예술품이다. 뛰어난 예술가 중 한 명인 폴 고갱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 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자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하는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어디서 왔으며, 당신은 무엇이며, 당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이 말을 인문학적인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필자는 오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동일하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이며,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덧붙여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보상을 바라며 살아가십니까?"
◈정체성에 대한 나만의 해답이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준다
청년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질문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세상은, 특히 교회는 질문을 금기시 하는 듯 하다. 세상을 살며 궁금한 것은 넘쳐나는데,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며 질문은 쌓이는데, 질문 할 수도 질문할 곳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매주 혹은 매일 장의자나 수평과 수직 열로 딱 맞춰진 의자에 앉아, 그저 앞에 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가르침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거나 바른 순종이라고 강요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생이란 매일 매순간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은 항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순간의 연속이다.
따라서 항상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알지 못하는 일이 다가오게 된다. 그러니 알기 위해서 그리고 알아가기 위해서 궁금하고 질문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 누군가에게 묻고 듣고 경험하며 알아가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대체 누구에게 묻고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당연하게 묻고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묻지 못하고, 들어야 할 조언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론적이고 정의내려진 개념과 일방적이고 교훈적인 가르침은 현실 세계에서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답만으로 현실을 살아가긴 어렵다. 정답은 옳으나, 현실에서는 힘이 약하다. 정답과 공식은 수많이 변형되고 적용된 개인의 삶에 해답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고갱의 질문과 필자의 질문에 독자들께서는 나름의 답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어딘가에서 들은 혹은 암기해서 자동으로 나오는 정답을 말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이런 식의 답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로 갈 것입니다."
맞다. 정답이다. 그런데 이 정답이 실제로 여러분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고 풀어지는지 다시 묻고 싶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계가 창조되고 당신이 태어났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죽어서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 당신이 살아가고 그 일을 하는 목적과 방식과 살아가는 현실에 어떤 의미로 어떤 원리로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적용되고 작동되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인간이 살아갈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이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의 해답으로부터 존재감, 소명과 사명, 자존심 및 자존감이 나오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던져야 할, 그리고 마땅히 알아야 할 이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알아야 할 시기를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이 고민을 하게 된다.
정체성은 언젠가 한 번은 꼭 하게 되고 해야 하는 질문이기에 그렇다. 삶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를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근대 사상도 이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름의 답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그리 따르라고 주입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여러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길은 있는가?
고갱은 위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동시대를 살아간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자신의 유명한 작품을 통해 마치 고갱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듯 하다. 바로 '루이스 캐럴(1832. 1. 27-1898. 1. 14)'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다.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길을 잃은 엘리스가 고양이에게 길을 묻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고갱이 던진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을 다시 표현해 보면, "지금 우리는 길을 잃은 듯 보이는데 올바른 길은 있는가? 어디인가?"일 것이다.
이 질문에 루이스 캐럴은 위의 장면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바로 그게 바른 길이야. 넌 어디든 네 의지로 갈 수가 있어. 올바른 길이란 진리란 없어. 그러니 네가 스스로를 믿고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단다."
고갱이 작품을 통해 말해주는 답도 찾아보자. 작품의 우측에서부터 그림이 시작되는데, 아기가 태어난 후 이 질문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청년의 때를 거쳐 여러 일과 만남과 종교를 통해 이 정체성을 찾고자 하나, 왼쪽 마지막에 노파가 취하고 있는 자세와 표정을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절망해 있고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결국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결코 그 질문에 답을 알 수 없으며, 이는 답이 없다는 말과 같다. 루이스 캐럴과 동일한 답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후 20세기를 거쳐 현대인들은 정답이란 보편적인 진리란 없으며, 서로의 의견과 취향을 존중하고 스스로 자신의 방향과 옳음을 정해 살아가는 것이 바르다는 관점, 바로 이 세계관이 주된 흐름이 되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인 현재 그 결과가 어떠한가?
마치 사사 시대를 재현한 듯 보이는 현 시대는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아왔으나, 어떤 시대보다 스스로 정체성의 혼돈과 삶의 방향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온 것 아니겠는가? 모든 기준과 질서가 다시 해체되고 재정립되고 있는 시대다. 혼돈과 공허함이 찾아온 시대다. 여기서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알고는 있는가? 묻기는 했는가?
오늘 필자는 여기서 시덥지 않은 정답이나 조언을 피하려 한다. 어떤 이는 비겁한 글이라 비난할지도 모르나, 그 비난과 비판을 그저 받아들이려 한다. 오늘 칼럼의 목적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니 말이다.
크리스천인 당신은 누구이며, 이 땅에 무엇 때문에 살아가시는가? 그 일을 왜 하며, 어떤 목적과 보상을 바라며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주어진 일과 삶을 살아가시는가? 이 질문에 실제로 디테일하게 답하는 내용이, 바로 당신이 믿고 있는 기준이며 가치일 것이다.
현 시대의 수많은 폴 고갱과 루이스 캐럴이 동일하게 당신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고, 나름의 답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하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정체성과 삶을 살아가는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1:3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