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시 119:113-115)"
I hate double-minded men, but I love your law. You are my refuge and my shield; I have put my hope in your word. Away from me, you evildoers, that I may keep the commands of my God!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이 말씀은 선지자가 피할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숨어, 그의 약속들을 믿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성도는 주의 말씀을 고정된 원리로 붙들고 많은 위험을 당하는 중에도, 생명의 유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달려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하나님안에서 은신처를 삼을 때, 이 진리는 우리 마음을 북돋워 담대하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우리 앞에 말씀을 두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디 임할 때, 우리의 믿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존 칼빈 주석/ 시 119:114 중에서)."
여기서 '은신처'란 말은 그 어원이 '숨기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죄와 허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를 숨겨 주신다. 그래서 이 말씀은 얼마나 마음에 평안을 주는지 모른다. 이런 감동을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 이후 모든 인간은 자신의 범죄로부터 도피할 은신처를 찾아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범죄한 인간의 가련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죄로 인해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히셔서 그 허물을 덮어 주셨다(창 3:21). 그리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신다. 이는 유일한 구원의 은신처가 되어 주기 위함이시다. 시인은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오직 하나님의 날개 아래라는 것을 체험으로 확증하고 있다.
오 예수님! 오늘도 심한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 안전한 "은신처"가 되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