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Photo :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조국 古話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닮은, 러시아의 說話
호수에 화려한 백조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옷을 잃어, 찾다가 못 내, 저녁이 되고, 白鳥로 다시 날아가지도 못하고
화사한 <오데트>공주로 變身되어
여기에 나타나온 <지그프리트> 왕자는 사랑에 빠진다.

화려한 사랑에는 언제나 흑 구름이 끼어들기 마련
또 다른 이웃魔王 <로투발트>가 나타나와 두 사람의 사랑에 흙물 뿌리는데
<오데트>공주와 닮은 <로투발트> 자신의 딸 공주, 요염한 黑鳥 <오딜>로
지그프리트 王子 와 白鳥 사이의 사랑을 흔들어 놓고 만다.

지그프리트와 魔王 로투발트의 치열한 대결은, 둘 다 호수에 잠겨 죽는
오디트 백조의 사랑의 비극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멎는다.

이 비극무용극은 영국 황실로 건너와
다시 화려한 무대로 바뀌면서 Tutu(튀티)의 짧은 舞踊衣裳 깃은
무대 위에서 가늘게 흔들리는 群舞로 눈부시게 다시 장식되고
호수 가의, 왕자와 백조는 부활하여
화려한 幕場 무대로 장식을 내리지만, 한 데
또 다른 무대에서는 왕자로, 魔王<로투발트>를 무참하게 물리쳐 내는
복수(復讎)막장으로 맞게 되고
헤피엔딩으로 변형시켜 진, 무대로 바꿔놓기도 하였다는 說話.
그런 그런 人間이야기.

삶이란 화려한 세계를 어찌도 그리 가만 놓아두는 역정(歷程)이 아닌지,
백조의 세계가 펼쳐지면, 흑조가 요염화려하게 나타나, 흙탕물을 뿌린다.
혼돈 그리고 혼란을 겪어내고,
끝 낸, 비극이 되게 하던, 아름다운 끝장식으로 만들어 내게 하던,
확실히 이야기를 맺는다면, 비극적 현실에라도 못내는,
흙탕물 물결, 훔쳐내어 털어 견뎌 내어
호수 물결 박 차고 날아가는, 세찬 그 힘의 매력이라는
몸 털어, 나타나오는 것으로의, 眞實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그렇게, 지고 또는 또 어떻게든 이겨 내는
그렇게 살아남아야만 하는, 現實적인 이야기, 또 그리 이야기는 되어 가려니_

이렇게 해서, 인생의 삶은 요철과 각고(刻苦) 그리고 지고 이기는 쓰라린 정신적 싸움 아픔에서도 참아내 가는 삶의 歷程임에 틀림이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잊혀 진다고 위로도 합니다. 하나 그 쓰라린 아픔의 상처는 언제인가 라도 말없이 남겨져 있는 상흔의 흔적 되어 어느 구석엔가 에라도 묻혀져 있기 마련입니다. 누가 이를 씻어 내 줄 수 있는 것인가요. 사람의 힘에서는 이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니 없습니다. 어머니 손길이라고도 하지마는 역시 이 깊은 아픔은 역시 아픔으로 남아있을 것일 테니까요. 아무래도 이는 하늘 가 어디쯤엔가 에서부터 찾아오는 신의 손길 일 수밖에 없고, 이는 진리이고 진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찾아 내 온 마음 속 신뢰로 다듬습니다. 이를 그 누구, 그 인간이 제 맘대로 떠들어 대는 막소리 흐트러뜨림으로 흐트러뜨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분명하게 이 막소리로부터 깨끗하게 귀를 막아 돌립니다. 그리고 오로지 더 저 아래 드리워져 있는 우리의 자아 깊은 '기도의 마음' 깊이에서 찾아내는 신뢰의 자리이었음을 찾아냅니다. 이를 나는 '이끼로 묻혀 진 신뢰'라고 터득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를 나의 각고로 다듬어진 '신앙'이라고 깨달아져 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