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신년을 맞아 미주 기독일보는 미주 주요 목회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인 이민교회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한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세대 구조 변화 속에서 이민교회가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신년 인터뷰는 말씀의 본질, 제자도, 다음 세대,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지역 및 디아스포라 교회와의 연대를 핵심 주제로 진행됐다.
세 번째 순서로는 프라미스교회 담임 허연행 목사를 만났다. 프라미스교회는 4/14 윈도우 운동의 출범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16년간 ‘다음 세대 복음화’라는 선교 전략을 세계 현장에서 실천해 왔다. 허 목사는 이번 인터뷰에서 “교회의 1차적 존재 목적은 변치 않는 영원한 복음을 급변하는 세상에 전하여 알리는 것”이라고 전제하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선교적 교회, 선교적 인생’을 표어로 전도와 선교에 다시 ‘올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팬데믹 이후 교회의 ‘평가 기준’이 바뀌었다고 진단하며, 멀티캠퍼스 구조 속에서도 ‘한 교회성(One Church)’을 유지하기 위해 붙드는 원칙과, 4/14 비전의 열매·과제·다음 단계, 그리고 미주 한인교회와 한국교회를 향한 진단과 권면을 함께 나눴다. 다음은 허연행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2026년을 맞아 목사님께서 프라미스교회에 가장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목회적 우선순위 한 가지는 무엇이며, 올해 기대하고 계신 교회의 주요 사역 방향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1차적 존재 목적은 변치 않는 영원한 복음을 급변하는 세상에 전하여 알리는 것, 곧 전도와 선교라고 믿습니다. 꺼진 불은 더 이상 불이 아니듯이, 전도와 선교에 관심이 없거나 미온적인 교회와 성도는 주님 앞에서 더 이상 교회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가 “하나님의 교회가 선교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선교의 하나님이 교회를 소유하신다”고 말했듯, 선교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가 전도와 선교를 수많은 사역 중 하나, 즉 ‘n분의 1’로 전락시킨 안타까운 현실도 있습니다.
그래서 프라미스교회는 지난 1월 첫 주일 오후 제직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지난 50년(희년)을 감사로 마무리하고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5년 동안 ‘선교적 교회, 선교적 인생’이라는 표어 아래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전도와 선교에 올인하기로 다시 결단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4/14 윈도우 선교전략의 탄생지로서 지난 16년 동안 다음 세대 복음화에 초점을 맞춰 역동적인 사역을 펼쳐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를 1년에 몇 차례 ‘대표선수단’이 다녀오는 방식의 ‘선교하는 교회(mission-doing church)’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기 전에, 우리 각자가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라는 관점으로 다시 초점을 맞추는 리포커싱(refocusing)을 주일 강단과 주중 목장 모임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 선교적 인생’은 결국 내가 사는 일상이 선교적으로 바뀌는 데서 출발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프라미스교회는 뉴욕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해 왔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가 아니라, 이 시대에 ‘어떤 교회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오늘의 프라미스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저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교회의 평가 기준에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등록교인 숫자, 재정 규모, 교회당 건물과 주차장 수용 능력 같은 물리적 요인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그 교회가 주변 커뮤니티와 세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선교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본질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좌우되고, 그 영향력의 크기에 따라 교회의 ‘크고 작음’이 재정의되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사이즈는 큰데 대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하다면, ‘살은 쪘으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이전에는 오프라인이 거의 전부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온라인도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점입니다. 팬데믹 초기에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숏폼 형식의 영상 메시지를 매주 수요일 아침에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대면예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교회가 성도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인들과 공유되는 ‘희망의 릴레이’로 이어지면서 지구촌 곳곳까지 복음을 전하는 순회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열매도 보게 됐습니다.
더 나아가,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배당에 모이느냐”가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선교적 마인드로 무장시켜 세상 속으로 내보내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 예배 축도 후 회중이 흩어지기 전에 “이제부터 2~3분간 조용히 묵상하시면서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마저 들으신 후 생활 속의 예배로 나아가시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종종 합니다. 예배당에서 끝나는 예배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이어지는 예배가 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형 교회가 겪기 쉬운 위기나 유혹은 무엇이라고 보시며, 프라미스교회는 그 질문 앞에서 그동안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해오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대형 교회일수록 전도와 선교가 ‘여러 사역 중 하나’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본질이 ‘n분의 1’로 취급되는 위험이 생깁니다. 저는 이것이 대형 교회가 겪는 가장 본질적인 유혹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라미스교회는 선교를 ‘행사’나 ‘프로그램’으로만 두지 않기 위해 계속 고민해 왔고, 이제는 ‘선교적 교회, 선교적 인생’이라는 방향 아래, 교회의 체질 자체를 선교적으로 바꾸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선교는 특정한 사람이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프라미스교회는 퀸즈와 뉴저지 성전을 아우르는 멀티 캠퍼스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체제가 단순한 공간 확장이 아니라 ‘한 교회성(One Church)’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50년 전 맨해튼에서 시작한 교회가 한때는 맨해튼·퀸즈·뉴저지·애틀랜타까지 네 성전을 운영하던 시기도 있었고, 현재는 퀸즈 칼리지 포인트와 뉴저지 레오니아 두 성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법적으로는 한 교회이지만 두 성전의 상황이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퀸즈 성전은 지역 특성상 100개가 넘는 소수 민족이 함께 사는 ‘세상의 축소판’과 같아서 회중도 한어권, 영어권, 스페니시권 등으로 다양하고, 교회학교를 들여다보면 비한인(non-Koreans)이 30%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다민족·다문화 목회(multi-cultural ministry)의 인프라 구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반면 뉴저지 성전은 변화의 물결이 상대적으로 덜한 한인 타운에 위치해 KM, EM, 교회학교를 합쳐도 95%가 여전히 한인입니다. 이처럼 ‘한 교회’이면서도 결이 다른 두 캠퍼스의 특성은 살리되, 목회적·영적 DNA의 동질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3년 전부터 매 주일마다 두 성전을 오가며 주일 설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부는 시작 시간을 같은 시간으로 하되 다른 쪽 성전에는 동시 영상으로 연결하고, 2부는 한 시간 차이를 두어 그 중간 시간을 이용해 이동합니다. 성가합창제, 전교인 체육대회, 임직식 같은 큰 행사 때는 버스를 이용해 한 곳에 함께 모이기도 합니다. 두 성전 간 거리가 자동차로 30분 이내라 이동 부담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같은 비전의 깃발 아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형 교회일수록 성도 개개인의 신앙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프라미스교회는 규모 속에서도 공동체성과 제자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목회적 장치와 철학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팬데믹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선교적 마인드로 세상 속으로 파송되느냐”가 중요해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공동체성과 제자도는, 예배당 안에서의 밀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믿음이 살아 움직일 때 유지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주일 강단과 주중 목장 모임에서 ‘보내심’의 정체성을 반복해서 확인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는 것, 그 일상이 선교가 되는 것이 제자도의 실천이며, 그 제자들이 모일 때 공동체는 느슨해지기보다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고 믿습니다.
-프라미스교회는 일찍부터 다음 세대(4/14 윈도우)를 교회 전체의 중심 비전으로 세워 왔고, 미주 교계 안팎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돼 왔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이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핵심적인 열매를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4/14 윈도우 운동은 2009년 9월 7일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제1차 글로벌 써밋 기간 중 공식적으로 출범한 선교전략입니다. 지난 16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여러 열매를 맺어 왔습니다.
해외 사역으로는 다섯 차례 글로벌 선교 컨퍼런스 개최, 중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각처에 10개의 크리스천 스쿨 설립, 40여 개 도시 스타디움에서의 축구 선교, 예수님의 생애를 예술적으로 풀어낸 뮤지컬 ‘히즈라이프(His Life)’ 선교 등 다양한 글로컬(glocal) 사역을 통해 오대양 육대주의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 현장으로 향할 때마다 되새기는 확신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복음에는 신비로운 광채가 있어 우리가 복음을 전한 뒤 현장을 떠나도 하나님께서 그 광채를 받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어릴 적 받은 은혜가 평생 간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오늘의 어린이는 10년 후 반드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칠 존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는 결코 ‘단기 성과’로만 평가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께서 열매를 드러내시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그 확신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경험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시니어 그룹이 2024년 가을 뉴욕-바하마 왕복 크루즈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우리 그룹 650명 중 네 분이 여권 문제로 승선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배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연세 드신 분들을 부두에 남겨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객 관련 업무(Guest Relations)를 담당하는 최고 디렉터 한 분이 나타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승객 4천 명과 승무원 2천 명, 도합 6천 명의 일정이 두 시간 정도 묶이긴 했지만 결국 전원이 탑승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디렉터가 온두라스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난해 학교도 다니지 못하던 때에 뉴욕 프라미스교회 성도들이 내려와 땅을 사고 학교 건물을 지어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초반 그 학교에서 성경을 배우며 인생의 꿈이 생기고, 영어와 여러 과목을 배우며 장래의 길이 열렸고, 그 아이가 훗날 크루즈 회사에서 성실히 일해 최고 디렉터가 됐습니다. 프라미스교회 그룹이 자신이 일하는 배에 탄다는 사실을 알고 설레던 차에,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돕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는 말씀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해외 사역뿐 아니라 현재 프라미스교회 내부에서도 4/14 비전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음 세대가 어떤 방향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해외 선교 사역에 치중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1세대 성도들이 고령화되고 소천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분들이 흔들어왔던 선교의 깃발을 누가 이어서 흔들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다음 주자에 대한 준비가 매우 미흡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수평 선교는 역동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수직 선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돌파구(breakthrough)를 마련하지 않으면, 1세가 잘 쌓아놓은 선교의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5월에 ‘에셀 프로젝트’를 선포했습니다. 이 비전은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복음에 기초한 선교적 마인드를 심어(수직 선교),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4/14 윈도우 운동을 지속하도록 돕는 것(수평 선교)입니다. 내부의 구심력을 든든히 구축함으로써 원심력이 더 힘을 받게 하자는 방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다음 세대’ 그룹들—크리스천 사립학교, 지역의 다민족 아이들을 위한 토요 무료 파워하우스, 방과후학교, 매년 여름 6주간 운영하는 여름학교, 할로윈 데이에 교회가 대신 여는 ‘홀리윈 나이트’, 한글학교 등—이 마치 섬처럼 제각기 운영돼 왔던 부분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각 ‘섬’에 열정과 비전으로 무장된 ‘브릿저(Bridger)’를 배치해, 그 안에 있는 교회 미출석자들을 주일학교로 이끄는 ‘브릿지’ 사역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할로윈 데이에 열리는 ‘홀리윈 셀리브레이션’에는 지역 주민 부모와 자녀 2천 명 이상이 교회로 몰려오는데, 이 가운데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다음 주일 예배로까지 이어지는 열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이민교회들의 현실을 잘 알고 계신 목회자로서, 프라미스교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민교회들이 현실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제안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현재 미주 한인교회들의 상황이 대체로 영세하고, 언어적·문화적 갭 때문에 주류 사회와의 소통과 섬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게토(ghetto)화’, ‘사일로(silo)화’, 심지어 ‘낙도(island)화’ 신드롬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현실적 해법으로, 프라미스교회가 매주 토요일 오전 시행 중인 ‘파워하우스(Power House)’를 권하고 싶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아 비싼 학원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게임이나 TV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예배당 또는 야외(“Under the Tree”)로 불러 모아, 경건회·뮤직·스포츠·댄스 등 다양한 과목을 기초반-중급반-고급반으로 나누어 무료로 가르치며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는 선교적 프로그램입니다.
이 사역은 교회 사이즈와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가족이나 교인 가운데 기타나 드럼을 잘 치는 분, 축구를 잘하는 분 한 명만 있어도 동네 아이들 두세 명을 데리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역을 하다 보면 재능 있는 성도들의 ‘동결된 자산(the frozen asset)’이 녹으면서 잠자는 성도들이 깨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또한 토요일 오전 내내 자녀를 맡아주는 교회에 대한 고마움이 지역사회와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교회의 게토화 극복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랜 시간 이민교회 현장을 지켜오신 목사님께서 보시기에, 현재 미주 한인교회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위기는 무엇이며, 그것이 구조적 한계인지 목회적·영적 문제인지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현재 이민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우려는 고령화나 역이민 증가 같은 외적인 환경 자체가 아니라, 저는 ‘복음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제대로 선포되지 못할 때, 교회 안에서는 거듭난 성도를 보기 어렵고, 세상 속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 원고 초안 작업이 마무리되면, 스스로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내용으로 주일 설교를 할 때, 바울 사도가 회중석 어딘가에 앉아 이 설교를 듣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2천 년 전에 자신이 전했던 복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쁨의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도대체 무슨 엉뚱한 말을 이 소중한 시간에 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앉아 있을지 자문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궁극적 목적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better person)’이 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변하여 ‘새 사람(new person)’이 되게 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중심이 흐려질 때 이민교회는 구조보다 더 깊은 영적 위기를 만나게 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민교회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본질과, 오히려 내려놓아야 할 익숙함이나 관성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복음 그 자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입니다. 반대로 내려놓아야 할 것은, 교회가 복음 중심에서 비켜나 ‘성과’나 ‘외형’으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익숙함일 수 있습니다. 숫자와 규모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과 방향이 ‘선교’라는 본질에 다시 정렬될 때, 교회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한국교회를 비판이 아닌, 거리감 있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보시기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장 심각하게 직면한 목회적 과제는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 이민목회를 하고 있지만, 30대 중반까지 한국교회에서 자랐고 소명을 받고 사역했기에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1년에 한두 차례 한국교회를 방문해 집회로 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적 위기의 출발점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초저출산에 있다고 봅니다. 최근 약간의 반등 조짐이 있어 반갑지만, 합계출산율이 OECD 38개국 가운데 11년째 최하위라는 점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 문제는 단지 사회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이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IMF 때의 애국이 ‘금 모으기’였다면, 이 시대의 애국은 교회마다 ‘출산 장려 의식개혁’ 운동을 통해 자녀를 두 명 이상 낳도록 돕는 문화적 전환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전의 한 대형교회 벽에 “전도를 못하면 애라도 낳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며, 위기의식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과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돈이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맘모니즘 같은 사조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현실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에 맞서 거룩한 방파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사회적 신뢰와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은 각각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거룩한 방파제’ 역할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는 영성 훈련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현실을 보면 다수의 주류 교단은 수년째 교인 감소를 경험하고 있지만, 성경적 기초 위에서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고 믿는 흐름(연속주의·회복주의 입장) 위에 서 있는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거의 유일하게 역주행하는 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성령 체험을 통해 ‘부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이들이야말로, AI 시대에도 AI의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생존 전략을 갖게 된다고 봅니다. 붙들어야 할 것은 복음과 성령의 실제적 역사이며, 내려놓아야 할 것은 복음을 흐리게 만드는 세속적 관성, 혹은 교회를 ‘세상의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미주 한인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해 꼭 전하고 싶은 권면의 말씀이 있다면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골프 레전드 벤 호건에게 누군가 “골프백에는 채가 14개나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샷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샷은 언제나 다음 샷(the next shot)입니다.” 목회도,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늘 ‘다음 걸음’이며, 그 다음 걸음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방향으로 놓여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미주 한인 크리스천들의 가슴 깊은 곳에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은 컴패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민 1세들에게 왜 이민을 왔느냐고 물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better life)’ 왔다는 사람은 30% 정도이고, ‘자녀들을 위해서(better education)’ 이민을 결심했다는 분이 70%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에너지가 선교와 전도에 접목된다면, 수직 선교(구심력)와 수평 선교(원심력) 두 영역에서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해, 그 은혜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