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탕자의 비유(눅15:11-32)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 품을 떠나 멀리 타국으로 갔을 때, 돈 많고 여건이 좋을 땐 밤낮으로 여러 친구들이 환영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고 특별히 할 일도 못 찾아 불쌍한 형편이 되자 아무도 그 옆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돈 친구는 돈이 떨어지면 사라진다. 육체적 미모 때문에 맺은 친구는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가차 없이 떠나버린다.
계산하지 않고 만나는 친구가 좋은 친구요, 조건 없이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다윗과 요나단, 관우와 포숙, 백아와 종자기, 바나바와 바울 등이 좋은 친구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최근에 또 그런 친구의 사례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탤런트 김수미 씨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일이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김수미 씨 남편이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아 쩔쩔 매는 상황까지 이르렀었다. 돈이 많은 친척들까지도 김수미 씨를 외면하게 되었다. 김수미 씨는 급한 대로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몇백만 원씩 돈을 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안 김혜자 씨가 김수미 씨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 하며 김수미씨 앞에 통장을 꺼내놓았다. "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지." 김수미 씨는 그 통장을 받아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 돈은 나중에야 갚을 수 있었지만....
피를 이어받은 사람도 아니고 친해 봐야 결국 남남인 자기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내어준 것에 김수미 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입장이 바뀌어 김혜자 씨가 그렇게 어려웠다면 자신은 그럴 수 없었을 거라고 하면서. 김수미 씨는 그런 김혜자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 언니가 아프리카에서 포로로 납치되면 내가 나서서 포로 교환하자고 말할 거야. 나 꼭 언니를 구할 거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전 재산을 내어준 김혜자 씨에게, 김수미 씨는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친구를 한 명이라도 갖게 된다면, 세상 참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혈연관계의 사촌보다 매일 만나서 실제적인 문제를 돕고 의논할 수 있는 게 더욱 소중하다는 이야기이리라.
스위스의 내과의사이며 상담자였던 폴 투르니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①먼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고 ②자신을 솔직히 표현해야 하며 ③서로 공개할 용기가 필요하고 ④각자의 차이점(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⑤서로 사랑해야 하고 ⑥실제로 돈이나 시간이나 물건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만나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나의 희생과 손해가 선행되어야 친구관계가 시작된다.
상대방의 실수나 불행이 곧 나의 기쁨이요, 행복이라 생각하는 소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요, 친구를 위장한 적개심(敵愾心)이다. ⑴"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 15:13) ⑵나에게는 가장 친하고 믿을만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밥을 먹는 가까운 친구였지만, 이제는 그 친구마저 나에게 등을 돌렸다(시 41:9) ⑶부유하면 친구가 많지만 가난한 사람의 친구는 그를 버린다(잠 19:4) ⑷가난하면 친척들도 멀리하니 친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정해도 친구들이 달아날 뿐이다(잠 19:7) ⑸거짓증인은 처벌을 면치 못하고, 거짓말을 내뱉는 자도 망할 것이다(잠 19:9) ⑹친구가 주는 상처는 믿음에서 난 것이지만, 원수는 겉으로 입맞추면서 속으로 배반한다(잠 27:6).
나는 대학에 입학하는 제자들에게 캠퍼스 생활을 통해 세 종류의 사람을 만나라고 일러준다. 일생 동안 닮고 싶은 인생 멘토 한 분을 만나라.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면 최선이 될 것이다. 평생 존경할 만한 스승 한 분을 만나라. 인생의 고비마다 찾아뵙고 상담하고 결혼 주례도 부탁드려라. 그리고 일생 동안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응답할 친구 한 명을 사귀라. 귀한 것(분)은 흔할 수 없다. 진정 훌륭한 친구는 숫자로 많을 수 없다. 한두 명의 친구만 잘 사귀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내가 병들었을 때, 경제적으로 빈궁할 때, 공직에서 은퇴했을 때, 그 때도 변함없이 교제할 수 있는 자가 진짜 친구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