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專門)’에 사로잡히면 다른 것은 할 줄 모르는 ‘전문 바보’가 됩니다. 과학화되고 세분화된 이 시대에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야에만 전문적으로 매달리다보면 전문가라는 이름의 ‘바보’가 됩니다.
한국의 코미디 역사 속에는 항상 대를 이어 팔푼이 짓을 하는 ‘바보’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비실이’ 배삼룡 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보 전문가였습니다. 이주일, 심형래, 그리고 ‘맹구’의 이창훈 씨가 그 뒤를 이어 바보 연기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바보짓을 정말 바보들보다도 더 바보스럽게 잘 했습니다. 얼마나 바보가 되려고 노력했으면, 그렇게 멋진 바보들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하늘이 낸 천재 바보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이 은퇴를 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바보로만 기억되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바보 연기 외에는 다른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바보 역만 하다 보니, 정말 바보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사가 그에게는 자신이 읽은 그 책 한권으로 다 결정되고 정리됩니다. 갈등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똑똑하다고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예전에는 확신이 있는 외골수의 사람들이 좋았는데, 살아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겸허한 사람들이 더 좋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예루살렘 공과대학교, 나 잘난 과’에서 사람들을 뽑지 않으시고 ‘갈릴리 수산대학교, 그물질과’에서 무더기로 어부들을 뽑으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높은 자리에만 앉으려는 율법사나 바리새인들 보다는 허드렛일로 다져진 어부들이 훗날 교회를 이끄는 사도들이 되었을 때,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다고 간파하신 것입니다. 다양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무리없이 더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골수적인 ‘전문성’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몸으로 하는 일들을 연습해야 하고 가슴으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노인들의 신중함을 배워야 하고, 노인들은 젊음의 생명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전문적인 영역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영역에 갇혀 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테네의 광장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철학을 논하는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군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경험주의 철학자로 널리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그는 영국 최고의 대법관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도 의료 선교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뛰어난 음악 연주자였고, 신학자였으며, 뛰어난 역사학자였습니다. 한 틀에 메이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새롭게 갈고 닦는 노력만이 ‘전문 바보’를 면하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