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아침이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한 날이면 생각나는 딸과의 예쁜 추억이 있다. 미국으로 유학오기 전에 우리 가족은 인천에서 살았다. 아빠를 닮아 유난히 비를 좋아하던 우리딸 지인이가 세 살 때였다. 보슬비가 내리던 어느 월요일, 지인이는 아빠의 손을 잡아 당기면서 바깥으로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딸을 위해 준비한 노란색 비옷과 노란색 장화로 무장을 하고, 노란색 우산을 들고 골목으로 나왔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여운 노란색 병아리가 또 있을까?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바람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로 변해 있었다. 세살배기 지인이가 혼자 힘으로는 우산을 지탱할 수 없어서 내가 딸아이의 우산을 잡아주려고 했지만, 딸은 나의 손을 뿌리치면서 기어이 자기 힘으로 우산을 들겠다고 우겼다. “아빠가 안 도와줘도 나 혼자서 할 수 있어요!”
결국 나는 한 손으로는 나의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지인이 몰래 딸의 노란 우산 꼭지를 붙들고 골목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게 불어도 지인이가 우산을 쓰러뜨리지 않고 잘 쓰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지인이의 우산 꼭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도와주는 아빠의 손을 보지 못하는 어린 딸은 한번씩 나를 올려다 보면서,
“아빠 보세요, 아빠가 안 도와줘도 지인이 혼자서 잘 하죠?”라며 의기양양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나는 어린 딸과 함께 골목길 빗 속을 거닐었던 옛 추억이 다시금 생각났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우산을 꼭 붙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배후에 변함없이 존재했던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