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세월 못 막고, 가는 세월 못 잡습니다. 시간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영원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계시는 하나님의 ‘시간’이 지배하는 한 ‘공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이 그 속에서 살아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시간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어쩔 수 없이 늙어가고 결국엔 소멸합니다. 시간이 할퀴고 간 자리는 주름살이 되고, 그가 남긴 발자국은 검버섯이 됩니다. 맑고 영롱한 아기들의 눈은 어느새 뿌연 먼지로 백태 낀 희미한 가로등이 되어 버립니다. 단단한 말 근육을 자랑하던 두 다리는 이제 항상 지진에 시달리는 떨리는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몸만 늙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함께 시들어갑니다. 옛날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핏대를 세우며 “내가 이 두 눈으로 확실이 봤다”고 혈기를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내가 잘못 봤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설레설레 머리 도리질을 하게 됩니다.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다”고 사자후를 뿜던 칼진 목소리도 이제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들은 듯합니다!” 말꼬리를 흐리는 무기력한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열변을 토하던 그 당당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옳은 사람이여!” 입맛을 다시며 능청을 떠는 개똥철학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세월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특히, 세밑이 가까워 올수록 항상 무지막지한 시간의 무게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라는 폭군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입니다. 겉사람은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지만, 속사람은 항상 영원한 영역에 계신 하나님을 동경하기에 사람은 여전히 위대한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시간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이 계신 영원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기에 신앙인들은 시간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미치 앨봄’(Mitch Alcom)이 지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 중에 ‘작은 파도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한 작은 파도가 자기 앞에 있던 다른 파도들이 해변에 닿아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 맙소사! 이렇게 끔찍할 데가 있나. 우리 모두는 저렇게 부셔지고 마는 거야?”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파도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그게 아냐. 우리는 부셔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야!” ‘영원’의 세상에서 다시 뵙게 될 하나님을 기억할 때만 우리는 시간의 유한성이 주는 두려움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