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교회에서 ‘영어예배’란 어떤 의미일까.
“영어를 미끼로 성도를 모으려는 술책일 뿐”이라는 부정적 시각부터 “외국인들의 영적 고향이자 해외선교의 베이스캠프”라는 긍정적 시각까지, 영어예배라는 화두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각 교회에서 ‘영어예배’가 시작된 배경 혹은 목적도 다양하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법 내지 기여도 역시 목적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이 한국교회의 현 상황이다.
현재 한국 중·대형교회에서는 대부분 성인 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배’까지는 아니라도,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한 ‘영어성경 공부반’ 정도는 적잖게 개설돼 있다. 그 목적도 영어권 외국인들을 위한 예배에서, 애초 목적부터 ‘한국인 선교 또는 전도’, ‘영어실력 향상’을 내건 예배까지 극과 극을 오간다.
어쩌면 기복주의와 세속주의 등으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 주소가 ‘영어예배’라는 한 단어 속에 집약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천주교나 불교 등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미사나 법회는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의 경우 인프라 부족이나 종교 특유의 ‘분위기’ 탓일 수 있다. 한국교회는 천주교·불교 등 국내 널리 퍼져 있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영어권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이 사실이다.
초기 미국·캐나다·영국 등 영어권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이 전래됐고, 목회자나 신학자들도 대부분 이들 국가로 유학을 다녀오고 있으며, 마찬가지 이유로 영어에 관한 한 수준급의 자원들이 많다. 천주교의 경우 라틴어 성경을 고수하려던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 중 하나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 그 본산도 바티칸(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불교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이들에게는 역으로 외국인들 대상의 ‘템플스테이’가 있다.
그러나 ‘영어예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일부 언론들에서는 영어예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일부 어린이 영어예배에서의 ‘사전 테스트’ 제도를 ‘잘못된 조기 사교육 열풍이 교회 문마저 열어젖혔다’, ‘조기 영어교육이 부른 사회문제’, ‘부모들의 빗나간 욕망의 결과’ 등으로 보도한 것.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어예배’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영어’ 또는 ‘영어권 외국인’이 갖는 위상 또는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모름지기 수요가 공급을 낳는 법, 영어는 사회생활, 특히 ‘스펙’에 필수 요건이 됐다. 열린예배 등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왔고, 대다수 교회가 복음주의를 표방해 ‘선교 지향적인’ 한국교회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 스포츠나 취미생활을 선교에 접목시켰듯, 불신자들과 접촉하는 하나의 도구로 ‘영어’를 선택했다는 논리로, ‘선교학적 관점’인 셈.
실제로 영어예배를 포함한 ‘외국어 예배’도 1980년대 후반 경제가 성장하고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는 등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자, 일부 대형교회들이 이들을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正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어·중국어 예배 등도 차츰 시작됐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어·방글라데시어·인도네시아어 예배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속에 다변화되는 추세다. 이 교회들은 지금도 ‘외국인 위주의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곳에는 한국인이지만 오랜 해외 생활로 ‘영어가 국어보다 편한’ 교포 출신 등도 찾아들고 있다. “교회에서까지 영어를…” 하는 비판 속에서도 “교회에서도 영어를…”이라는 현실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여기서부터 “언어 습득은 최대한 생활 속에서 많이 접하여 익숙해지는 게 좋다”, “국제화 시대, 영어가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의 필요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초·중등 학생들에게 요한복음 영어성경을 가르치면 일석이조”라는 말들도 등장한다.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영어’는 필수 항목이어서, 향후 세계 선교를 주도해야 할 한국교회에 더 많은 ‘영어 인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국내에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표방하면서 영어로만 수업하는 신학대학원도 등장했고, 어린이·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예배 사역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컨퍼런스까지 마련되고 있다.
물론 다수 의견은 ‘예배는 예배, 영어는 영어’이다. 특히 영어는 다른 ‘도구’들과 달리 예배 자체에 침투했기 때문에 그 성격이 다른 도구들과 약간 다른 측면도 있다.
“예배 자체보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영어예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예배는 모두가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한다”, “공부가 목적이라면 주일예배 이외 시간에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지, 하나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는 등의 말에는 힘이 실린다. 일제 36년과 6·25 전쟁이라는 고난 속에서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켜온 한국교회에, ‘일석이조’론은 하나의 혼합주의이자 ‘사단의 음성’일 뿐이다. 이른바 ‘예배학적 관점’.
결국 논란의 초점은 외국인들이 참석하고 그들을 위해 개설된 영어예배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참석하는 영어예배로 압축된다. 특히 사리 분별이 가능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신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 아닌,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예배로 모아진다. 그리고 ‘선교’가 아닌 ‘공부’를 위한 영어예배가 좀더 비판을 받기 쉽지만, 이 둘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선교를 위한 영어예배라면, 영어공부에 관심있는 ‘비신자’들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미끼로 성도를 모으려는 술책일 뿐”이라는 부정적 시각부터 “외국인들의 영적 고향이자 해외선교의 베이스캠프”라는 긍정적 시각까지, 영어예배라는 화두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각 교회에서 ‘영어예배’가 시작된 배경 혹은 목적도 다양하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법 내지 기여도 역시 목적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이 한국교회의 현 상황이다.
현재 한국 중·대형교회에서는 대부분 성인 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배’까지는 아니라도,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한 ‘영어성경 공부반’ 정도는 적잖게 개설돼 있다. 그 목적도 영어권 외국인들을 위한 예배에서, 애초 목적부터 ‘한국인 선교 또는 전도’, ‘영어실력 향상’을 내건 예배까지 극과 극을 오간다.
▲서울 한 교회 영어예배에서 내·외국인들이 기도하고 있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홈페이지 캡쳐 |
어쩌면 기복주의와 세속주의 등으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 주소가 ‘영어예배’라는 한 단어 속에 집약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천주교나 불교 등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미사나 법회는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의 경우 인프라 부족이나 종교 특유의 ‘분위기’ 탓일 수 있다. 한국교회는 천주교·불교 등 국내 널리 퍼져 있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영어권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이 사실이다.
초기 미국·캐나다·영국 등 영어권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이 전래됐고, 목회자나 신학자들도 대부분 이들 국가로 유학을 다녀오고 있으며, 마찬가지 이유로 영어에 관한 한 수준급의 자원들이 많다. 천주교의 경우 라틴어 성경을 고수하려던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 중 하나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 그 본산도 바티칸(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불교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이들에게는 역으로 외국인들 대상의 ‘템플스테이’가 있다.
그러나 ‘영어예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일부 언론들에서는 영어예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일부 어린이 영어예배에서의 ‘사전 테스트’ 제도를 ‘잘못된 조기 사교육 열풍이 교회 문마저 열어젖혔다’, ‘조기 영어교육이 부른 사회문제’, ‘부모들의 빗나간 욕망의 결과’ 등으로 보도한 것.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어예배’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영어’ 또는 ‘영어권 외국인’이 갖는 위상 또는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모름지기 수요가 공급을 낳는 법, 영어는 사회생활, 특히 ‘스펙’에 필수 요건이 됐다. 열린예배 등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왔고, 대다수 교회가 복음주의를 표방해 ‘선교 지향적인’ 한국교회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 스포츠나 취미생활을 선교에 접목시켰듯, 불신자들과 접촉하는 하나의 도구로 ‘영어’를 선택했다는 논리로, ‘선교학적 관점’인 셈.
실제로 영어예배를 포함한 ‘외국어 예배’도 1980년대 후반 경제가 성장하고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는 등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자, 일부 대형교회들이 이들을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正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어·중국어 예배 등도 차츰 시작됐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어·방글라데시어·인도네시아어 예배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속에 다변화되는 추세다. 이 교회들은 지금도 ‘외국인 위주의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곳에는 한국인이지만 오랜 해외 생활로 ‘영어가 국어보다 편한’ 교포 출신 등도 찾아들고 있다. “교회에서까지 영어를…” 하는 비판 속에서도 “교회에서도 영어를…”이라는 현실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영어권 선교사들이 한 지역 교회에서 쿠킹클래스를 마련,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
여기서부터 “언어 습득은 최대한 생활 속에서 많이 접하여 익숙해지는 게 좋다”, “국제화 시대, 영어가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의 필요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초·중등 학생들에게 요한복음 영어성경을 가르치면 일석이조”라는 말들도 등장한다.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영어’는 필수 항목이어서, 향후 세계 선교를 주도해야 할 한국교회에 더 많은 ‘영어 인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국내에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표방하면서 영어로만 수업하는 신학대학원도 등장했고, 어린이·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예배 사역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컨퍼런스까지 마련되고 있다.
물론 다수 의견은 ‘예배는 예배, 영어는 영어’이다. 특히 영어는 다른 ‘도구’들과 달리 예배 자체에 침투했기 때문에 그 성격이 다른 도구들과 약간 다른 측면도 있다.
“예배 자체보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영어예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예배는 모두가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한다”, “공부가 목적이라면 주일예배 이외 시간에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지, 하나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는 등의 말에는 힘이 실린다. 일제 36년과 6·25 전쟁이라는 고난 속에서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켜온 한국교회에, ‘일석이조’론은 하나의 혼합주의이자 ‘사단의 음성’일 뿐이다. 이른바 ‘예배학적 관점’.
결국 논란의 초점은 외국인들이 참석하고 그들을 위해 개설된 영어예배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참석하는 영어예배로 압축된다. 특히 사리 분별이 가능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신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 아닌,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예배로 모아진다. 그리고 ‘선교’가 아닌 ‘공부’를 위한 영어예배가 좀더 비판을 받기 쉽지만, 이 둘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선교를 위한 영어예배라면, 영어공부에 관심있는 ‘비신자’들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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