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대표적 원로 방지일 목사(103)가 14일 뉴욕교협 신년하례회에서 전한 성령운동의 방향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교회 산 역사로서 최근 세계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성령운동에 신앙의 경험에 따른 지혜를 내놓은 이날 설교 메시지는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관심을 크게 모았다. 방지일 목사는 성령운동에 대해 인위적인 성령운동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진정한 성령운동은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 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방지일 목사는 종교 다원화, 구원의 다원화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면서 예수님 만이 구원의 길인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방지일 목사 설교 주요 내용.

성령시대의 삶은?(요한복음14장26절)

뉴욕에서 설교를 부탁받아 여기에 오니 저와 함께 사역하다 뉴욕으로 온 목회자들이 생각난다. 뉴욕의 제일 첫 번째 목회자가 뉴욕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가 처음 세브란스에서 몸을 검사받는데 몸에 무좀이 있어서 출국을 못하기도 했다.

또 한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제 평양신학교 동창인데 그가 아마 뉴욕교회연합회장을 지냈다고 들었다. 제1대 동창회 목사인데 뉴욕에 오면서 이런 추억들을 상기하게 됐다.

오늘은 요한복음 14장26절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은 영성에 대해 말하겠다. 개신교회가 21세기에 들어 영성운동을 많이 한다. 영성운동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다.

지금 영성운동에 전세계교회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요즘은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의 영성운동이 더 낫다는 판단에 아시아로 와서 본받으려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자리에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짧은 선교역사임에도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한지 100년이 됐다. 우리나라 부흥사로서는 이명직 목사가 상해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다. 그리고 김익두 목사도 있다. 이 두 명의 목회자가 중국에서 크게 부흥의 역사를 쓴 사역자들이다.

제가 젊은 시절(공산화의 바람이 불기 전) 중국에 갔을 때 유명한 목회자들이 있었다. 해외에도 알려진 유명하고 영성도 깊은 목회자였다. 그 곳에는 온 동네에 교회가 없는 곳이 없었던 곳이다. 그 유명한 목회자는 마지막에 공산당에 잡혀가서 감옥에 갔다 오더니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공산당이 정말 무섭더라. 그렇게 진실하던 사람이 복음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게 됐다.

제가 중국 이야기를 왜 하는가. 몇 가지 영성운동의 실제를 전하고자 한다. 첫째 제가 중국에 있었을 때 노회가 셋이 있었고 교회가 40여개가 됐었는데 제가 그곳에 있을 때 모범적인 교회 하나를 맡아서 했었다. 그런데 몇 년 떠났다가 돌아왔더니 여전도사 한 분이 와서 한 달동안 집회를 했는데 크게 부흥이 됐다. 그런데 그 200명 모이는 교회에 기도소리가 이상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그랬다.

제가 가만히 보다가 신령한 불은 위에서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난방은 아래에서 붙이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불이 내려 붙어야지 몽둥이로 때리면서 뱉게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줬다. 누구는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를 했다고 하더라. 별 소리가 다 나왔다. 그런데 이런 불이 한 달 만에 꺼졌다. 그 교회에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뉘우쳤다고 한다. 그 사례를 지금도 항상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도 하나님이 당신네 교회에 보냈다면서 예언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성령이 목사님 교회에 지내다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했었는데 우리가 그 때 기억할 것은 성령운동은 위에서 내려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하면 그 불이 꺼지게 된다.

제가 중국에서 지내면서 한 여 전도사가 있었는데 늠름하고 여성 가운데 인물이었다. 그가 맡며느리고 자식이 없었다. 자기 시동생, 시누이, 동서 가운데 자식이 홀로 없었다. 시아버지가 철도청 근무하는데 몸이 안 좋은 분이었다. 그리고 그 남편도 지독해서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고 그래서 종종 어려움을 당했다. 시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이 며느리가 저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잘 이야기해서 시아버지를 제가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 여 전도사님이 목사님 한번 와서 기도해주는 것이 소원이라는 호소했더니 시아버지가 눈을 지긋하게 뜨더니 모셔오라는 것이었다.

20리를 그와 같이 갔다. 좋은 침상에 누워있는데 손을 잡고 오늘 처음 뵈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공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지 않았느냐면서 제가 지금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이 대신 죽음으로 영원히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믿을 마음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시아버지가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구원을 받고 싶어 교회를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상심해 있었다. 그 이야기에 저는 믿음은 여기서 믿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7분간 이야기를 했는데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세례를 받았다. 다시 문답을 하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느냐, 예수께서 대속하신 것을 믿느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느냐 등 문답을 다 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 굉장한 장례였다.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그 분이 쓰신 신앙고백을 다 보게 됐다. 여 전도사의 남편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더 이상 핍박하기 않고 그 여전도사의 활동을 잘 지원하게 됐다. 영성이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유명한 평신도 지도자가 어떤 일에서 플러스 ‘나’가 되면 악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일에 내가 들어가면 악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한 평신도가 공산당이 죽이고 말았다. 아무리 회유를 해도 안되니 공산당이 죽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성령시대에 사는데 성부시대에 살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 앞에 제물없이 나갈 수 없었다. 피 없이는 안 된다. 피흘림 없이는 사하심이 없다고 했다. 늘 제물을 준비해 피흘림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했다. 이제 우리가 영의 시대에 살면서 성령의 시대를 예비해야 한다.

복음은 간단하다. 예수께서 기독교 세우신 것이 아니다. 나 대신 죽은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 기독교가 죽은 것이 아니다. 종교 다원화, 구원의 다원화가 없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의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 전하되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니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로 깨닫게 하고 알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4:4을 보자.

나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내게 말하기를 ‘너는 내 것’이라고 했다. 언제 주님이 오시는지 알 수 없다. ‘어서 오소서’라는 자세로 헌신하고 많은 양들을 단련시키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