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을 하려고 어느 가게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있었다. 아직 기온은 영하의 날씨. 해가 떠오르는 듯하다가 이내 구름속으로 숨었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지만 굳이 물건을 사겠다는 생각보다는 식구들과 함께 하는 추억거리를 하나 더 만든다는 생각으로 추위를 견디며 인터넷을 돌아 다녔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서 한국에서 들려온 소식 하나. 안철수 후보사퇴!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단일화 협상룰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던 상황에서 돌연 사퇴라니? 이건 뭐지? 하는 충격과 함께 과연 안철수답다는 생각으로 순식간에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자신의 측근들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의 1/3정도가 화를 달래며 소주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어서 쏟아져 나오는 해석들. 그는 정치를 너무 모른다는 말도 들린다. 혹은 여론조사까지 가도 어차피 가망이 없어서 5년후를 기약한다는 비판도 있다. 모두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버린 이상 그저 대중의 인기에 만족하지는 않을테니까. 그건 연예인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달랐던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5년이란 긴 시간이다. 그 가능성만을 가지고 눈앞에 까지 와있는 대통령이라는 기회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선택을 놓고 2000년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제자들을 포함해서 그를 따르던 수만의 지지자들이 바랬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졸지에 세상을 바꾸어주기를 원했다.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고 평화롭게 사는 평범한 삶. 그 일은 가능해 보였고, 그리고 그 일은 정당해보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택한 길은 후보사퇴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그들에게는 5년후도 없었다. 오히려 그 이후로 수백년동안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밥이 되어야 했고, 핍박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위한 수퍼스타를 원했다. 그리고 가장 적격자로 예수를 지목했다. 그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그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서! 그런 예수가 힘없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열성은 순식간에 저주로 변했다. 그럼 예수님이 생각했던 정치란 어떤 것이었을까?
애브라함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노예해방을 가능하게 했던 남북전쟁의 승리도 있겠지만 그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드러난 그의 정신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밤낮으로 새겨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국민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국민은 어떤 때는 우매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하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국민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국민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국민 속에서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안철수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단지 이번에 그를 통해서 본 것이 있다면 그는 무엇이 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일화과정에서도 시종일관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약간 형이상학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말로 치부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정은 어찌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가난한 자들이 더 힘을 얻게 하는 참신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망에 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약속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퇴의 길을 택했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이기를 바랬는데, 그가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나서는 이내 실망했다. 왜냐고? 내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필자는 정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작은 약속을 실천하는 개개인의 노력이 이 세상을 올바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다. 자고 나면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욕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자신의 측근들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의 1/3정도가 화를 달래며 소주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어서 쏟아져 나오는 해석들. 그는 정치를 너무 모른다는 말도 들린다. 혹은 여론조사까지 가도 어차피 가망이 없어서 5년후를 기약한다는 비판도 있다. 모두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버린 이상 그저 대중의 인기에 만족하지는 않을테니까. 그건 연예인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달랐던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5년이란 긴 시간이다. 그 가능성만을 가지고 눈앞에 까지 와있는 대통령이라는 기회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선택을 놓고 2000년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제자들을 포함해서 그를 따르던 수만의 지지자들이 바랬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졸지에 세상을 바꾸어주기를 원했다.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고 평화롭게 사는 평범한 삶. 그 일은 가능해 보였고, 그리고 그 일은 정당해보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택한 길은 후보사퇴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그들에게는 5년후도 없었다. 오히려 그 이후로 수백년동안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밥이 되어야 했고, 핍박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위한 수퍼스타를 원했다. 그리고 가장 적격자로 예수를 지목했다. 그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그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서! 그런 예수가 힘없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열성은 순식간에 저주로 변했다. 그럼 예수님이 생각했던 정치란 어떤 것이었을까?
애브라함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노예해방을 가능하게 했던 남북전쟁의 승리도 있겠지만 그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드러난 그의 정신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밤낮으로 새겨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국민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국민은 어떤 때는 우매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하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국민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국민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국민 속에서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안철수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단지 이번에 그를 통해서 본 것이 있다면 그는 무엇이 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일화과정에서도 시종일관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약간 형이상학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말로 치부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정은 어찌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가난한 자들이 더 힘을 얻게 하는 참신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망에 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약속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퇴의 길을 택했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이기를 바랬는데, 그가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나서는 이내 실망했다. 왜냐고? 내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필자는 정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작은 약속을 실천하는 개개인의 노력이 이 세상을 올바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다. 자고 나면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욕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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