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서울 정릉동의 A교회는 예배 영상이나 주보 등에 사용하기 위해 최근 ‘글자체’(font) 관련 소프트웨어를 약 2천만원 들여 구입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해당 글자체를 ‘그냥’ 써왔다. 돈을 내고 써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글자체 개발 업체가 교회측에 그 대가를 요구해 갑작스레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사례2. 서울 서초동의 B교회도 얼마 전 ‘저작권 홍역’을 치렀다. 예배 등에서 사용했던 ‘찬양’(CCM, 워십송 등 ‘찬송가’를 제외한 기독교 음악을 통칭-편집자 주)이 문제였다. 이 교회 역시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결국 저작권 관계자의 문제제기로 이 교회는 1천만 원 상당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교회 특성 이용, 계획적 접근도

아직 한국교회에서 ‘저작권’(copyright)이라는 단어는 그리 익숙지 않다. ‘값 없이’ 주고받는 게 익숙한 세계에서 소유권,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생소하기만 하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 저작권은 마치 ‘시한폭탄’과 같다는 게 이 분야에 해박한 목회자들을 비롯한 저작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언제 터질지 모르기에 반드시 대비해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

저작권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교회는 아직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행위 자체가 영리 목적이 아니고, 사회 정서상 교회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벌일 업체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저작권법이 강화되는 추세에다 국가간 FTA 체결이 활발해지면서 저작권 침해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일부에선 “소송으로까지 가지 않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상당수 교회들이 이미 저작권 침해로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글자체’ 개발 업체들이 교회 특성을 이용,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말도 있어 주의를 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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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중 스크린에 찬양의 가사를 투사하는 것만으로도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 김진영 기자
한 저작권 전문가는 “최근 들어 글자체 개발 업체가 교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일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며 “이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글자체를 예배 영상이나 주보 등에 사용하는 것을 알고, 이를 빌미로 특정 교회에 거래를 요구하고 있다.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싫은 교회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에 이르는 글자체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례1의 A교회 담임목사는 “우리 교회와 같은 일이 (한국교회 저작권 문제에 있어) 하나의 전조가 아닐까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전교회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대응, 걸음마 단계

그러나 한국교회의 저작권 인식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1950년대 이미 저작권법을 마련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까지 올라온 국내 저작권 환경에 비춰보면, 교회는 그야말로 저작권 ‘무풍지대’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교계에서 저작권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법률회사의 변호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다”며 “저작권만을 다루는 로펌이 생겨날 만큼 국내 저작권 문제는 이미 이슈가 되고 있다. 교회가 이런 로펌들의 타겟이 될 수도 있을 것”고 말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몇 개의 저작권 관련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국내 목회자들로 구성된 KCCA를 비롯해 얼마 전 한국지부를 창설한 국제 저작권 단체 CCLI, 찬양 사역자들과 크리스천 연주자 등으로 구성된 KGMCA, 그리고 찬양 사역자들이 주축을 이룬 KCMCA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근래 조직을 갖춘 곳이라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들 단체들은 저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교회의 저작권 문제 해결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다. 저작권에 있어 비전문가인 교회를 대신해 관련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교회가 보다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동시에 저작권자들의 입장도 대변해, 교계에 ‘올바른 저작권 문화’를 만드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문제는 창구의 ‘단일화’다. 저작권 단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그들과 일일이 계약을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각 단체가 보유한 저작권이 상이할 경우 특정 단체와만 계약한 교회가 자칫 다른 단체의 저작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게 될 수 있다.

KGMCA 한 관계자는 “모든 단체의 목적은 같다. 교회와 저작권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그러자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회의 인식 변화 급선무

우선은 교회가 저작권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상대적 약자일 수 있는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가 급선무라는 견해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찬양에도 돈이 든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찬양 사역자들과의 ‘상생’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한 찬양 사역자는 “교회가 저작권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단순히 비용의 지불이 아닌 하나의 섬김으로 생각했으면 한다”며 “물론 사역자들은 돈이 아닌 사명감에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창작물을 사용하는 교회들은 그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그것이 저작물 사용자의 책임이자 마땅한 신앙인의 도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