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가 함께한 성서 스토리텔링 대담.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선교기념관에서 성경 인물 ‘아브라함’을 놓고 성서 스토리텔링 여섯번째 대담을 나눴다.

먼저 이어령 박사는 이날 아브라함을 통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기보다 ‘구조주의적’, ‘문화인류학적’, ‘문학 작품처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령 박사 “근친상간 등 나오는 성경 자녀들에게 읽힐 수 있겠나”
“스토리텔링으로 성경 읽으면 과학적·비과학적 문제 되지 않는다”

이 박사는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이 시간까지 끌고 온 이유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설사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믿게 되는 근거가 하나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저는 성경을 글자 하나도 못 고치는 무오류설로 읽으면 아이들한테도 읽어주기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토리텔링을 자꾸 사실적으로 읽으라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롯의 두 딸이 롯과 동침하는 내용 등을 자녀가 물었을 때 어떡하겠느냐”며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두 번이나 여동생이라고 내어주는 등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성경을 읽어보면 사실 그대로 읽었다가는 기독교를 믿을 사람이 없지만, 디테일은 구조를 만들어 주는 사인에 불과하고 구조 전체를 보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이야기임을 알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성경 무오류설은 바로 성경을 잘못 읽게 만드는 원리주의자들의 잘못이고, 거기서 사교가 나오고 잘 믿던 사람들이 성경을 떠나는 것”이라며 “저도 이때까지 문학 작품처럼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고 사실대로 성경을 믿으려 하니 난감하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스토리텔링을 하니 자꾸 목사님들에게 편지도 오고 전화도 오고, ‘믿는다더니 역시 머리에 많이 든 사람은 안 되겠구먼’ 이런 분들도 있더라”며 “하지만 우리처럼 성경을 읽는 것이 믿는 사람들처럼 읽는 것보다 훨씬 접근성이 강하고, 과학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논리에 의해 구약은 신약과 이어질 수 있는 예언서가 되며,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혼과 내혼, 정통 등의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

이어령 박사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나갔다<위 그림 참조>. 혼인관계에 있어 성경 뿐 아니라 당시는 문화인류학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이들끼리의 ‘외혼’과 근친간의 ‘내혼’, 외혼과 내혼의 중간에 해당하는 ‘정통’의 세 가지 구조가 있었다는 것. 성경에서는 아브라함과 하갈, 이스마엘이 외혼, 롯과 두 딸의 경우, 거기서 태어난 모압과 암몬이 내혼, 아브라함과 사라, 이어지는 이삭과 야곱이 정통에 해당한다.

동물에 비유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들짐승도 아니고, 애완용도 아닌 ‘가축’이라는 것. 방 안에서 기르는 고양이나 금붕어는 절대 먹지 않는데 이는 내혼과 같고, 아주 바깥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 이름 모를 들쥐 등도 먹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가족끼리 사고 팔고 하다 보면 망하게 되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전연 모르는 외국과의 무역도 서로 믿을 수 없어 하지 않았다. 이 박사는 “먹고 교환하고 결혼하는 것이 똑같은 구조”라며 “이삭도 근친도 아니고 가나안 족속도 아닌 먼 데 있던 친척에게로 가서 아내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렇듯 3대 교환조건이 있는데, 이는 돈(토지)과 피(혈연), 언어(이름)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교환처럼 결혼 제도는 피를 교환하는 것이고, 번성하는 민족을 주겠다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바꿔 주시기도 했다. 그는 “이 3가지 구조를 보면 아버지와 딸 이야기가 왜 나오며, 하갈 이야기가 왜 나오고, 사라가 본인조차 웃었지만 아브라함이 100세 가까이 아이를 낳았는지, 에서와 야곱 중에서 왜 야곱을 세웠는지가 나온다”며 “인간으로 돌아와서 전통으로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성부, 순종했던 이삭이 성자, 자기 힘으로 개척해 나간 야곱이 성령이 되는 삼위일체 가족 구조가 나오는데, 이는 성 가족 구조의 모델이 돼 되풀이된다”고 밝혔다.

이는 모세 때에 이르러 하나가 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설명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밝히셨던 것. 하나님은 인간으로 볼 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셋을 합쳐야 각각 다르지만 실은 하나이신, 우리가 아는 야훼 하나님이 된다. 그는 “이처럼 유일신 사상은 모세 때 비로소 확립됐고, 그 전에는 다신교와 비슷했다”며 “다양성과 포용성 없는 기독교라 자꾸 비난하는데, 이렇게 다양성이 존재하는 삼위일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의인 구제보다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

이어령 박사는 “오늘날 하나님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갈 곳을 결정하고, 결혼도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생명까지 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이러한 근대 자아가 어떻게 구약 속에 남겨진 이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느냐가 기독교인으로서 첫번째 과제가 될텐데, 우리는 이 관계를 모두 생략하고 그 당시 풍습으로만 구약을 이해한다면 생명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번성의 이름을 주시는 그 분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령 박사의 발언을 이재철 목사가 경청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소돔을 치겠다는 하나님에게 의인 50명부터 시작해 10명까지 줄여 나가면서 간구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이 의인이고 아들까지 죽여가면서 순종했지만 여기서 인간의 편을 들고 있다”며 “다 죽어가는데도 혼자 살아남은 노아와 비교해 볼 때, 이것이 오늘날 휴머니스트와 종교 사이에 마지막 남은 문제, 하나님과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겠나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쁜 짓 하고 있지만 인간인데’, 그 생각이 아브라함을 의인 되게 했고 그런 인정머리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죄 지은 자들에 대해 교조적으로 가차없이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거리를 가장 가깝게 해 주신 분이 바로, 모세도 야곱도 아브라함도 아닌 예수님이셨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어령 박사는 “예수님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과의 거리가 따뜻한 인정의 거리가 됐고, 의인 구제보다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때 처음 보게 된다”며 “하지만 구약에서도 50명에서 깎아주시는 모습에서 이를 조금 만날 수 있듯, ‘정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벌하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편을 드는 것이 하나님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가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를 얘기하지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포필리아(topophilia)와 바이오필리아(biophilia), 네오필리아(neophilia), 즉 장소에 대한 사랑, 생명체에 대한 사랑,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이라며 “이걸 갖고 나오면 어느 과학자나 경제학자, 무신론자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내 자식에게도 얘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대해 “구조적 관점에서 노아와 아브라함의 관계 속 공통점이나 여러 말씀들을 해 주셨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신학자들의 책 속에서나 목회자들의 이야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여러분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후에는 영적인 관점에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재철 목사 “인생의 실패는 하나님 은혜를 담는 더없이 좋은 그릇”
“실패한 사람만이 자신의 한계 인정하고 겸손하며 순종할 수 있다”

먼저 이 목사는 “성경에는 믿음의 위인들, 거인들의 실수 장면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는데, 다른 종교 경전들-특히 자력 종교인 경우-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라며 “하지만 성경에는 아담부터 노아와 아브라함, 다윗과 솔로몬 등 어떤 위인도 결점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그 자체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증거이고, 우리는 우리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 속에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나은가”라고 반문한 뒤 “아브라함이 저지른 모든 실수를 더해도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제게 비하면 성자와 같고, 저는 더 형편없는 인간”이라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은혜를 베푸셔서 선택하신 인간은 당신의 방법으로 교육시키시고 가다듬으시고 세우시고 때로는 치시고 하면서 만들어 가신다”고 했다. 또 “노아나 아브라함의 실수를 통해 우리는 한편으로 위로를 받는다”며 “이 분들도 그렇게 살았는데 하는, 동시에 내가 주님의 은혜 없었다면 똑같은 실수를 또다시 저지를텐데 그 은혜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자신을 더 곧추세워갈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인생의 실패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더없이 좋은 그릇”이라고도 했다. 이재철 목사는 “자녀 생산이 곧 능력이던 시절, 노아는 500세 이후, 아브라함은 이미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낙인찍힌 후 자식을 낳았다”며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왕자로 화려한 생활을 하던 때가 아닌, 시내산에서 양치던 모세를 부르셨듯 실패자를 부르신다”고 밝혔다. “하나님은 왜 인생 실패자를 부르시는가?”라고 질문한 이 목사는 “실패한 사람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재철 목사(아래쪽)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재철 목사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고기잡이를 실패한 날 그를 부르셨는데, 바꿔 얘기하면 베드로가 그날 밤 배가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주님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라며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실 때 참 믿음이 드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권면했다. 이 목사는 “많은 교우님들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개업예배 드려달라고 부탁하지만 망해서 폐업할 때 감사예배 드려달라는 건 못 봤는데, 그 분들에게는 성공해야만 하나님 은혜라 믿는 잘못된 등식이 있다”며 “내 자식이 대학 떨어졌다고 감사헌금 하는 교인이 없는데, 낙방으로 자식이 하나님 앞에 겸손한 도구로 부르심을 받는 접촉점이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을 정말 주관하심을 믿는다면 실패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 실패는 하나님 역사의 시발점이 되고, 이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새길 수 있다”고 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를 통해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말씀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한 유일한 기도가 소돔을 위한 기도였다”며 “그 이유는 피붙이 롯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러분의 피붙이가 어느 객지에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는 기도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대담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1400년동안 그렇게 부르면서도 무슨 뜻인질 몰랐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태복음 22장 32절을 통해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설명해 주신다”며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지금 살아있고, 여러분도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므로 영원을 목표로, 부활을 위해 살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삭을 번제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시험의 주체가 사탄이면 유혹이지만 하나님이시면 이는 훈련”이라며 “시험은 답을 알기 위해 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시험을 거치게 하시는 것은 이를 통해 인생의 답을 얻고 강하게 훈련시키시기 위함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다면, 자식에 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래서 ‘네 자식을 내게 줄 수 있느냐’는 시험을 봤고, 드릴 수 있어야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크리스천 기업가’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테스트가 있고, 그 테스트를 통해 ‘이 기업을 경제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기업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이렇구나’ 하는 답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내 기업이 창대해져야 된다고만 생각하면 절대 크리스천 기업이 될 수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테스트하실 때 두려워하지 말라”며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그러한 훈련을 거쳤고, 이를 통해 믿음의 조상, 믿음의 기업인, 믿음의 교육자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답을 알게 되며 그것을 실천할 때 하나님 역사가 그 삶을 통해 이뤄진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