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꼬박 10시간 앉아 12년째 투쟁
허리 꺾이지 않은 게 하나님의 은총
영화 <크로싱>에 나오는, 천장에 숨겨진 성경책을 기억하는가. 북한말 신약성경 ‘새누리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모퉁이돌선교회 김경진 교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오랜 수고와 헌신의 결정체로 2005년 완성 출간된 이 새누리성경은 현재 북한에 밀반입되고 있다. 그간 북한에 있는 비밀지하교인들에게 20여만 권에 달하는 새누리성경이 북한에 전달됐다. 작년 한 해에만 5만여 권이 보내졌다.
새누리성경이 나오기까지 그는 하루 꼬박 10시간씩 의자에 앉아 성경 원문과 씨름했다. 자그만치 12년간을 그렇게 버텼다. 7년간 신약 번역 작업에 이어 현재 5년째 구약 성경 본문을 다듬는 작업에 한창인 그의 책상 위엔 큼지막한 히브리어 성경이 펼쳐져 있다. 검은 뿔테 안경을 눌러쓰고 그는 오늘도 원문에 충실한 표현을 찾아내기까지 몇 번이고 헬라어·히브리어 사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인다. 지난 16일 모퉁이돌선교회 김경진 교수를 만났다.
“하루 10시간씩 12년간 의자에 앉아 버텼어요. 그러고도 아직 허리가 꺽이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은총이죠.”
올해로 그의 나이 예순 세 살.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히끗히끗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운 연륜이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온화하고 인자한 생김새가 영락없는 학자 스타일이다. 색깔로 치자면, 순결·고상함·청렴함·예의바름 등 을 상징하는 흰색에 가까운 인상을 지녔다고나 할까. 하나님의 말씀, 즉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에 다가가고자 애쓰고 고심한 흔적이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살에서도 묻어난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을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신학을 전공했다. 이후 40대 초반까지 대신대학교(현 안양대학 전신)를 비롯한 여러 강단에서 10여년간 신약을 가르쳤다. 도미 후엔 잠시 목회를 하다 모퉁이돌선교회와 인연을 맺고 12년째 북한말 성경 번역 작업을 해오고 있다. 故 최의원 박사(총신대 교수, 기독신학원 원장)와 쥬영흠 박사(건국대 교수, 원어 성경 연구자)가 그의 스승이다. 최 박사로부터 히브리어 성경 읽기를, 쥬 박사로부터 헬라어 신약 읽기를 배우고 훈련받았고, 풀러신학교의 김세윤 교수 등을 통해 학문적 세계를 익혔다.
언뜻 생각해 봐도 쉽지 않을 터. 12년간 10시간씩 의자에 앉아 원문과 씨름한다는 게. 솔직히 처음엔 그도 북한말 번역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회의도 들었다. 물론 난관도 많았다. 하지만 모퉁이돌선교회 이삭 회장과 이반석 총무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속적인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북한 교인들이 새누리성경을 받아 읽고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왔을 때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북한의 한 성도는 “북한에 있는 우리들을 남한의 성도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면서 “남한에서 보면 북한의 문화와 언어는 사투리고 거친 표현이 많을 텐데, 우리(북한) 문화를 존중해서 북한말 성경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전해 왔다. 또 다른 한 성도는 “북한 방식의 표기법(표현)으로 성경을 읽으니까 보다 이해하기가 쉽고 읽기 편하다. 하나님 말씀의 감동이 더 빨리 이뤄져서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내온 편지는 한두 통이 아니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북한 성도들이 반응을 보내왔다. 그제서야 비로서 ‘아… 이 일이 꼭 필요한 일이었구나’ 느끼게 됐다. 아무리 고된 작업일지라도, 대상으로부터의 반응 그것이 그에게 가장 큰 보람과 만족을 주었다. 앞으로 언젠가 평양에서 성경을 강의하는 게 소원이란다. 중국 교회 지도자들을 섬기는 일도 그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다음은 북한말 성경 번역과 관련, 그와 나눈 일문일답.
- 북한말 성경 번역을 하는 이유?
“북한 내 새롭게 등장한 젊은 세대는 기존의 공산주의 체재와 전혀 다른 사상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언어와 문화 면에 있어 기존 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을 위한 성경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우린 그 필요성을 15년 전부터 느끼고 북한말 성경 번역 작업을 진행해 왔다.
사회 자체가 변해서 젊은 세대들은 개역개정판이나 옛날에 번역된 구어체 어휘들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너무 많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북한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건 신성 모독이다. 원수는 김일성 원수 한 분이다. 남한에선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원수라고 표현하는데, 북한에선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웬수’라고 하자니, 너무 거칠고 극단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를 ‘네 대적을 사랑하라’고 번역했다.
마태복음 1장 18절(개역 개정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수령 중심의 북한 체제에서 ‘(인류의 지도자이신 예수님이) 나셨다’고 표현하는 건 지도자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아주 낮은 표현이다. ‘나셨다’보다는 ‘탄생하셨다’고 해야 의미가 제대로 통한다.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는 구절도 그렇다. 남한에선 미혼남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을 ‘동거’라고 한다면, 북한에선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살림을 차렸다’고 번역했다. 또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 또는 ‘잉태’했다고 해도 안 된다. 절대 지존이므로 ‘회임하셨다’는 극존칭 단어를 써야 한다. 그래서 ‘회임된 것이 드러났다’고 번역했다.”
- 북한말을 잘 알아야 번역할 수 있지 않나?
“최근에 탈북하신 분들을 비롯해 여러 세대가 우릴 도와주고 있다. 탈북자 2만여 명 중에 목사가 되신 분들도 있는데, 그들의 자문을 받아 교정보고 수정하고 있다. 신약의 경우 1년 넘짓 그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 번역의 메카니즘은 어떻게 되나?
“원문에서 직접 번역 작업을 하되 그동안 번역된 여러 역본들을 참고로 계속 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이 첫째는 영어 번역에서 중국어 번역, 그리고 한글 번역을 거쳤는데 거기에 일본어의 영향도 있다. 기본 방침은 이러한 외래어 문화 세례를 받은 요소들을 걷어낸다는 데 있다.
한 예로, 구약에 나오는 ‘규빗(cubit)’ 같은 도량형은 영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 히브리 원어는 ‘암마(ammah)’다. 그래서 새누리성경에선 ‘암마’라고 그대로 썼다.
이런 식으로 영어권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 문화에 맞도록 다듬어 편집했는데, 이것을 다 원문 중심으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 중국말을 거치는 과정에서 들어온 문화적인 요소도 바로 잡느라 애썼다. 중국말 표현이 거친 표현이 많고 우리 문화와 간격이 있어 이해 안 되는 게 많다.
예를 들어 성경에 ‘설만히 행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높은 분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감히 우쭐거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표현도 젊은 세대까지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 고유한 방식으로 바꿨다.”
-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겠다
“구약의 전통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이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심지어 사전을 편찬하신 분들도 서로 견해가 다를 때가 나온다. 그래서 암중모색(暗中摸索)일 때가 많다. (참고로 현대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히브리어는 복원된 히브리어다.) 이런 경우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해야 하는데, 한 단어를 놓고 저마다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 학자는 이렇게 보는 반면 저 학자는 다르게 보는 경우, 대략 난감하다. 여기에 성경 번역의 어려움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구약성경이 하나의 텍스트만 있는 게 아니라 사본이 여러 개로 갈라져 있고, 또 한 사본 내에서도 단어가 서로 다르게 쓰인 ‘이독 현상’이 발생할 경우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하니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굉장히 까다롭다. 의자에 앉아 하루에 10시간씩 버티는 것 자체가 투쟁 중의 투쟁이다.”
- 이 번역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에 나 자신이 발견한다는 데 제일 큰 의미가 있다. 또 원문 읽기를 해나가다 새롭게 발견된 성경 의미를 다른 이들에게 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대언자로서 보람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현재 진행중인 번역 작업은 대강 어떤 방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나?
“크게 다음의 3가지 방침을 따른다. 첫째, 앞으로 통일 시대를 내다보고 남북한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통일 성경을 만드는 것이다. 가칭 ‘겨렛말 성경’이라 이름 붙이려 한다. 겨레가 함께 볼 수 있는 성경이란 의미다.
두 번째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바르고, 쉽고, 아름다운 성경을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원문을 정확하고 품위있게 번역하고, 또 알기 쉬운 문장을 만들어 전하는 데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앞으로 1백년 동안 온 겨레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오래가는 성경을 만들되 해외 교포들도 읽기 쉽게 편집을 잘 다듬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각계 각층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구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정확하게 원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함이다.”
- 새누리성경은 현재 어느 정도 북한에 전해졌나?
“2005년 이래 지금까지 20만권 정도가 들어갔다. 우리를 돕는 분들도 많이 잡혀서 죽었다. 우리가 작업한 성경은, 작은 사이즈로 손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손 안의 성경’이다. 성경 소지에 위험이 따르는 만큼 휴대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보낸 성경을 읽고 있는 지하교회 교인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온지 3년이 지나면 ‘남한화(化)’되어 현지 언어 감각을 많이 잃어버린다. 그래서 현지 지하교회 교인들의 반응이 큰 도움이 된다.”
- 이 일을 방해하려는 세력도 있을텐데
“우리 사역의 목적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 이념 대립 구도에 휘말리지 말고, 복음 전달에만 모든 초점을 맞춰서 일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북한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배후 세력의 조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방식은 비폭력·비이념이고, 철저히 복음중심적이고 평화적이다. 우린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허리 꺾이지 않은 게 하나님의 은총
영화 <크로싱>에 나오는, 천장에 숨겨진 성경책을 기억하는가. 북한말 신약성경 ‘새누리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모퉁이돌선교회 김경진 교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오랜 수고와 헌신의 결정체로 2005년 완성 출간된 이 새누리성경은 현재 북한에 밀반입되고 있다. 그간 북한에 있는 비밀지하교인들에게 20여만 권에 달하는 새누리성경이 북한에 전달됐다. 작년 한 해에만 5만여 권이 보내졌다.
새누리성경이 나오기까지 그는 하루 꼬박 10시간씩 의자에 앉아 성경 원문과 씨름했다. 자그만치 12년간을 그렇게 버텼다. 7년간 신약 번역 작업에 이어 현재 5년째 구약 성경 본문을 다듬는 작업에 한창인 그의 책상 위엔 큼지막한 히브리어 성경이 펼쳐져 있다. 검은 뿔테 안경을 눌러쓰고 그는 오늘도 원문에 충실한 표현을 찾아내기까지 몇 번이고 헬라어·히브리어 사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인다. 지난 16일 모퉁이돌선교회 김경진 교수를 만났다.
“하루 10시간씩 12년간 의자에 앉아 버텼어요. 그러고도 아직 허리가 꺽이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은총이죠.”
올해로 그의 나이 예순 세 살.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히끗히끗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운 연륜이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온화하고 인자한 생김새가 영락없는 학자 스타일이다. 색깔로 치자면, 순결·고상함·청렴함·예의바름 등 을 상징하는 흰색에 가까운 인상을 지녔다고나 할까. 하나님의 말씀, 즉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에 다가가고자 애쓰고 고심한 흔적이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살에서도 묻어난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을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신학을 전공했다. 이후 40대 초반까지 대신대학교(현 안양대학 전신)를 비롯한 여러 강단에서 10여년간 신약을 가르쳤다. 도미 후엔 잠시 목회를 하다 모퉁이돌선교회와 인연을 맺고 12년째 북한말 성경 번역 작업을 해오고 있다. 故 최의원 박사(총신대 교수, 기독신학원 원장)와 쥬영흠 박사(건국대 교수, 원어 성경 연구자)가 그의 스승이다. 최 박사로부터 히브리어 성경 읽기를, 쥬 박사로부터 헬라어 신약 읽기를 배우고 훈련받았고, 풀러신학교의 김세윤 교수 등을 통해 학문적 세계를 익혔다.
언뜻 생각해 봐도 쉽지 않을 터. 12년간 10시간씩 의자에 앉아 원문과 씨름한다는 게. 솔직히 처음엔 그도 북한말 번역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회의도 들었다. 물론 난관도 많았다. 하지만 모퉁이돌선교회 이삭 회장과 이반석 총무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속적인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북한 교인들이 새누리성경을 받아 읽고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왔을 때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북한의 한 성도는 “북한에 있는 우리들을 남한의 성도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면서 “남한에서 보면 북한의 문화와 언어는 사투리고 거친 표현이 많을 텐데, 우리(북한) 문화를 존중해서 북한말 성경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전해 왔다. 또 다른 한 성도는 “북한 방식의 표기법(표현)으로 성경을 읽으니까 보다 이해하기가 쉽고 읽기 편하다. 하나님 말씀의 감동이 더 빨리 이뤄져서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내온 편지는 한두 통이 아니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북한 성도들이 반응을 보내왔다. 그제서야 비로서 ‘아… 이 일이 꼭 필요한 일이었구나’ 느끼게 됐다. 아무리 고된 작업일지라도, 대상으로부터의 반응 그것이 그에게 가장 큰 보람과 만족을 주었다. 앞으로 언젠가 평양에서 성경을 강의하는 게 소원이란다. 중국 교회 지도자들을 섬기는 일도 그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다음은 북한말 성경 번역과 관련, 그와 나눈 일문일답.
- 북한말 성경 번역을 하는 이유?
“북한 내 새롭게 등장한 젊은 세대는 기존의 공산주의 체재와 전혀 다른 사상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언어와 문화 면에 있어 기존 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을 위한 성경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우린 그 필요성을 15년 전부터 느끼고 북한말 성경 번역 작업을 진행해 왔다.
사회 자체가 변해서 젊은 세대들은 개역개정판이나 옛날에 번역된 구어체 어휘들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너무 많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북한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건 신성 모독이다. 원수는 김일성 원수 한 분이다. 남한에선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원수라고 표현하는데, 북한에선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웬수’라고 하자니, 너무 거칠고 극단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를 ‘네 대적을 사랑하라’고 번역했다.
마태복음 1장 18절(개역 개정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수령 중심의 북한 체제에서 ‘(인류의 지도자이신 예수님이) 나셨다’고 표현하는 건 지도자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아주 낮은 표현이다. ‘나셨다’보다는 ‘탄생하셨다’고 해야 의미가 제대로 통한다.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는 구절도 그렇다. 남한에선 미혼남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을 ‘동거’라고 한다면, 북한에선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살림을 차렸다’고 번역했다. 또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 또는 ‘잉태’했다고 해도 안 된다. 절대 지존이므로 ‘회임하셨다’는 극존칭 단어를 써야 한다. 그래서 ‘회임된 것이 드러났다’고 번역했다.”
- 북한말을 잘 알아야 번역할 수 있지 않나?
“최근에 탈북하신 분들을 비롯해 여러 세대가 우릴 도와주고 있다. 탈북자 2만여 명 중에 목사가 되신 분들도 있는데, 그들의 자문을 받아 교정보고 수정하고 있다. 신약의 경우 1년 넘짓 그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 번역의 메카니즘은 어떻게 되나?
“원문에서 직접 번역 작업을 하되 그동안 번역된 여러 역본들을 참고로 계속 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이 첫째는 영어 번역에서 중국어 번역, 그리고 한글 번역을 거쳤는데 거기에 일본어의 영향도 있다. 기본 방침은 이러한 외래어 문화 세례를 받은 요소들을 걷어낸다는 데 있다.
한 예로, 구약에 나오는 ‘규빗(cubit)’ 같은 도량형은 영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 히브리 원어는 ‘암마(ammah)’다. 그래서 새누리성경에선 ‘암마’라고 그대로 썼다.
이런 식으로 영어권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 문화에 맞도록 다듬어 편집했는데, 이것을 다 원문 중심으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 중국말을 거치는 과정에서 들어온 문화적인 요소도 바로 잡느라 애썼다. 중국말 표현이 거친 표현이 많고 우리 문화와 간격이 있어 이해 안 되는 게 많다.
예를 들어 성경에 ‘설만히 행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높은 분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감히 우쭐거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표현도 젊은 세대까지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 고유한 방식으로 바꿨다.”
-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겠다
“구약의 전통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이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심지어 사전을 편찬하신 분들도 서로 견해가 다를 때가 나온다. 그래서 암중모색(暗中摸索)일 때가 많다. (참고로 현대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히브리어는 복원된 히브리어다.) 이런 경우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해야 하는데, 한 단어를 놓고 저마다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 학자는 이렇게 보는 반면 저 학자는 다르게 보는 경우, 대략 난감하다. 여기에 성경 번역의 어려움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구약성경이 하나의 텍스트만 있는 게 아니라 사본이 여러 개로 갈라져 있고, 또 한 사본 내에서도 단어가 서로 다르게 쓰인 ‘이독 현상’이 발생할 경우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하니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굉장히 까다롭다. 의자에 앉아 하루에 10시간씩 버티는 것 자체가 투쟁 중의 투쟁이다.”
- 이 번역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에 나 자신이 발견한다는 데 제일 큰 의미가 있다. 또 원문 읽기를 해나가다 새롭게 발견된 성경 의미를 다른 이들에게 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대언자로서 보람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현재 진행중인 번역 작업은 대강 어떤 방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나?
“크게 다음의 3가지 방침을 따른다. 첫째, 앞으로 통일 시대를 내다보고 남북한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통일 성경을 만드는 것이다. 가칭 ‘겨렛말 성경’이라 이름 붙이려 한다. 겨레가 함께 볼 수 있는 성경이란 의미다.
두 번째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바르고, 쉽고, 아름다운 성경을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원문을 정확하고 품위있게 번역하고, 또 알기 쉬운 문장을 만들어 전하는 데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앞으로 1백년 동안 온 겨레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오래가는 성경을 만들되 해외 교포들도 읽기 쉽게 편집을 잘 다듬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각계 각층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구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정확하게 원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함이다.”
- 새누리성경은 현재 어느 정도 북한에 전해졌나?
“2005년 이래 지금까지 20만권 정도가 들어갔다. 우리를 돕는 분들도 많이 잡혀서 죽었다. 우리가 작업한 성경은, 작은 사이즈로 손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손 안의 성경’이다. 성경 소지에 위험이 따르는 만큼 휴대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보낸 성경을 읽고 있는 지하교회 교인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온지 3년이 지나면 ‘남한화(化)’되어 현지 언어 감각을 많이 잃어버린다. 그래서 현지 지하교회 교인들의 반응이 큰 도움이 된다.”
- 이 일을 방해하려는 세력도 있을텐데
“우리 사역의 목적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 이념 대립 구도에 휘말리지 말고, 복음 전달에만 모든 초점을 맞춰서 일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북한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배후 세력의 조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방식은 비폭력·비이념이고, 철저히 복음중심적이고 평화적이다. 우린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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