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시온연합감리교회 담임 송희섭 목사
본문: 엡 4:21-24 “새 사람을 입으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 대한 열망을 품으라’ 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어딜 봐도 흔들만한 깃발이 없고, 부를 만한 노래도 없습니다. 외칠만한 구호도 없습니다. 이럴 때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깃발은 하나님이라는 깃발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 밖에 없습니다.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는 새롭게 된 심령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열열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대한 열망을 가져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내 육체가 주를 앙망하나이다.’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마치 시냇물을 찾는 사슴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사슴이라는 동물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식도가 말라 죽는 동물입니다. 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그런 열망으로 찾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행복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미소를 발견했다면 우리의 행복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로닝 커닝햄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현존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복음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풍성하지만 물질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성장했다고 합니다. 5살 때 어머니가 5달러를 주고 달걀을 사오라고 합니다. 5달러는 그 가정이 한 주일을 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아이가 심부름을 갔다가 와서 말이 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엄마에게 돈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함께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알려주세요.’ 어머니가 기도를 마치고 아이에게 “가던 길에 큰 느티나무가 있을거야 그 아래 떨어져 있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갔더니 5달러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음성을 듣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루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국제 선교 단체를 만들어 국제적으로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 탈퇴를 해야 합니다. 고민하다가 교단회의에 상정을 했는데 부결이 되어 결국 교단을 탈퇴하게 됩니다. 그가 이제 결심을 합니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이제는 하나님께로 갈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로 가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교단 회의를 마치고 작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사고가 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눈을 떴을 때 몸이 찢겨져 여기 저기서 피가 흘렀습니다. 순간 아내가 생각이 나서 아내를 보니 머리가 깨진 아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라고 이러십니까?’ 그 때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이래도 나를 믿을래? 나를 따를 수 있니?”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아내를 데려 가고 저를 데려 가셔도 하나님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또 들리는 음성이 ‘기도해라’ 음성이 들렸습니다. 한참 기도하는데 숨소리가 들립니다. 아내의 의식이 돌아와 병원에 가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커닝햄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바라 본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였습니다. 이것이 국제 선교단체 표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만한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대한 갈망이 우리 삶을 새롭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말씀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너희가 그에게서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았으니 믿고 나가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으면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사람이 참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느 한 순간 변하는 때가 있습니다. 변화의 배후에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승부를 걸면 그 인생은 감동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마름과 갈증은 말씀으로 풀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승부를 걸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감동적인 삶을 살기 원하고 타는 목마름을 풀기를 원한다면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는 그의 목마름을 풀 수 있고 감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함 같이 같이 하라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 했습니다. 긍휼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아닙니다. 긍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이 많고 잘 우시는 분이십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우리가 다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24시간 전의 이야기를 영화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맞고 찢어지고 퉁퉁 붓고 이것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라는 것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입니다. 거기에는 큰 긍휼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하늘에서 큰 굵은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눈물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스마엘이라는 아브라함의 서자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하갈에서 나온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하갈이 아들을 낳으니 사라를 멸시를 합니다. 사라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하갈은 쫓겨났습니다. 얼마 안가 물이 떨어지고 죽게 생겼습니다. 그 때 하갈이 하나님을 부릅니다.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과 그 아들을 살리십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우리의 고통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품고 말씀에 승부를 걸고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목마름과 갈증이 풀릴 것이고 그 인생은 감동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감동적인 여름을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가는 교회 담임 서경훈 목사
본문 : 민2:1-34 “은혜만이 죄를 덮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가면서 중간 중간 한 장소에 머물게 될 때 행군할 때 어떤 식으로 진을 치고 행군하게 되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1장 인구센서스를 기록할 때 남쪽에 진을 친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를 설명했습니다. 그 다음 동쪽에 유다, 잇사갈, 스블론 세지파 인원을 보았습니다. 다음 서쪽으로가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을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단, 아셀, 납달리 세 개의 지파를 소개하고 총 인원이 60만3천5백5십명이었다고 인구 센서스는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나머지 12지파를 세 지파씩 묶어서 네 개 그룹으로 나누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배치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행군하는가를 설명합니다. 제일 먼저 소개하는 그룹이 동쪽의 유다, 잇사갈, 스블론이 나옵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시내산을 향해 갑니다. 이들이 맨 앞에 서서 나아갑니다. 두번째로 나아가는 르우벤, 시므온, 갓이 출발합니다. 그 다음에 성막을 지키는 레위 지파가 나갑니다. 그 다음 서쪽에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이 나아갑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에 위치한 단, 아셀, 납달리 지파가 맨 마지막에 따라 갑니다. 레위 지파가 한 가운데 서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관심을 갖고 봐야 하는 것은 왜 이런 식으로 진을 치고 이런 식으로 행군하게 되는가 입니다.

동쪽에 위치한 유다, 잇사갈, 스불론은 아버지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결혼한 레아가 낳은 아들입니다. 반대쪽으로 위치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과 관계가 있는 아들입니다. 동쪽과 서쪽이 왜 중요하냐면 성막을 중심으로 봤을 때 동편에서 서편을 바라보고 성막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으로 향해서 나아가는 방향이 서쪽이 됩니다. 이 두 방향에 레아의 자손들과 라헬의 자손이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유독, 야곱의 장자인 유다와 차남인 시므온이 이상하게도 그 동쪽에 위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레아가 낳은 자식으로 유다, 잇사갈, 스불론이 있습니다. 레아가 낳은 자식의 대표격은 르우벤과 시므온인데 이들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쪽과 북쪽은 아셀, 단, 납달리, 갓 이 네 아들은 빌하와 실바가 낳은 자녀입니다. 남과 북은 여종으로부터 낳은 아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르우벤과 시므온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장남과 차남이 여종이 낳은 아들들과 같은 그룹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심있게 봐야 할 것입니다. 왜 르우벤과 시므온이 여종들의 아들과 그룹을 형성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야곱이 숨을 거두기 직전 12아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던 사건을 봐야 합니다.

창세기 49장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너희에게 후일에 있을 일들을 너희에게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장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야곱이 자기 장자인 르우벤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젊은 혈기를 제어하지 못해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갖게 된 이 일은 아버지 가슴에 대못질을 한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르우벤의 자손들은 이 죄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야곱의 아들로써 맏형으로 역할을 감당했어야 했던 르우벤은 죄악에 자신을 넘겨준 그 사건 이후로 르우벤과 그 지파는 천천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지은 죄가 대대로 자손에게 이어진 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왜 여종들의 지파와 한 묶음이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같이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저주입니까? ‘이스라엘 중에서 흐트리로다.’ 그들이 분노로 인해서 혈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이 삼촌 집에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형과 화해를 합니다. 이 때 야곱이 가나안의 있는 이방인 히위족속 중 하몰이라는 이방인이 사는 근처에 가서 삽니다. 이 때 야곱의 딸 디나가 이방 족장들에게 욕을 보이게 됩니다. 이방인 하몰 집안은 야곱의 집안과 결혼을 성사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이 너희 부족 전체가 할례를 받으면 허락하겠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서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 집안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폭력과 잔인함은 이 집안을 맡길 수 없는 것으로 야곱에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 가문을 시믄온과 레위에게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후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 정체성을 잃고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흐트리라’ 했던 야곱의 저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후에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남북 왕국으로 나뉩니다. 남왕국의 이름은 유다 왕국이고 북쪽은 이스라엘 이라고 했습니다. 북쪽은 유다와 시므온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지파가 세운 나라가 북왕국입니다. 이것을 통해 르우벤과 시므온과 야곱의 여종들과 왜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악의 결과 입니다. 그 결과는 자손 대대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르우벤과 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레위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다른 지파와 달리 성막을 지키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머무는 특권을 받습니다. 레위지파하고 관계 된 한 가지 특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머물고 있을 때 금송아지 사건을 기억합니다. 출애굽기 32장입니다. 아론을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모세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 합니다. 그 때 아무도 나오지 않는데 레위 지파가 나오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게 됩니다. 가나안 땅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 때 이스라엘 이라는 한 민족을 끌어내셔서 그 민족을 도구로 해서 죄악 가운데 있는 이 백성을 심판하셨습니다. 죄악과 같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출32장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께 등을 돌린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레위 지파를 사용하셔서 그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중에 죄악이 가득할 때 남과 북으로 나누고 갈라 놓으셨습니다. 이들이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이방민족 앗시리아를 도구를 사용하셔서 북쪽지파를 치셨습니다. 그래도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이방민족을 도구로해서 자기 백성이지만 남왕국 유다도 치셨습니다. 자기 민족이지만 하나님은 눈감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에서 보았던 레위하고 시므온이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똑같이 저주를 받았음에도 레위 지파는 하나님 앞에 선택을 받게 됩니다. 그 선택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스라엘 제사장 지파를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다를 보겠습니다. 후에는 그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메시야 지파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유다를 축복합니다. ‘메시야가 이 지파를 통해서 올 것이다’ 예언을 합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는 것은 유다도 하나같이 죄인입니다. 형제들과 같이 동생 요셉을 팔아 버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짐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인 사건 속에서 분명 유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유다는 자기 형제를 떠나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이 다말이라는 이방여인과 결혼해서 며느리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죽습니다.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어느 날 다말은 유다가 자기 동네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창녀 처럼 변장을 하고 유다를 유혹합니다. 시아버지와 관계를 갖고 도장과 지팡이를 받습니다. 후에 물건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 여인을 찾지 못합니다. 결국 물건을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잡혀 온 며느리가 도장과 지팡이를 내놓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는 말이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유다 자신은 죄악 가운데 있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며느리 앞에서 이웃들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또한 요셉을 판 사건을 후회하며 마침내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 놓는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유다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점점 그 분에게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유다와 레위의 삶이 점점점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감에 따라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르우벤과 시몬, 레위도 유다고 다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레위와 유다를 보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인생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죄악을 덮었습니다. 그 죄악의 영향력을 끊어버리고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이 은혜만이 우리의 죄악을 덮고 우리를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죄악를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가득하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교회 담임 김성회 목사
본문 : 롬10:9~10 “구원의 확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잊기 쉬운 문제가 구원의 확신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 백성이다’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다’ 라는 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보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삶의 문제가 해결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형통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통치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셨습니다. 부활의 의미는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기쁜 것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서원해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주일 마다 양복을 입는 것이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신학교 학생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날 저에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어느 부흥 강사 목사님이 저에게 칭찬하는 것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신학교에 다녔던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 후에 전혀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종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는 것이 분명히 세워졌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9절 보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조건는 믿음 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서가 정경으로 되기 직전 많은 사람의 반대로 성경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강조하지 아니하고 행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잘못 깨달았습니다. 야고보의 본 말씀은 믿음을 통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지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철저한 순종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았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성도에게 요구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이 문제입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내려 놓고 사는 것이 성도들의 열매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죽이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마틴 루터가 죄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죄책감과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비텐베르크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며 주문을 외워도 안됩니다. 그는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었습니다. 로마서1장 16절 17절을 읽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 살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구원의 의미는 죄 가운데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 역사를 바꾸는 일입니다. 전세계 역사를 바꾸는 일입니다. 어떤 종교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까?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로마서4장 25절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너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가 내 안에서 살아있을 때 거기에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심이 변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문제,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회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더불어 오는 것이 회개의 영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봅시다. ‘내가 정말 회개 했는가.’ 회개는 돌이켜서 다시는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을 만나서 하나님을 만난 자는 회개하고 다시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했습니다. 요1장 12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에 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모든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생활을 통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능력을 사모하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첫 사랑을 회복해 보세요.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밤새 기도하고 회개했던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날마다 변치 않는 마음입니다. 생활의 믿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구원의 믿음 하나님의 말씀의 확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기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사도 바울은 입으로 고백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로마 시대 때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식민지화 했던 그 때에 크리스천들은 모두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땅 속에 수천 수만의 시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크리스천들이 핍박을 피해서 힘든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 안에 하나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입으로 시인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당시 그 때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 초차 힘든 때입니다. 그 당시에는 물고기 모양을 보고 서로 알아 보는 것입니다. 몰래 가정 교회에 모여서 모일 때 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눈물 흘려 기도하고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그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 혹시나 잡히게 되면 그들은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모진 핍박 속에서 한번도 주님을 부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질문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아니하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담대히 세상에 나아가서 선포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라’는 말씀은 밖으로 나아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다운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 생활 자체보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신앙 생활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요한1서 5장 13절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신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외적 증거와 성령이 말씀 하시는 내적 증거가 일치 될 때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 때 능력이 있고 쉼이 있습니다. 확신 있는 신앙 생활을 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