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베다니장로교회 담임 최병호 목사
본문 : 마7:7-12 “기도응답의 비결"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33명의 선교단원들이 잘 다녀왔습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께서 코스타리카 선교하라고 얼마나 좋은 날씨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매년 선교할 때 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코스타리카는 우기철입니다. 비가 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곳에만 비가 안 왔습니다. 우리가 비 속을 피해가면서 하나님이 선교하도록 매일 도와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중보 기도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일기까지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매일 우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150-300여명의 사람이 매일 왔다 갑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우리는 떠나지만 떠나지 않는 성령님께서 함께하셔서 그 복음의 씨앗이 30배, 60배, 100배로 자라서 장로님, 권사님, 훌륭한 정치가, 교육가들이 배출 될 것을 믿습니다.

하루는 마약 중독에 빠져 있는 젊은 청년이 집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저를 찾아왔어요.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저를 붙들고 목사님이 기도 해주시면 제가 새롭게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이 청년이 마지막 그 섬을 떠날 때까지 선교팀에 와서 짐을 옮겨주고, 끝까지 떠나지 않고 도왔습니다. 또 어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에게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번째 “절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라. 누구도 욕하지 말라. 감사하라 그럼 당신이 살 수 있습니다. 감사를 찾고 하나님을 찬양해라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을 죽게 하는 부정적인 말이 많습니다. 그런 말은 듣지 말고 소망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들어라. 성경을 들으세요. 복음서를 열심히 읽으세요. 시편 23편을 매일 읽으세요”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찬양을 매일 들으세요 그럼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당신을 고치시고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얼굴이 환해져셔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살리시고 고치시고 소망을 주시기 원합니다. 선교를 가면 33명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게 하신 이유가 이 한 여인을 돌보라고, 마약에 찌든 한 청년을 붙들고 기도해주라고 보내셨음을 경험합니다.

이번에 섬이 하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숙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3개의 숙소가 있었는데 그 곳을 운영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을 과부 세 명이 숙소를 지어서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간증을 듣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 세 과부가 오늘 성경 말씀을 읽고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비법입니다. 이 세 과부가 이렇게 정확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세 과부의 이름은 릴리아, 이사벨, 도라 라는 세 여인입니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으로 아이를 낳아 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이 분들이 살 길이 막막해서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10명의 과부들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해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필요를 놓고 간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간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어요. 이 여인들이 처음에 10명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곳은 섬이니까 모두 물고기 잡는 어부들입니다. 그래서 물고기 잡는 배를 만들기로 하고 20명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10명의 과부가 기도하면서 시작하다가 7명의 과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돌아 갔다고 합니다. 3명의 과부가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고 믿고 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배를 만들어서 배를 팔아서 돈을 벌고, 물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름철 두 달 동안 너무 고기를 많이 잡아서 정부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3명의 여인이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 곳에 숙소를 지어서 관광지 사람들에게 제공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하늘만 쳐다 봅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기도하고 열심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찾았습니다.

두 번째 기도의 단계는 열심히 기도 응답을 찾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코스타리카 지역 수도를 찾아 가서 제일 큰 교회에 가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후원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건축가도 만났습니다. 땅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청 공무원을 찾아 갔습니다. 계속 찾아 가니까. 그 공무원의 마음을 바꾸셔서 국유지를 얻게 되어 넓은 땅에 숙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열심히 찾으면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응답하십니다. 어떤 사건, 누구를 통해서 응답하시는지 찾아야 합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놀라운 비전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은 거꾸로 돌아갔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웅덩이에서, 이집트 노예에서 보디발의 집에서 피할 길을 주시고, 감옥에서 간수를 만나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통해서 응답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응답하십니다. 만남은 중요합니다. 한 평생의 모든 만남이 축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날 낮에 나그네 세 명이 지나가는데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기도한 기도 응답이 저 사람을 통해 이뤄질 수 있겠다.’ 그래서 그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우리 인생에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우리 기도 대부분이 만남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이 세 과부가 땅도 없고, 나무 살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은 건축가, 사업가를 만나게 하시고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영적인 눈이 열려서 우리 모든 만남이 축복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이 여인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드려 봐야 열리는지 안 열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문을 두드릴 때 열리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어딘가 열리는 문이 있습니다.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이 번 돈으로 학교에 많은 기금을 냈습니다. 학교 아이들의 유니폼을 만들고, 이 여인들이 산호세에 가서 치과의사를 데리고 와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제일 가난한 동네가 제일 부자 동네가 되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과부 세 명이 그 동네를 살렸습니다. 이 세 과부처럼 갈 길이 막막한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열심히 간구하고 두드릴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번에 선교 가서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새벽 제단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적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제일장로교회 담임 서삼정 목사
본문 : 시131:1-3 “믿음으로 평온을 누리세요”


'평온'이라는 말이 놀라운 말입니다. 마음의 평화가 아주 느껴지고 그렇게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을 평온이라 말합니다. 평온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우리가 누리게 됩니다. 평온이 우리에게 임할 때 행복하게 됩니다. 인간 관계도 좋아집니다. 건강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평온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 평온은 성품이 좋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다고 평온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복잡한 곳을 떠나서 조용한 별장에 지내면 좋겠다 하고 갔습니다. 첫날과 둘째 날 좋은 것입니다. 셋 째날 되니까 기다려지고 그런 것입니다. 일 주일 지나니 못살겠다.하고 다시 짐을 싸서 돌아왔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실패의 바다에서도 허우적 거리고 성공의 바다에서도 허우적 거리게 됩니다.

문제는 풍랑이 치는 바다를 잘 탈 수 있도록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풍파 많은 세상, 복잡한 세상에서 평온을 누리려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성전에 올라 갈 때 마다 이 가사에 곡에 붙여서 부르는 노래 입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마음의 고요와 평온’입니다. 이 내용은 다윗 자신이 복잡한 왕으로서 갈등이 심한 그런 삶을 사는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었던 평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평온을 어떻게 누렸는가?’ 믿음으로 여호와를 바라 봄으로 겸손해지고 욕심을 버리고 그 하나님 품에 자신을 온전히 맡김으로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겸손해야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1절 입니다. 교만한 자는 그 마음이 늘 불안합니다. 높은 산 꼭대기는 시원하고 좋지만 쉴 만한 곳이 못됩니다. 늘 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쉼은 낮은 골짜기, 낮은 곳에 취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는 마치 목자가 가축을 골짜기로 내려가게 해서 쉼을 얻게 하는 것처럼 자기 백성을 골짜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낮은 곳에 처할 때 마음의 평온을 누리게 됩니다. 바닷물 위는 파도가 그칠 사이가 없지만은 바다 심층 사이에는 깊은 평안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겸손해지면 마음의 갈등이 멈추게 됩니다. 겸손은 어떻게 해야 겸손할까요?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있다고 뭔가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바라 볼 때 우리가 겸손하게 됩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자기의 무능을 알게 됩니다. 무지를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자기의 연약함을 알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자기의 추함을 알게 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바라볼 때 경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자기가 부서지고 깨어집니다. 그래서 겸손해 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겸손해 지기를 바랍니다. 존 뉴턴은 노예 장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아버지가 자식은 자기처럼 노예 장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는 도무지 공부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존 뉴턴도 노예 장사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잡아서 영국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어느 날도 노예를 싣고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향하는데 바다 한 복판에서 대풍을 만났습니다 .도무지 살아날 희망이 없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바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구원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충성스런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부르심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목회하다가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같은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생활에 기억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어요. “제 기억에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런 죄인을 이해할 수 없이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가 지은 노래 ‘Amazing Grace’에 그의 신앙의 고백이 잘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 아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욕심을 버리면 평온해 집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욕심을 버려야 마음에 고요가 오고 평온해 집니다. 어떻게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고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니면 욕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아무리 커도 결코 욕심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꿈을 주신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욕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따라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선한 목적을 가지시고 목적에 알맞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토기장이 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에 따라서, 그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그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이 꿈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이 내 욕심인지, 과욕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이 꿈에 합당한 믿음을 주셨는가’ ‘은사를 주셨는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는 하나님이 쓰시는 표적이 반드시 있습니다. 내 능력을 능가하는 내 입장을 능가하는 하나님이 쓰시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이루어가십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한 대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에 초월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창대하게 하시고, 겨자씨로 시작해도 큰 나무가 되게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지연된다고 생각할 때는 나를 만들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지연된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자는 나를 믿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표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자족함이 옵니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고요해 지고 평온해 집니다.

세 번째는 맡기면 평온해 집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바라고 어미 품을 찾을 때는 늘 불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이 좋아서 어미 품을 찾아 안기면 마음에 고요함과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고 얻으려고 섬기고, 얻으려고 바치고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이 성숙해져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믿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기에 때문에 그 분을 의지하고, 예수님이 내 구주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그 분이 내 목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인도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원하는 뜻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께 맡겼는가.’를 알려면 내 마음이 얼마나 평온한가 고요한가를 보면 압니다. 우리가 맡기면 그 만큼 평정심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작은 조각 배를 타고 풍랑이 치는 바다에서 주무시고 계셨어요. 베드로는 죽게 되었다고 예수님을 깨웠어요. 그런 베드로도 성령을 받고 옥 중에서 깊이 잠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평온을 얻고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려면 여호와를 계속 바라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계속 바라 보기 원합니다. 그런 가운데 겸손해지고, 욕심이 없어지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여러분이 평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풍랑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평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슈가로프한인교회 담임 최봉수 목사
본문 : 창17:1 “동행”


1980년대 크게 유행했던 ‘가요’ 가운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노래입니다. 연인끼리 함께 있는 동행의 행복, 즐거움을 잘 표현한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곡으로 연인 가운데 나누는 동행의 즐거움과 행복을 노래했지만 그것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과 여러분들이 나누는 그 동행의 과정 가운데 경험하는 그 행복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경험하게 되는 놀라움과 은총,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가려면 먼저 여러분 삶 가운데 떠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껏 우리가 걸어 온 식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은 지금껏 우리가 걸어 온 길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세계로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방주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는 먼저 그가 살아왔던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던 룻이라는 모압 여인이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강력한 권고가 있음에도 거부하고 시어머니를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태어나고 자란 모압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며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내려 놓고 그 장소를 떠나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님과 길을 걷기 위해서 반드시 떠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뒤를 돌아 보는 자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우리는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 보내지 못하는 옛 습관이 무엇입니까? 거짓, 도적질, 더러운 말, 악독, 분냄, 노함, 떠드는 것. 훼방, 악의, 희롱의 말, 술 취함, 방탕, 음행, 욕심, 부정과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부끄러운 모든 말들 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 습관들이 여러분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길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섞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떠나 보내야 할 것은 한마디로 잘못된 것을 좇아 가는 습관입니다. 습관은 반복된 행동입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고 계속 반복된 습관입니다. 습관이 모이면 그 사람의 성품, 인격이 됩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지만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하면 그 위에 아무리 예수 믿는 테크닉의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악취를 풍기면서 살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말씀의 검으로 자르시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어 달라고 구하십시오. 더러운 말, 희롱의 말 거짓 말 등 구습을 좇는 습관 중에 언어가 계속 등장합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분이 주님과 동행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언행이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동행자들입니다. 떠나 보내야 할 것 미련 두지 마시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고 떠나 보내시기 바랍니다.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하십시오 그것이 떠남이 가능한 것입니다. 떠남이 전제 될 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과 구체적으로 동행하십시오. 삶의 현장에 구석 구석에 구체적으로 실천하시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한 번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오고 가는 모두 세대. 인생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주님이 ‘내게로 오라’ 부르셨습니다. 주님께 나아 가십시오. 안식을 약속하며 부르신 주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라’ 하십니다. 주님이 그 말씀 하실 때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는 말은 그 멍에를 내가 함께 지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이 가는 곳에 함께 동행하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은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계시는지 아닌지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자가 진단법 세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돈을 어떻게 벌고 그 번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압니다. 크리스천은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성실하게 벌어야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십일조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 되심에 대한 선언이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에 대한 나의 사랑고백이고, 나를 자녀 삼으시고, 구원하시고 공급하심에 대한 감사의 작은 표현일 뿐입니다.

두 번째, 여러분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보면 압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생명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은 죽은 영혼을 살려 내기 위해서 그 영혼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십니까? 주님의 소원은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그 분의 관심은 우리입니다. 그 분의 자녀 된 우리가 그 분의 소원입니다. 그 분은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부르십니다. ‘너는 여호와의 손에 아름다운 면류관이라. 그 분의 손에 들린 왕관이라.’ 저와 여러분은 그 분의 기쁨입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세번째, 주님과 동행함으로 솟아 나는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압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부담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동행 하는 삶 자체가 큰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기쁘게 동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범사 가운데 기쁨이 넘칩니다. 나를 새롭게 바꿔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고 눈물 흘리면서 나아갑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일은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라 완전하라’ 하십니다. ‘동행’입니다. 이 말씀을 듣던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주님과 동행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우리와 동행하기 원하셨습니다. 오늘도 나와 동행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용하는 일, 시간을 쓰는 일, 대인관계에서 예수의 향기를 풍기는 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일에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나아가는 동행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