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며, 사도 바울의 신실한 선교사역 동역자이고, 절친한 친구이다. 사도행전에서 ‘실라’로 불려진 그는 바울 서신에서 ‘실루아노’(살전 1:1)로 불린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 사도 바울 및 디모데와 더불어 문안 인사를 보냈다.
실라는 사도 바울의 신실한 마음의 형제로 알려졌으며(벧전 5:12), 예언자(선지자) 중 하나였다(행 15:22,32). 또 실라는 초대교회 선임사도 베드로와도 좋은 친분을 갖고 있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할 때 대필하기도 했다(벧전 5:12).
그는 예루살렘 총회 결의 사항을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신흥 크리스천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도 바울과 같이 파견됐다(행 15:22, 27, 32). 예루살렘 총회에 모였던 사도와 장로들 및 교회 대표자들은 구원을 위해 할례 없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총회장 야고보의 제안을 채택하여, 각 교회에 급히 통보하게 됐다. 유다와 실라는 전령으로서 임무를 모두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에 남아 전도하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49년-52년)을 시작할 즈음, 마가 요한과의 동반을 거부한 것 때문에 제1차 전도여행의 동반자 바나바와 작별했다. 바나바와 마가 요한은 그들의 고향 구브로에 들어가 교회 사역을 수행했고, 사도 바울은 그의 친구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다니며 전도했다(행 15:40).
사도 바울과 그의 친구 실라는 귀신들려 점치는 자를 치유한 것이 화근(禍根)이 돼 빌립보 관가에 피소(被訴)됐다. 귀신들린 불쌍한 여인을 이용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던 은퇴 로마 군인들이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동원해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 폭행을 가했으며, 공식 재판도 하지 않은 채 옷을 모두 벗기고 구타하여 투옥시켰다(고후 11:25). 사도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내린 사악한 조치였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판 절차를 거치도록 법규화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과 그의 협력자 실라는 빌립보 옥중에서도 육신적인 고통을 이기며 열심히 기도했고, 하나님을 크게 찬양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도 사도 바울과 실라의 아름다운 찬양소리를 듣고 하나님과 교회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고통 중에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도 바울과 실라를 매우 존경하게 됐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지진과 이적을 통해서 바울과 실라를 전격 구출했다. 빌립보 감옥의 문이 기적적으로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채워졌던 착고가 풀리게 됐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들은 죄수들 모두가 계획적으로 난동을 부려 탈옥한 줄로 추정하게 됐다. 다음 날 윗사람들에게 문책당하여 비참한 사형을 받느니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무 중 죄수들이 탈옥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해당 간수가 치르도록 법규화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리어 간수를 도와 죽을 자리에서 살려 줬다. 한 사람도 탈옥하지 않고 감옥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리쳐 알려줬던 것이다.
간수가 그들 앞에 엎드려 구원의 방법을 묻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면서 전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간수는 사도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을 했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됐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아무 이유 없이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수난을 겪기는 했으나,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만방에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기회가 됐다(행 16:19-40).
실라는 암비볼리와 아볼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까지 사도 바울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했다. 주후 1세기 당시 최고의 철학사상인 헬레니즘을 지적으로 잘 이해해, 개방되고 폭넓은 생각을 가진 실라와 바울은 전도 사역의 환상적인 콤비가 됐다. 개방적인 헬레니즘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고 세우는데 공헌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전도사역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됐다.
반면, 시기로 인하여 바울과 실라 일행을 핍박하는 정통 유대인들도 곳곳에 많이 일어났다. 선교팀을 쫓아내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해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실라는 야밤에 베뢰아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무리들을 충동하여 비슷한 모양의 소동을 일으키자, 베뢰아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박해가 미치기 전 즉시 그들을 피신시켰다. 사도 바울은 아덴으로 떠났고, 바울의 지시를 받은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체류하여 연약한 교회를 돌보게 됐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제1인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욕심이 너무나 과해져 때로는 부정과 불의를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범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적합한 사람을 지도자로 옹립하려는 겸허한 협력자보다 자신이 직접 리더가 돼서 사회를 좌지우지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교회도, 정치도 사회의 모든 부문도 예외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금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상대방의 인격에 흠집을 내서라도 최고 지도자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들이 대단하다. 대한민국을 위해 최고 통수권자로서 헌신하며 봉사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를 조용히 밀어주고 협력하는 실라 같은 인물이 필요한 때이다.
실라는 사도 바울의 신실한 마음의 형제로 알려졌으며(벧전 5:12), 예언자(선지자) 중 하나였다(행 15:22,32). 또 실라는 초대교회 선임사도 베드로와도 좋은 친분을 갖고 있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할 때 대필하기도 했다(벧전 5:12).
그는 예루살렘 총회 결의 사항을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신흥 크리스천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도 바울과 같이 파견됐다(행 15:22, 27, 32). 예루살렘 총회에 모였던 사도와 장로들 및 교회 대표자들은 구원을 위해 할례 없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총회장 야고보의 제안을 채택하여, 각 교회에 급히 통보하게 됐다. 유다와 실라는 전령으로서 임무를 모두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에 남아 전도하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49년-52년)을 시작할 즈음, 마가 요한과의 동반을 거부한 것 때문에 제1차 전도여행의 동반자 바나바와 작별했다. 바나바와 마가 요한은 그들의 고향 구브로에 들어가 교회 사역을 수행했고, 사도 바울은 그의 친구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다니며 전도했다(행 15:40).
사도 바울과 그의 친구 실라는 귀신들려 점치는 자를 치유한 것이 화근(禍根)이 돼 빌립보 관가에 피소(被訴)됐다. 귀신들린 불쌍한 여인을 이용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던 은퇴 로마 군인들이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동원해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 폭행을 가했으며, 공식 재판도 하지 않은 채 옷을 모두 벗기고 구타하여 투옥시켰다(고후 11:25). 사도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내린 사악한 조치였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판 절차를 거치도록 법규화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과 그의 협력자 실라는 빌립보 옥중에서도 육신적인 고통을 이기며 열심히 기도했고, 하나님을 크게 찬양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도 사도 바울과 실라의 아름다운 찬양소리를 듣고 하나님과 교회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고통 중에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도 바울과 실라를 매우 존경하게 됐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지진과 이적을 통해서 바울과 실라를 전격 구출했다. 빌립보 감옥의 문이 기적적으로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채워졌던 착고가 풀리게 됐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들은 죄수들 모두가 계획적으로 난동을 부려 탈옥한 줄로 추정하게 됐다. 다음 날 윗사람들에게 문책당하여 비참한 사형을 받느니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무 중 죄수들이 탈옥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해당 간수가 치르도록 법규화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리어 간수를 도와 죽을 자리에서 살려 줬다. 한 사람도 탈옥하지 않고 감옥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리쳐 알려줬던 것이다.
간수가 그들 앞에 엎드려 구원의 방법을 묻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면서 전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간수는 사도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을 했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됐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아무 이유 없이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수난을 겪기는 했으나,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만방에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기회가 됐다(행 16:19-40).
실라는 암비볼리와 아볼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까지 사도 바울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했다. 주후 1세기 당시 최고의 철학사상인 헬레니즘을 지적으로 잘 이해해, 개방되고 폭넓은 생각을 가진 실라와 바울은 전도 사역의 환상적인 콤비가 됐다. 개방적인 헬레니즘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고 세우는데 공헌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전도사역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됐다.
반면, 시기로 인하여 바울과 실라 일행을 핍박하는 정통 유대인들도 곳곳에 많이 일어났다. 선교팀을 쫓아내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해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실라는 야밤에 베뢰아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무리들을 충동하여 비슷한 모양의 소동을 일으키자, 베뢰아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박해가 미치기 전 즉시 그들을 피신시켰다. 사도 바울은 아덴으로 떠났고, 바울의 지시를 받은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체류하여 연약한 교회를 돌보게 됐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제1인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욕심이 너무나 과해져 때로는 부정과 불의를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범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적합한 사람을 지도자로 옹립하려는 겸허한 협력자보다 자신이 직접 리더가 돼서 사회를 좌지우지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교회도, 정치도 사회의 모든 부문도 예외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금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상대방의 인격에 흠집을 내서라도 최고 지도자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들이 대단하다. 대한민국을 위해 최고 통수권자로서 헌신하며 봉사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를 조용히 밀어주고 협력하는 실라 같은 인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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