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비전교회 담임 정경성 목사
본문 : 에스겔 37장 1절-14절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우리는 벤허 영화를 기억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었던 벤허, 주님을 만나서 회복된 귀한 영화입니다. 본문 에스겔 선지자도 깊은 절망에 놓여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절망감, 특별히 바벨론 포로생활 동안 제사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입니다. 지도자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절망감을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한 송이 소망의 꽃을 보여줍니다. 오늘 분문의 내용은 에스겔은 들판을 돌아 보았습니다. 마른 뼈가 온 들판에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숲이 생명을 드러내야 할 들판이 죽음의 골짜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에스겔이 “당신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말씀대로 행합니다. 그러자 뼈들이 움직이면서 힘 줄이 이어지고 살이 붙었고 가죽이 덮어졌습니다.

여기서 에스겔에게 두번째 단계를 말씀합니다. 9절입니다.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 명령대로 숨에게 명령하자 시체와 같았던 이들에게 불어 넣어져 생명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이야기 통해서 전하시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친히 설명을 하십니다. 11~14절입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로운 소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전하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른 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오늘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마른 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를 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살아갑니다. 교회 모습은 어떻습니까.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교회가 비난을 받고 비판을 받습니다. 반성하고 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자신의 내면이 마른 뼈와 같은 모습, 시기와 질투, 미움 이기적인 욕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들 포기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사랑으로 오십니다. 절망 가운데 사랑의 빛으로 다가 오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이 시대 소망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 속에서 새로운 소망의 노래 불러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절망의 골짜기 속에 울려 퍼지는 새로운 희망의 울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심은 미래에 있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우리들은 과거에 메여 질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바라보라’ 하십니다. 앞으로 다가 오는 하나님 능력과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 보라 하십니다. 너를 향해 행하시는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하십니다. 소망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 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새로운 희망의 아침이 밝아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자는 반석 같은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소망을 갖고 나아갑니다.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겸솜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주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선포 될 때 시대가 새로워지고 나라가 변화되는 부흥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이 모든 것을 변화 시키는 능력의 근원입니다. 날마다 진리에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길을 가기 원합니다. 7~8절 보겠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려면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생기는 생명, 호흡,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슬픈 자를 위로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신앙 생활에 힘과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을 쫓아가는 비결은 성령충만입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할 때 육체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흑암과 같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실로암한인교회 담임 신윤일 목사
본문 : 스가랴 2:1~13 “척량줄의 환상”


이스라엘 백성이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이 지났습니다. 스가랴서는 학개 말라기서와 같이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은 백성인데 남의 나라에 70년 동안 방관했다는 것은 포로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역사였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이 잘못이 있구나,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구나 자신들을 새롭게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스가랴의 뜻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할 때 힘이 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스가랴 이름이 갖고 있는 뜻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십니다.

스가랴서 1장4절 보겠습니다. 포로시기에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모세오경을 보았는데 너희가 하나님을 섬겨라 그렇지 않으면 쫓김을 당한다. 그 사실을 알고 깨달은 것이 조상들이 하나님을 떠났구나 였습니다. 그 죄의 문제의 해결, 너희 조상이 죄를 지었다 너희가 죄 짓지 말고 잘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여기 끝나는 것이 아니라. 3장 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종 대제사장 영적인 큰 인물이 나옵니다. 그 역시 죄가 많아 불 가운데서 끄집어 낸 시커멓게 나무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고소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더러운 옷을 벗기로 아름다운 옷을 깨끗한 새 옷을 입히고 관을 씌우게 하라 하십니다.. 죄 있는 대제사장을 깨끗이 씻기고 새로운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8절 보겠습니다. 대제사장과 동료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리는 사람들이다.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사람들을 새롭게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새롭게 세워 주실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8장 8절 보겠습니다. 누가 해결 합니까. 내 종 순(荀), 가지, 새싹 이것은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하게 씻기고 하나님 앞에 세워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 인생의 문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죄의 문제가 해결 되지 못하면 자원하는 심령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 해결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단은 계속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어주십니다. 영적으로 힘들고 권태기 빠졌다 생각하면 내가 받은 용서 은혜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신앙의 첫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죄인이었을 때를 깨닫고 죄인 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권태기에 있습니까.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일어나기 원합니다.

스가랴서 환상에 보면 본문 척량 줄을 잡은 자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먹줄입니다. 먹줄은 건물을 지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설계대로 구분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먹줄입니다. 척량줄을 잡은 자가 있습니다. 본문 2장 4절 봅시다. 사람들이 다 돌아왔습니다. 아이도 낳고 더 많이 돌아왔습니다. 성곽은 다 무너지고 성벽도 없고 성벽은 외적 침입 막는 보호막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더 많은 성곽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곽을 지어주겠다는 비젼을 가지고 척량 줄을 갖고 오신 것입니다. 5절 보겠습니다. 사람이 도저히 지을 수 없는 내가 불 성곽이 되어 주겠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불벽이 되어 주겠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하십니다. 무엇으로 세상을 이깁니까. 하나님이 나의 불벽이 되어 주실 때 이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늘 확인해야 합니다.

호세아서는 창녀 고멜을 만나게 하신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와 같이 사랑함을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서 주제는 ’아버지께 돌아가자’ 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만이 생명과 승리가 있습니다. 회복한 다시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이야기 입니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원래 아름다운 이스라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영적으로 권태기가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었던 첫 사랑을 기억하고 불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로회 아틀란타 중앙교회 담임 한병철 목사
본문 : 사도행전 1:8, 6:7 “나아가 만지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참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살아 활동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86%의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것만으로 안됩니다. 실제적 사귐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시는 그분과 아바 아버지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받아들여질 때 아빠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를 감싸 계시는 성령님을 맞이하고 성령님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때로는 나의 지식, 분석을 넘어서는 차원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사모하기 원합니다. 나 아닌 더 높은 존재에게 사로 잡혀 사는 삶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처음 성령강림 때 사람들은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에 이끌려 방언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나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사람이 볼 때 제정신 아닌 것 처럼 보였습니다. 과연 성령의 사람들은 세상이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킨 사람들이 함께 있는 그 때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닌 것 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옥에 가두고 협박하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전파하니 그것이 제정신 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순절 모인 그 자리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을 때 그들이 새로워졌습니다. 성령으로 새로워질 때 나타나는 것은 원심적인 움직이 나타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로 잡는 순간 우리 눈을 밖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순간 우리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나아가게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의 영이 임했을 때 주의 영에 감동되어 사역을 시작하신 주님은 끊임없이 낯선 사람 찾아갔습니다. 이 고을 저 성읍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교회는 낯선 지역 낯선 사람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도행전 6장 7절, 9장 12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성령에 이끌림 받은 교회가 부단히 밖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6장 7절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제사장 가운데서 이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9장 31절 이 후렴구가 또 나옵니다. “수가 더 많아 지더라” 이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 퍼져나가게 됩니다. 12장 24절 보겠습니다. 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유대지방, 사마리아지방, 팔레스타인 벗어나 땅끝까지 나아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와 복음이 성령으로 인해 땅 끝으로 퍼져 나아감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누군가에게 밖으로 퍼져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을 나아가서 만지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통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 멀리 떠나 죄인 되었을 때 우리에게 손을 뻗어 우리를 만져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을 만져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깨어났고 영적인 존재로 깨어나 참된 소망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가 어루만지시기 원합니다. 전도한다는 말은 모든 영혼을 찾아가 그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 힘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대한 사랑을 품기 원하십니다. 그들을 찾아가서 성령께서 그들을 만져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역할 하기 원하십니다. 그 결과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 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낯선 사람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 만져 주시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끊임없이 나아가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으로 유대로 사마리아 땅 끝으로 나아가 믿는 사람 숫자가 흥왕하여졌습니다. 교회마다 힘을 얻고 믿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 지니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이러한 역사가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더 많은 영혼 어루만지기 위해서 우리를 나누기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함 받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말씀처럼 성령의 이끄시는 곳으로 나아가 많은 영혼들의 삶을 만지시는 일에 헌신하기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권능을 받고 우리 삶이 변화 되기 원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고 위로 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 받고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온 땅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나아가 많은 영혼들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귀한 일을 이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