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갈보리장로교회 최진묵 목사
본문 : 행전2:4 - 14 “처음교회에 방언을 주신 이유”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만에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날은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추수의 첫 열매 드리는 명절이었고, 축제의 날입니다. 그래서 전세계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학자들은 “약 2백 만명 정도가 예루살렘으로 모였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수 백만 명의 군중들 가운데 다락방의 모여든 120명 성도들에게 불처럼 각 개인에게 임하셨습니다. 이 성령강림사건은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이루신 구원 사업의 첫 열매로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를 받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락방의 모였던 120명의 모임을 하나님은 신약교회로 세우신 사건입니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이 부분 잘 이해해야 신앙의 오순절강림사건이 큰 의미 있게 됩니다.

오늘 사도행전 강해 ‘교회를 압시다’ 시리즈 8번째 시간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났을 때 그 성령 공동체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말씀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현대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말씀으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순절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그 사건 후에 첫 번째 그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방언이 터졌습니다. 본문 2장 4절 같이 읽겠습니다. 방언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어가 아닌 말을 방언이라 합니다. 이 행전 2장 4절의 헬라어의 방언은 혀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영어와 신약 성경이 쓰인 헬라어에서는 언어, 말 이라는 뜻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령강림 때에도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받았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 입을 통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역사가 그 안에서 말과 같이 나온 것이 방언입니다.

8절 다락방에서 나온 방언은 그 당시 16개국 200만명 사람이 알아 듣는 말이었습니다. 아람어, 그리스어, 본도어 각 나라의 방언 이었습니다. 오순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이 흩어진 사람들은 유대 나라가 바벨론나라에 망했을 때 포로로 잡혀 간 노예들입니다. 다락방의 모인 사람은 각 국의 나라 언어를 배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의 말을 바꾸어 그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고전14장 2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 방언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기도할 때 다른 방언을 말할 때 놀란 사람은 그 방언을 들었던 예루살렘에 모인 각 국 사람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방언의 역사를 보면서 주변에 예수를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려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설교한 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 3천명이 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공동체 속에 가득할 때 교회는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뀐 언어와 삶의 모습도 방언입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힘을 주셔서 말하게 하심이 방언입니다. 이제 성령님은 제자들의 심령 속에서 그들의 몸과 생각, 어루만지시고 그들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고 태도가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믿음은 말로 증명이 되어 집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의 생각을 바꾸시고 그것이 말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방언입니다. 또 하나 보려고 하는 것은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 현대 와서 신앙의 중요한 자리 찾게 되었습니다. 건전하고 성경적인 은사 운동은 개인의 신앙과 교회에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은사에 대해서 바로 알고 그 은사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은 영의 비밀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12장 방언 운동에 대한 것이 나옵니다. 방언은 우리가 사랑으로 할 때 유익한 것입니다. 고전14장 2절 방언은 내 영과 하나님과의 비밀을 나누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자기 속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입을 여는 것입니다. 고전14장 19,20절 방언은 자신의 신앙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만 마디 방언 보다 지혜롭게 깨달은 다섯마디 말을 성도들에게 말하고 전합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현대 방언을 성경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떤 은사를 가졌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은 반드시 그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합니다. 또한 교회를 세웁니다. 본문 말씀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제자들이 당당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신 대로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살 수 있습니까. 나를 지배하도록 성령님 앞에 나 자신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나를 죽이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는 것이 방언입니다. 우리교회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들고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생명교회 유영익 목사
본문 : 창 27: 26 - 29, 34 “내게 축복하소서”


수 년 전에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려 13년 넘게 감옥생활 했던 황대권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풀려날 수 있는 자신이 아는 방법 동원했지만 풀려 나올 수 없었습니다. 옥중에서 가장 유일한 낙(樂)은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감옥 주변의 피어난 꽃을 바라 보며 그림을 그리고 거기기 편지를 쓰며 삶의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교훈들을 여동생과 나눕니다. 그 편지가 모아져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이 ‘야생초 편지’라는 책입니다. 그 야생초 편지를 보면 나팔 꽃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웃 감옥수에게 받은 나팔 꽃 씨앗을 심어 키우는데 다른 감옥수의 나팔 꽃 보다 풍성하게 잘 자랐습니다. 그것을 보며 그 이유를 여동생에게 이렇게 알립니다. 중요한 것은 꽃에 대한 염원이며, 매일 물을 주며 나팔 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고 격려해 준단다. 나팔 꽃은 나의 기(氣)를 먹고 자라는 것과 같단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제 마음 속에 나의 가족은 나의 무슨 기(氣)를 먹고 살까 생각했습니다. 나팔 꽃이 주인의 기(氣)를 먹고 자라듯 나의 가족도 우리의 기(氣)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 ‘기'(氣) 를 성경적 용어로 말하면 축복입니다. 창27장 34절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했던 에서의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축복을 받고 자라고 있을까요?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에게 주신 특권과 책임 중 하나가 축복권입니다. 그렇기에 자녀를 축복할 수 있을 때 축복하십시다. 이삭과 같이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삶의 터전에서 어떻게 우리 자녀와 사랑하는 가족에게 축복을 안겨 주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애정이 담긴 접촉을 통해서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따듯한 손길을 통해서 축복할 수 있습니다. 26,27절 축복의 과정에서 애정이 담긴 축복을 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기 위해서 가까이 오게 합니다. 그리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춥니다. 우리가 안고 입맞추는 것은 소중한 사람에게 합니다. 친밀한 나의 마음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삭이 야곱을 포옹하고 입맞추는 나이가 어린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마흔 살 되었을 때였습니다. 축복은 나이와 무관한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축복의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읽어 오면서 제 마음속에서도 축복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먼저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 던 중 ‘축복의 언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애정이 담긴 접촉을 할 때 어떻게 축복이 전달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손으로 사랑이 담긴 접촉을 할 때 그것이 상징적인 중요한 의미로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성경을 보면 가까이 오게 하고 손으로 안수하고 축복합니다. 안아주고 입맞추고 손을 머리에 얹는 이 모든 신체적 접촉은 너를 수용하고 축복한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떻게 진정으로 가족을 축복하며 살 수 있을까요? 애정이 담긴 의미 있는 터치는 자녀와 배우자를 구체적으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칭찬과 인정의 말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 달려 있다고 솔로몬 왕은 잠언 18장 21에 말했습니다. 우리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삭은 축복의 마음을 입을 열어 전했습니다. 축복의 말은 칭찬과 인정의 말을 뜻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배우자도 우리가 전해주는 ‘기’(氣) 축복을 먹고 용기를 얻고 힘을 얻습니다. 칭찬과 인정하는 말에 인색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축복할 때 믿음의 조상이 그랬습니다. 28절, 29절 자녀가 장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바라보며 빌어줍니다. 이삭은 아들의 장래를 내다 보며 첫째 땅의 수확의 풍성함을 위해서 축복합니다. 둘째는 열방과 형제를 다스릴 수 있는 지도력을 위해서 축복합니다. 셋째로 부메랑 효과를 발휘하는 축복을 빕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받기 원한다고 축복합니다. 자녀가 축복의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가정을 세우시고 자녀를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축복권을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가족들을 축복 할 수 있을 때 사랑의 언어로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를 축복하신 것처럼 축복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샘물장로교회 함종협 목사
본문 : 시112:1-3 “복이 있도다”


하나님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만드시고 이 땅을 다 만드시고 참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고 유독 좋지 않은 한 가지가 아담이 홀로 독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 만드신 마지막 걸작품입니다.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고 위로와 치유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떻게 하면 더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 복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통해서 비결을 찾아 보기 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10장 13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누리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22장 14절 하나님을 경외 할 때 나오는 열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복 있는 가정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가정입니다. 성경 중에 가장 복 중의 복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큰 복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복을 받는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참된 자녀의 사랑이 어떤 길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29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서 나아가면 그들과 그 자손에게 복이 임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보면 후손이 이 땅에서 강성하며 정직자의 후손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질적인 부요, 재물 뿐만 아니라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후손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가정이 살아야 자녀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첫번째는 신앙입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두번째는 건강한 가정을 물려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유산입니다. 영적인 복을 물려 주는 것이 부모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부모의 믿음을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삶의 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복과 은혜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가정은 세포와 같습니다. 가정이 건강하면 자녀가 잘되고 교회가 잘됩니다. ‘로마 제국 패망사’라는 책을 보면 로마제국이 왜 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지식과 부요함을 가진 제국이 왜 몰락했는가 그것은 로마의 가정이 붕괴되었다는 겁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이 땅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바로 세워야 하는 비전을 품고 사는 자들입니다. 가정에서 사람이 형성 되어지고,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이 시대 문제는 가정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아름다운 복을 주셨는데 이것을 지키지 못한 결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인 문제를 놓고 믿음의 유산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거룩한 비전을 품고 살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자녀들을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눌 때 배가가 되어집니다. 5절 은혜를 퍼주고 나누는 삶이 잘됩니다. 창18장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그 나그네가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밀을 함께 나누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창19장 롯도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구원 받은 은혜가 나그네를 통해서 임했습니다. 왕상17장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접대했습니다. 극심한 가뭄 중에 대접했을 때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왕하 4장 수넴여자가 엘리야를 접대했을 때 평생의 기도제목인 자식을 얻게 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물은 흘러가야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복을 나누고 베풀 때 넘치는 은혜의 역사가 있습니다. 심은 것이 있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교회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부지런히 심을 때 여러분 자녀가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길 따라서 믿음의 방법을 따라서 복된 삶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