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심 (막 11:12-18, 마 21:18-19, 12-13, 눅 19:45-48)

다음날 곧 월요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나와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셨다. 이 길은 전날 벳바게 맞은편 마을에 매여있던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던 같은 길이다. 예수님은 시장하셨기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셨으나 아무것도 얻지를 못하셨다.(각주 7) 이에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기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하셨으니 이는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만약 교훈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시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무화과 나무에 애매한 분풀이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가는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는 기록을 남김으로 교훈에 대하여 암시하였다.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마가의 기록에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마태의 기록에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누가의 기록에는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이에 대한 선지자들의 기록은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에서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4.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방문하다 (요 12:20-50)
유월절 절기는 유대인들만 올라왔던 것은 아니다. 본문에 따르면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도 절기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기 위하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요청하였고, 빌립은 안드레를 찾아가 말하고 그 두 사람이 예수님께 이 사실을 고하였다. 헬라인이 예수님을 찾은 것과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셨다. 이에 무리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고 말하고 있다. 이 일은 월요일 성전을 방문하신 때에 있었던 일이다.

5.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가 시든 것을 발견하다 (막 11:19-25, 마 21:19-22, 눅 21:37-38)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지내시고, 저녁에는 성전을 떠나 감람산 베다니에 머무셨다가 다시 아침에 성전을 방문하신 일은 일반적이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셨다. 전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기억한 제자들은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씀하였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과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루리라는 이 말씀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마태의 기록에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백히 믿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자들도 왜 무화과 나무가 말랐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무화과 나무가 말랐는지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이셨다. ‘말씀하셨으니 말랐나이다’에 대한 믿음이 실린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저주하신 그대로 된 일에 대하여 여전히 제자들은 나무가 마른 사실에 대해 의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두 가지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열매 없는 사람은 무화과 나무처럼 될 것이라는 교훈과 아울러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이루리라는 교훈이다.

6. 산헤드린 공의원들이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다 (막 11:27-12:12, 마 21:23-22:14, 눅 20:1-19)
같은 날 성전 뜰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 서기관,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냐>는 것이 그들이 대적한 질문이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을 방문하셨을 때에 무리들이 외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몹시 못마땅했었다. 그때에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매우 부끄럽게 하셨다. 다시금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와 같은 연장선에 두시되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하여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이 적절한 질문은 종교 지도자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당황한 지도자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된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이에 그들은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을 회피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악한 관원들로 고소하였다. 세 가지 비유란 포도원 주인 비유 (막12:1-12, 마21:33-41, 눅20:9-16), 두 아들 비유 (마21:28-32), 자기 아들의 혼인을 위한 잔치를 베푼 임금 비유 (마22:1-14)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비유는 곧 자기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 알고 <즉시 체포하려고 했지만> 따르는 무리들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7.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로 인하여 함정에 빠뜨리려 하다 (막 12:13-17, 마 22:15-22, 눅 20:20-26)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가 실패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로마의 정치적인 문제로 끌어가고자 했다. 누가는 그 사실을 좀 더 직설적으로 기록하였다: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 하여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였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들고 나온 문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냐. 우리가 세금을 바칠까 말까>라는 것이 그들이 들고 나온 문제였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마가는 <그 외식함을 아시고> 마태는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라 기록하였다. 악한 관리들의 심중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그들을 꾸짖으셨다.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 .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지도자들은 더 이상 말로써 예수님을 책 잡을 수가 없어 잠잠하였다.

8.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하다 (막 12:18-27, 마 22:23-33, 눅 20:27-40)
아마도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했던 이 질문은, 종종 바리새인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없다 하는 사람들이다. 사두개인들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사도행전 23:6-8에도 기록되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는 말씀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사두개인들은 더 이상 말로써 예수님을 책 잡을 수 없게 되었다.

-------------------------------------------------------
각주 7: 마가복음은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는 이유를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기록하였다. 무화과 철이 아닌데도 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로부터 열매를 기대하셨는가.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기록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참고한다.

.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