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내 생명의 은인이시며 목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시던 사랑하는 어머님이 98세를 사시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영광스러운 장례를 마치고 자녀들이 어머니의 유품을 나누어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심으로 어머니의 눈물과 손때가 묻은 성경책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장손 되는 형님의 큰 아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할머니의 성경책을 갖기로 오래 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로인 아버지를 이어 자기도 장로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무릎에 앉히고 읽어 주시던 이 성경책을 작은 아버지인 목사님이 가지고 가실까봐서 걱정을 했다면서 가족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작은 아버지, 이 성경책은 제가 가질께요” 하면서 울먹이며 가져다 품에 안는다. 두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종철아, 너 꼭 훌륭한 장로님 되거라”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무곡 찬송가와 목도리를 가지려고 하자 “오빠, 이 목도리, 그건, 여자 건데…” 하며 여동생이 가로 막는다. “여자 거면 어떠니… 어머니가 하시던 거라 내가 미국에 가지고 가고 싶어” 하며 어머니의 목도리를 가지고 왔다.

옷장에 간직해 두었다가 날씨가 추워져서 꺼냈다. 어머니 목도리를 보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며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 분 냄새가 난다. 어머니 사랑이 그립다. 목에 걸어 보았다.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할 수가 없다. 어머니 손길이 닿는 것 같다. 그래서 목에 걸고 거울을 보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며 한참을 있었다. 참 좋다. 여자 것이라 단추 방향이 달라서 어색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신났다.

지난 주일에 목도리를 하고 교회를 갔다. 처음 보는 목도리를 하고 나간 나를 보면서 “목사님, 이 목도리 누가 선물해 주신 거예요. 이번 성탄절에 받으신 모양이죠. 잘 어울리고 좋네요. 많이 따뜻하시겠어요” 하고 칭찬을 한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자격지심에서 일까. 누군가가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거 여자 것 아니야. 은퇴 목사님께 누가 여자 목도리를 선물했데….” 뭐라고 하던 상관이 없다. 그래서 주책없게 춥던 덥던 요즘 그냥 하고 다닌다. 그런데 요즘 들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목도리가 치료기가 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목이 뻣뻣하고 근육이 뭉치는 것 같고 아프더니 금년 들어와서는 통증이 심하다. 그래서 안마기를 사서 두들기기도 하고 파스도 바르고 하면서 내 달 초에 정기 점검일이라 홈닥터에게 가서 상의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오십견이 오는 건가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목도리를 기도하면서 매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꽉 조여 매고 있었다. 훨씬 훈훈하고 따뜻하다. 어떤 때는 너무 더워서 땀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날을 주야로 매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신기하게 목의 통증이 없어졌다. 목이 부드럽고 자유스러워졌다.

그래서 거울을 보고 “어머니, 어머니” 하며 목을 아래 위 좌우로 돌리는 목 운동을 하고 있다. 생전에 나를 위해 그렇게 기도 많이 해 주시더니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여전히 기도하고 계신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려 주체 할 수가 없어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그 어머니 사랑, 그 어머니 향내를 맡으며 목도리를 또 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