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티머시 켈러 (Timothy Keller) 지음/ 전성호 옮김
고급 케이스 ㅣ 양장 188 쪽 + DVD 1매 ㅣ 13,800원 ㅣ 2011년 7월 12일 출간

추천서

놀랍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 숨겨진 구원의 비밀을 섬광처럼 번쩍이는 통찰력으로 찾아낸 글이라니! 내가 동지의식을 갖고 사랑하는 티머시 켈러는 비유 속에 담긴 오묘한 복음의 본질을 죄와 잃어버려짐, 우리의 필요와 희망, 그리고 구원과 잔치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써 재확인하고 있다. 또 그 새로운 정의는 아낌없이 쏟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Prodigal God)으로부터 우리에게 흘러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경외와 친밀함과 기쁨으로 충일하게 만든다. 오정현(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가장 문학적 - 미적인 성경 텍스트의 진심을 읽어낸 이 책은, 저자가 지성과 감성에다, 영성까지 두루 겸비했음을 탁월하게 입증한다. 교회 밖의 냉담한 비판자나 구도자는 물론, 교회는 다니지만 무신론자에 다름 아닌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일깨우는 팀 켈러.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 김기현(부산 로고스교회 담임목사)

이 책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이 아니다. 천천히,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을 수만 있다면 보상은 충분히 받을 터. 그 상급은 하나님의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경험하는 것이다. 강준민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

돌아온 탕자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고향을 읽어내는 저자의 혜안이 경이롭다. 또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과 저미는 포용성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칠맛 나게 풀어써 절절한 감동과 심령의 촉촉함을 선사한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으로 우리는‘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위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어떤 힘도 없다는, 진정한 겸손의 자리로 가게 된다.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친숙한 이야기에서 새롭게 말씀의 샘물을 길어내는 탁월한 설교자를 만나는 기쁨! 두 아들의 모습에 비추어 현대인의 절망과 영혼을 예리하게 진단하고, 그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생생하게 논증한다. 김서택 (대구 동부교회 담임목사)

작품 소개

기독교 신앙의 여부와 상관없이 소위‘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우리 입에 오르내리던 익숙한 우화다. 미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심오한 영향력을 미치는 목회자로 꼽히는 저자 티머시 켈러는 이 탕자의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분석하여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개념을 정의한다.
지금까지 이 ‘탕자’의 우화에 대한 대부분의 해석은 집 떠나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돌아오는 둘째 아들, 그 탕자에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이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이 비유에는 두 명의 형제가 등장하는데, 이 둘은 각각 하나님에게서 소외되는 두 가지의 다른 방식과 천국에 받아들여지기를 추구하는 두 가지의 다른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 등장하는 탕자, 즉, 잃어버린 아들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인 것이다. 여기에 제목 속의 'prodigal' (끝없이 무한정 베풀어주는)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사랑이, 길 잃은 인류가 고향집을 찾아가는 유일한 통로로 제시된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와는 다른 (혹은 그 대척점에 있는) ‘복음’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의 복음은 종교도 비종교도 아니고, 도덕도 비도덕도 아니며, 도덕주의도 상대주의도 아니고,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니다. 그렇다고 두 극단의 중간쯤에 위치한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예수의 복음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목차

제1장 예수 주위의 사람들
두 종류의 사람들 - 왜 예수는 좋아하면서 교회는 싫어하는가

제2장 잃어버린 두 아들
잃어버린 동생 - 둘째 아들의 계획 - 잃어버린 첫째 아들

제3장 죄에 대한 새로운 정의
행복을 찾는 두 가지 길 - 잃어버린 두 아들 - 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 - 둘 다 틀렸고 둘 다 사랑받았다

제4장 잃어버려짐의 새로운 정의
분노와 우월감 - 노예근성과 마음의 공허함 - 누가 이걸 알아야 하는가?

제5장 진정한 첫째 아들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제6장 희망의 새로운 정의
고향을 향한 우리의 그리움 - 귀환의 어려움 - 역사의 종말에 벌어질 잔치

제7장 아버지의 잔치
구원은 경험되는 것 - 구원은 물질적인 것 - 구원은 개인적인 것 - 구원은 공동체적인 것 - 바베트의 만찬

미리 보기

1) 겉으로 보기에 이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호수에 비유한다면, 이 유명한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호수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물이 가장 맑은 지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 이야기는‘방종한 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바를 모두 행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는 비도덕적인 아웃사이더, 즉, 비주류보다는 도덕적인 주류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 예수는 행복과 만족을 찾는 근본적인 두 가지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돌아온 탕자 비유를 들었다. 이 두 가지는 도덕적 순응의 길과 자기 발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당신이 바라보는 삶 전체에 색을 입히는 렌즈, 혹은 모든 것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형성하는 패러다임의 역할을 한다. 이 두 가지 길은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의 문제들에 접근하며,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4) 그러므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아들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인 것이다.

5) 우리는 항상 고향 집을 갈망하는 유배자들이다. 늘 여행하지만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집은 계속해서 우리를 피한다.

6)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모든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엔트로피에 구속되어 우리 손안에서 으스러지고 만다.

7) 하나님이 은혜롭다는 것을 믿는 것과 그 은혜로움을 맛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는 마치 꿀이 달다는 것에 대해 이성적인 믿음을 갖는 것과 그 단맛을 실제로 맛보는 것과의 차이와 같다.

8) 종교는“나는 복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받아들이셨다.”라는 식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하지만 복음의 작동 원리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나는 복종한다.”이다.

9)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없어진다고 해서 복종하는 삶을 살 인센티브까지 잃어버린다면, 애초에 복종의 동기는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두려움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잖은가? 그렇다면 이 외에 다른 어떤 인센티브가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경외하고 감사하는 사랑이다.

10) 교회들은 첫째 아들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는 것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독선일 뿐이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11) 천국은 축복받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하나하나가 받는 하나님의 열매도 더 많아지는 곳이다.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보는 모든 영혼들이 자신의 독특한 비전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나누기 때문이다.

작가 한마디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는 것과 그걸 다 지키는 것, 이 두 가지 모두가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그에게서 멀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충격적인 메시지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니!”

출판사 리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닷컴 장기 베스트셀러 1위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팀 켈러 -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도발적인 원제 The Prodigal God ! 방탕한 신? 돌아온 탕자 같은 하나님?
아니다, 헤프다 싶을 정도로 마구 ‘대책 없이’ 퍼주고 무한히 사랑하고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하나님이다.

아버지를 졸라 미리 분배받은 재산을 들고 집을 떠나, 타향에서 이를 모두 탕진한 다음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온 막내아들, 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인 다음 잔치를 베풀어주는 아버지, 그리고 순종하며 아버지를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동생보다 더 하찮은 대우를 받았다면서 분노하는 큰아들.

이'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해온 성경 속 우화다. 미국 기독교계의 희망으로 불리며 젊은 화이트칼라 계층에 영성을 전파하는 저자는, 제목만큼이나 놀랍고 참신한 각도에서 이 비유를 예리하게 분석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핵심을 -즉, 복음의 참뜻을- 또렷하게 드러내 준다.

그 요지는 이렇다: 성경의 규율을 모두 지키고 순종하며 열심히 교회에만 다닌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과 영생의 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만이고 착각이다. 진정한 구원은 ‘prodigal'한 하나님을, 역시 ‘무조건적으로 대책 없이’ 가슴에 포용하고 감사하고 직접 체험하는 길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무한정’ 사랑의 잔치에 참여하고, 다른 참석자들과 영성을 나눔으로써 함께 은혜를 증대시키는 길뿐이다.‘돌아온 탕자’비유에서 길 잃은 탕자는 작은아들 하나가 아니라, 두 아들 모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