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사는 사람’, ‘삶 때문에 신학이 빛나는 사람, 죽음 때문에 그 신학적 가치가 높아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한국본회퍼학회장인 유석성 박사(서울신대 총장)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암살모의로 투옥돼, 나치의 항복선언을 한달여 앞둔 1945년 4월 9일 젊은 나이로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1906-1945)와 그의 신학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에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출판기념회에서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가 축사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특히 나치 독일에 맞서 ‘미친 운전사는 끌어내려야 한다’던 본회퍼의 행동하는 신앙은, 3천만 주민들의 굶주린 신음을 뒤로 한 채 폭주하고 있는 북한 김정일 정권과 상대해야 하는 한국교회에 크나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더구나 본회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보장된 지위를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몸을 던진 인물이다.

지난해 출간된 디트리히 본회퍼 선집(전 8권)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10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가진 출판기념회에서 유석성 총장은 본회퍼 신학이 오늘날에 갖는 의미들을 들려줬다.

본회퍼 선집은 독일 카이저출판사가 출간한 전집 16권 가운데 학문적인 8권을 유석성 총장과 손규태 명예교수(성공회대), 이신건·오성현 교수(서울신대) 등 국내 본회퍼 연구자들이 번역했다. 8권은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를 비롯, <행위와 존재>, <창조와 타락>, <그리스도론>, 가장 유명한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윤리학>, 옥중서간인 <저항과 복종> 등이다.

본회퍼의 저서는 <나를 따르라>, <저항과 복종>, <신도의 공동생활> 등이 이미 번역 소개돼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지만, 기존 저작들의 매끄럽지 못한 번역과 다소 충실하지 못한 내용을 개선하고 채우기 위해 선집을 다시 간행하게 됐다.

‘본회퍼의 평화사상: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기념강연에서 유 총장은 “당시에는 예수가 무엇을 했느냐(what)에 온통 관심이 있었지만,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who)’ 하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이를 고백하다 나치에 처형됐다”며 “그가 바라본 예수는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였고, 우리에게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말씀한다”고 말했다.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했지만, 그는 기독교적 평화사상의 선구자였다. 유 총장은 본회퍼의 평화사상에 대해 △성서에 기반을 뒀고 △평화의 개념을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것으로 봤으며 △전쟁을 반대한 것이고 △평화는 형식, 정의가 내용이라 분석했다. 유 총장은 “본회퍼는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봤다”며 “그의 평화론은 십자가 신학에 근거한 제자직의 평화론이고, 대리사상과 책임윤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석성 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렇듯 평화와 비폭력 저항을 부르짖던 본회퍼가 왜 암살모의에 가담했을까. 유 총장은 이에 대해 “1938년 이후 독일에서는 유대인 배척주의, 군국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됐고, 그는 원칙적 평화주의 대신 상황에 의존하는 상황적 평화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이라고 전했다.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한다”고 말했던 본회퍼의 결단(암살모의)은 “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줄 뿐만 아니라 바퀴 자체를 멈추게 하는 일”이었고, 피흘리는 일을 중지시키기 위해 ‘미친 운전사’인 히틀러를 제거하려 했다. 그에게 책임윤리가 생기면서 최후 수단으로 폭력을 인정하게 됐고, 저항권과 정당방위로서 ‘폭정에 항거할 의무가 있다’는 신앙고백을 한 것이다.

유 총장은 본회퍼의 평화사상 이외에도 루터를 계승해 몰트만으로 이어진 그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십자가 신학과 교회의 사회참여 계기가 된 상황윤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앙 등에 대해 설명했다.

유석성 총장은 “결론적으로 본회퍼신학의 오늘날 의의는 삶과 사상이 결합돼 신앙과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이라며 “명예와 권력, 욕심에 휩싸여 추악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본회퍼는 그리스도 중심적 십자가를 내민다”고 말했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이며, 영광이 있다면 그 고난의 결과로 주어지는 축복이므로 한국교회가 본회퍼의 신앙, 삶과 죽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 총장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교회를 교회 되게 하길 원했던 본회퍼는 흙탕물에 빠진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정화제가 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신학자”라며 “지난 1970년대 군사 독재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던 젊은이들에게 그의 글이 큰 용기와 위안이 됐던 것처럼, 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와 신학,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한국교회가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신학은 한 마디로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