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다 보면 이상한 현상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일이 생길 때 한꺼번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특히 장례식이 그렇습니다. 한 동안 뜸하다가 한꺼번에 여러 번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지난 두 주간 동안 세 번의 장례식을 집례 해야 했습니다.

아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고, 애석하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번에는 특별히 어려움이 더 컸습니다. 한 분은 병을 발견한 후에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고, 또 한 분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으며, 다른 한 분은 꽃다운 나이에 노모와 어린 아내를 두고 떠났습니다. 이럴 때면 집례 하는 사람은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느라 힘겹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리는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어색한 말일지언정 몇 마디 찾아서 전할 용기를 얻습니다.

이번에 장례를 치르면서 한 가족은 조화를 사양하고 굿스푼 선교회에 추모기금을 보내 달라는 광고를 하셨고, 다른 한 가족은 역시 조화를 사양하면서 그 대신 교회 내에 장학 기금을 조성하는 데 추모기금을 보내 달라는 광고를 하셨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이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기뻤습니다. 이 같은 전통이 우리 교회의 전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미국 교회 교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정신을 따릅니다. 그것이 고인을 추모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장례식에 조화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꽃들이 한 번 사용되고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꽃과 관계된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장례식에서의 화환은 두 세 개면 족하다 싶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교회 교우들께서는 부고를 쓰실 때 “조화와 추모금을 사절합니다”라고 쓰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면 추모금을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생각해 두면 좋겠습니다. 선교 기관을 도울 수도 있고,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으며, 교회 내에 추모기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영구기금위원회’에서는 기탁된 추모 기금의 원금을 보존하면서 그 이자로써 고인의 뜻을 받드는 일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교우의 직계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교회에서 장례식을 집전하지 않는 경우, 교회에서는 관례에 따라 조화를 보내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섭섭하게 느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께서 사양을 하시면 그 뜻에 따르고 있습니다. 허례허식과 소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고민하고 미리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슬픔을 당하신 분들에게 하늘의 위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