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일들은 다반사의 일이요 생존 경쟁 하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공자 왈 맹자 왈 하여도 코웃음이다. 그러니 어떤 드라마 대사 가운데 재벌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지않는 가난한 며느리를 보고 “저거 치워!”라는 유행어를 낳게 되는 것이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아래 사람없다” 70년대 유명한 인권표어 아닌가? 그럼에도 70년대에 한국의 인권은 세계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물론 북한보다는 조금 낫지만 말이다. 지금은 정치적으로는 이런 업수이 여기는 일들이 많이 개선되어 어떤 한복입은 정치인이 공중부양하여도 참아주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 외에 경제, 문화, 교육, 종교 어떤 분야에서든 이 업수이 여기는 일들은 계속되고 있다. 세상일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고 하고, 정 참을 수 없으면 인권변호사나 운동권에 맡겨둔다 하여도 기독교안에 이 업수이 여기는 일들은 어찌 할 것인가? 교회안에서 조차 반상논리가 활개치며 업수이 여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사도 바울을 다시 깨워서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하고 일갈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안하지만 사도 바울이 다시 살아온다 하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문제는 부등켜안고 갈 수 밖에 없다. 그저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랑하게 할 수 있게 하겠는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모범을 보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중구 필동에 살던 때에 이웃에 내무장관하던 최인규의 장모되는 권사님이 살고 계셨다. 이 분은 얼마나 사랑이 풍성하신지 사업에 실패 공장한구석에 임시거처에 살고 있던 우리 가정을 얼마나 자상하게 보살펴 주셨는지 모른다. 주일이면 내 손을 잡고 연보를 쥐어 주시면서 데리고 가시고는 하였다.

또 한 분 9.18 수복으로 서울로 돌아와 충정교회에 다닐 때 이북에서 피난 나와 홀로 지내시던 여전도사님은 내 어머니를 친 딸처럼 보살펴 주셨다. 어느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자상하실 수 있었을까?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며 접하게 되었던 신안의 순교자 문준경 여전도사님은 그야말로 사랑의 화신이었다. 삯바느질로 번 돈은 송아지를 사서 여러 집에 나누어 주고, 홀 어머니 병환 때문에 울고 있던 여학생의 사정을 듣고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재봉틀을 팔아서 백원을 마련해 주고 훌쩍 그 자리를 떠난 적도 있다.

아마도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여전도사님들이 한국 교회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저거 치워!”하는 이 말종 세상도 아직은 이렇게 밝게 돌아가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