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교의를 넘어
왜 다시 예수인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로 널리 알려진 앨버트 놀런의 근작이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는 교회와 교리와 전례가 생겨나기 전, 당대 현실을 온몸으로 껴안은 인간 예수의 모습을 특히 정치와 정의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예수의 고유한 영성과 이 영성이 오늘 우리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신앙이나 믿음이 아닌 영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맹목적 추종 대신 예수와 하나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 자신의 체험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영성, 바로 근원적 자유의 영성이다. 영성과 신학이 갈라져 버린 현실에서, 신학이 교리와 교의를 다루는 쪽이라면 영성은 체험과 실천을 다루고 있기에 이 책에서 관심을 둔 것은 단연코 영성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신학적 의미를 다룬 책이 아니라 예수의말과 행위 이면에서 그를 자극하고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체험과 마음가짐에 주목한 책이다.

1부에서는 우리 시대의 징표를 요약, 서술함으로써 '오늘'의 의미를 정립하고, 2부에서는 예수의 고유한 영성을 심도 있게 살펴보았으며, 3부와 4부에서는 그 영성을 오늘의 맥락에 맞추어 조망했다.
놀런은 시대의 징표를 읽음으로써 예수의 영성에 담긴 요소들을 조목조목 다루면서, 이 교훈들을 통해 하느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만물과 탁월한 친교를 맺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수가 '아빠'라고 부른 분과 나눈 깊은 체험에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아빠는 아버지나 가부장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가장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이 같은 아빠 체험을 공감하지 않고는 예수가 어떻게 그처럼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오늘 우리는 꿈속을 헤매면서 이 시대가 당면한 심각한 위협과 도전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도외시하는 영성은 결코 참된 것일 수 없다. 예수가 당시의 징표를 읽고 제자들에게도 시대의 징표를 읽도록 가르쳤듯이 우리 또한 시대의 징표를 충실히 읽으면서 비로소 예수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침묵과 고독의 시간 속에서 하느님 체험에 온전히 뿌리내림으로써 우리는 시대의 정치, 경제, 생태계 문제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다.

예수가 걸어간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위대한 예술 작업에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창조적으로, 모두가 손을 맞잡고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근원적 자유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우리는 대부분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점차 변해 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어떤 절박감에 부딪혀도 포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 일이다. 굶주린 이에게는 당장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가난과 질병에는 지체 없이 대처해야 한다. 이제 온실 가스 배출은 멈추어야 한다. 이기심에 맞선 투쟁이야말로 대단히 시급한 과제다. 모두가 하느님의 일이며, 우리는 더 이상 동참을 미룰 수 없는 처지다. 끈질기게 자라나는 새로운 의식이 우리를 내적 자유 안에서 나날이 성장하게 할 것이다.

예수는 공동선을 하느님의 뜻과 동일시하여 말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와 온 우주의 최선을 원하신다. 예수가 바란 것과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 사이에 충돌이란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참자유다. 예수의 근원적 자유는 결국, 나와 이웃과 우주와 하느님이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기꺼이 창조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라 하겠다.

신실한 신앙인뿐 아니라 구도자들도 이 책에서 깊은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저자의 신비가적이고 예언자적인 삶의 열매를 발견할 것이다. 이 시대의 영성생활을 북돋워 줄 빼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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