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같은 경우는 당신이 세운 약속들을 다 지키셨어요. 아들 안 세운다, 일찍 은퇴하겠다…. 아들 세운 것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내린 결단이라는 겁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주님의 것이라는 게 핵심 이유셨어요. 한국교회 건강한 리더십 전환이 교회 미래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데, 전임자는 끝까지 후원해 주고 후임자는 존경하면 되는 일입니다.”

안양감리교회 임용택 담임목사(46)의 눈시울은 이따금씩 뜨거워졌다. 임 목사는 만나자마자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이 아닌, 전임인 백문현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임용택 목사의 ‘바로 그 말씀’은 하박국 3장 16절, 1년에 두 번씩은 꼭 설교한다. 그의 모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 어린 시절 가난과 고난을 겪었던 임 목사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 주고 신뢰해 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한 목회자였고, 전임 백 감독은 그래서 그를 선택했다. ⓒ이대웅 기자


할렐루야교회의 김승욱 담임목사 취임 과정에서 보듯, 한국교회에도 ‘건강한 사역계승’의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서울교회(담임 이종윤 목사), 두레교회(담임 김진홍 목사), 지구촌교회(담임 이동원 목사) 등 중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당회에서 후임자를 미리 선정하고 함께 목회하며 안정적인 권한 이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안양감리교회도 바람직한 사역계승 모델로 불릴 만하다. 감독 출신의 담임목사가 출신 학교도 다르고 별다른 인연도 없는 젊은 목회자에게 바톤을 ‘터치’했기 때문이다.

“감독님은 깨끗이 모든 곳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다시며, 처음엔 사례비도 안 받으려 하셨어요. 그러고는 은퇴하시고 아드님이 목회하시는 수지 쪽으로 이사 가셨습니다. 가끔 이라도 오시라고 하지만 이런 저런 얘기 하면 후임자에게 부담된다며 제 연락 잘 안 받으세요. 감독님 오시면 저는 오히려 좋아요. 저를 굉장히 좋게 얘기해 주시거든요(웃음). 특별 행사 때는 정말 모시고 싶은데 이번 블레싱하우스 봉헌할 때나 창립기념일 때도 안 오셨어요. 하도 안 오시니, 교회에서는 제가 감독님 오시는 걸 막는다는 소문까지 난 걸요. 연말연시 되면 찾는 사람이 많으니 아예 미국엘 가세요. 이런 분이 없어요.”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마찰을 빚는 교회들이 적지 않은데,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장년만 출석인원이 2400~2500명, 지금은 3천명 정도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부흥했을까, 프로그램도 없고 성경공부도 없었어요. 제가와서 몇 가지 만들긴 했지만, 프로그램 없이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또 건강한 리더십 전환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님은 말씀의 은사가 있으셨어요. 그리고 말씀대로 사셨죠. 성도 숫자도 부풀리지 않으셨어요.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설교도 30분을 절대 안 넘기시죠. 예배가 아무리 장황해도 1시간 내에 반드시 끝납니다. 부흥회를 하셔도 40분에 끝나요. 새벽기도는 15분, 심방 가면 10-12분, 이렇게 30년을 하셨어요. 반드시 약속시간 5분 전에 가십니다. 연세가 드시면 말이 많고 군더더기가 많아지기 마련인데 그것도 없으세요. 제가 와서 조금 길어졌죠(웃음). 성도들이 아쉬워할 정도에요. 시간이 중요한가 하지만 감독님은 그런 철학이 있으세요. 강단에서 뭘 하겠다고 약속하면, 더군다나 하나님 앞이기 때문에 그대로 하세요.

저는 전에 2백명 정도 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저를 오라고 하셨을 때 정중하게 역량이 안 되고 부담스럽다고 사양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나는 기도하고 얘기하는데, 임 목사는 기도하고 사양하는 거냐’고 하시는 거에요. 사실 저는 안될 거라 생각해서 기도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교회 사이즈가 목회자 그릇의 크기는 아니다. 하나님 관점이 그렇지 않다’시는 거에요. 큰 교회 분들이 그런 얘기 하시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그래서 기도해 보라는 말씀 듣고 기도하는데 강력한 마음을 주셨어요. 인사 문제는 오래 끌면 안 되니 교인들이 저를 2주 안에 기쁘게 보내주면 가고 강력하게 서운해 하면 못 간다고 기도하고, 감독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당신이 기도해서 응답받으신 거라 확신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열흘 만에 ‘우리 목사님 오대양 육대주에서 큰 목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다’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셨어요. 처음엔 물론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교인들이 울고 그랬죠.

-은혜롭네요.

“저는 전임 목회자가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임자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 잘 하겠습니까. 처음엔 아무리 건강해도 이런 저런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전임자가 어떤 태도로 가느냐에 따라 교회 건강성이 좌우됩니다. 감독님이 아름답게 마무리하시니 교인들이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고, 그게 다 저에게 왔어요.

교인들이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 목사님이 훌륭한 교회라는 자부심이 있으니, 자신감이 넘치고 전도에 부담을 안 가져요. 전도 프로그램 없이도 1년에 5백명이 자연 증가했습니다. 감독님도, 특별 전도 집회 같은 행사를 하면 교인들이 다른 교회에서 데려온다고 하시며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큰 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셨어요. 교회는 큰 숲을 이뤄야 하는데,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풀도 있어야지, 큰 나무만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고요. 숲은 조화를 이뤄야죠. 큰 교회는 자기 교회만 키우는 게 아니라 작은 교회들 키워주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져야죠. 당연한 건데 특이하게 보는 시각이 있어요.

감독님은 정말 훌륭하세요. 저에게는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못지 않으세요. 인품이나 교회를 생각하는 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저와 다른 면도 있지만, 나라 사랑은 체험에서 나온 절절한 심정이라 생각합니다. 인품 자체가 훌륭하시고 달변가이셨어요. 제 목회 비중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감독님과의 관계에요. 감독님도 사람이시라,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리면 진짜 그런가 생각되잖아요. 그런 분들 때문에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변명하지 않고 제가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가야죠.”

-덕분에 사역 계승이 잘 이뤄졌지만, 그만큼 부담도 되시겠어요.

▲임 목사는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한국형 초대교회’의 부활을 꿈꾼다. 장애인 선교에 특히 관심이 많으며, NGO(월드휴먼브리지)를 통한 엔젤맘(미혼모) 사역, 택시 데이(부활절, 추수감사절) 등을 통한 환경보호 사역에도 열심이다. ⓒ이대웅 기자


“저는 교회에서 감독님 색깔을 의도적으로 빼려 하지 않았어요. 감독님은 물론 걱정하지 말고 다 바꾸라고 하셨죠. 강대상도 투박하니 크리스탈로 바꾸고 심지어는 주보까지 바꾸라고요. 당신 있을 때 바꿔야 한다시며 하도 바꾸라고 하셔서 주보만 조금 바꿨습니다. 전임자 색깔을 너무 빼려 하는 데서 부작용이 와요. 교회의 여러 제도적인 부분을 굳이 크게 바꿀 필요가 없어요. 자연스러운 시점이 생길 때까지 급한 마음 갖지 말고 견뎌주면 자기만의 목회 스타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니까요.
부담이 많이 돼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너로 불렀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백 감독님으로 부른 게 아니라고요. 후임자가 전임자를 넘어서려 하거나 다른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갭(gap)이 커집니다.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갖고 있되, 공유될 때까지 기다려야죠. 그리고 비전을 자주 선포해야죠. 그래야 공유됩니다. 리더십은 반 보(步)나 한 보만 앞서가야 공유가 됩니다. 이번에 블레싱하우스(교육·문화센터) 건축도 마음이 합해지지 않았다면 안 했을 거에요. 하지만 90% 이상이 동의했고, 몇몇 분도 끝까지 설득했어요. 더 느려지더라도 계속 설득했어요. 그래도 불만이 있겠지만, 90%가 넘었다면 그 불만 때문에 안 가서는 안 되겠죠.

물은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까? 장벽을 바로 부수지 않습니다. 노자(老子)가 물의철학을 말했는데 사실은 성경적 가치관이라고도 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나 목회가 물 같아야죠. 가다 가로막히면 돌아가거나, 그 길도 없다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서 차오르면 넘어가야죠. 서서히 차오르면서 장벽은 무너지죠. 불보다 무서운 게 물입니다. ‘물의 목회’라고 할까요. 기다려서 넘어가는 목회, 기다릴 줄 알아야죠.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은 특히 그래요. 그래서 조급함이 생기지만, ‘너는 너로 만들었으니, 사람들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시더라고요.

식당에 아직 감독님 사진이 걸려 있어요. 하도 안 떼니 이제 바꾸셔야죠, 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방도 거의 3년간 조그만 곳에 있으니, 장로님들이 왜 백 목사님 쓰시던 곳에 안 들어가냐고 하세요. 처음부터 제 스타일대로 했어도 해 주셨겠죠. 그런데 마음이 통했을까요. 우리가 뻗어나가는 건 잘 하는데 품는 게 좀 아쉬워요. 닉 부이치치의 <허그>를 보세요. 팔이 없는데도 품어주잖아요. 목회는 품는 겁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노력해 가는 거죠. 목사가 사과하는 게 권위가 실추되는 일이 아닙니다.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잘못 생각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목회의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단호해야죠. 선을 지켜달라고 당부합니다.”

임 목사의 ‘간증’은 계속됐다.

“월드휴먼브리지라는 엔지오에 참여하고 있어요. 건강하게 사회를 섬기고 약자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파급 효과가 크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지금 교회가 교회 안에만 갇혀 있거든요. 그래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었어요. ‘미시오 데이(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 측면에서 개교회 위주나 일반인들 인상 찌푸리게 하는 교회간 경쟁 등은 마이너스라 봐요.

저는 연예인들이 이미지메이킹을 하듯, 소위 이미지(image) 선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지가 사회적인 영향력인데, 교회는 그걸 너무 못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image)인데 말이죠. 전도지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이미지 회복이 영향력 회복이자 그리스도의 향기를 건강하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인들에게 전도훈련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한국 사회에 소망이고 꼭 필요한 존재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예수님처럼 관심이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원래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이제 보여주자는 거죠.

진짜 영향력은 정직성이에요. 개교회 위주로 하다 보니 교회끼리 경쟁하고 다 숫자를 부풀리죠. 워렌 워어스비는 <정직의 위기>에서 교회가 정직을 잃어버리면서 위기가 왔다고 했어요. 교역자들에게도 과장된 보고, ‘가라’ 보고 하지 말고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정확히 보고하라고 얘기합니다. 왜 떨어졌는지 정직하게 내놓고 분석도 하고 기도하고 가야죠. 새벽기도 못 왔으면 못 왔다고 정직하게 보고하라고요. 어차피 교인들이 다 이야기하는데 말이죠(웃음). 정직히 얘기하면 저도 오픈하고 신뢰하면서 동역자 입장에서 형제애 갖고 같이 일하자고 합니다. 우리 부목사님들 저 오기 전부터 계셨던 분들도 있지만 다들 너무 잘 섬겨주고, 정말 잘 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골수기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쇼(show)는 아닐지라도, 예수님 사랑을 성도들에게 때론 직접 보여주는(show) 일도 필요하다”고 임 목사는 말한다. ‘Service & service’,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예배와 성도들에 대한 섬김을 뜻한다. 이를 위해 가끔 교역자들이 주일 낮 앞치마를 두르고 식당에서 직접 배식을 맡았는데, 한 권사가 “목사님 설교 1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에 이같은 신념을 확신했다고 한다. ⓒ이대웅 기자


“제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셨고, 어머니는 자궁암이셨어요. 빚에 쫓겼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죠. 과거를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등록금도 장학금으로 다 해결했죠. 사랑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갚는 길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월드비전이나 컴패션 같은 곳 통해서 오래 전부터 돕고 있습니다. 저도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어려운 곳을 도우려고 애써 왔어요.

그러다 금호제일교회 부목사 시절 한 어린이가(그는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다) 백혈병에 걸렸는데 골수기증을 하면 살 수 있대요. 저도 그렇고 교인들 동원해서 다 기증서를 썼지만, 맞는 사람이 없어 결국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2005년에 연락이 온 거에요. 골수가 맞는 사람이 있는데 기증하시면 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두려운 마음도 있고 너무 갑작스러워서, 기도했어요.

그 순간 정확히 메시지를 주셨어요. ‘네가 그동안 입으로만 설교하지 않았니. 이제 몸으로 설교할 기회를 주겠다’고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라 보고 기증했습니다. 그때는 골반 양쪽을 드릴로 뚫어서 1.5L를 뽑았어요. 미리 알았으면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어요(웃음). 진통제도 소용없더라고요. 그때 환상 중에 주님이 보혈로 ‘터치’해 주셨는데, 통증이 싹 가셨어요. 그 전엔 ‘보혈의 능력’을 설교하면 피상적이었는데, 이후로는 확신이 있어요. 새벽에 그런 설교를 하면 치유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가슴에 불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설교의 영향력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간은 2시간 반이 흘렀고, 부목사가 조심스럽게 들어와 밀려있는 다음 일정들을 알려주고서야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임 목사의 모습을 통해 백 감독을 볼 수 있었고, 임 목사가 이야기한 백 감독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제 임 목사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