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또 흔한 척도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의 당위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설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목회자는 오직 설교로 말하고 설교로만 규정된다는 주장도 있으니, 이것에 기대자면 설교는 목회의 처음이자 끝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기획 인터뷰 ‘설교를 말하다’를 통해 설교라는, 그 끝없고 오묘한 세계를 엿본다.
▲피영민 목사는 커피를 좋아하는, 가까이 있으면 더없이 친근한 목회자지만 강단에서만큼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생각이 끼어들 수 있는 그런 틈 말이다. ⓒ김진영 기자


설교 본문은 에스겔서 37장 15절부터 23절까지, 제목은 ‘막대기 예언의 영적 의미’였다. 주일예배 설교 치곤 다소 무거운 내용 아닌가 하는 찰나 이 목사, 성도들에게 오늘 공부 좀 하잔다. 그러면서 “올바른 신학을 갖지 않으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강남중앙침례교회 피영민 목사가 어떤 목사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프로필에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 교수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고 돼 있었다.

단단히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책장에 꽂아뒀던 신학책 몇 권을 만지작거렸다. 교회로 향하는 길은 왜 이리 짧기만 한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그와 마주했다. 무얼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가장 고상하고 어려운 신학 용어부터 꺼낼까, 그러다 혹 망신만 당하면…, 얼굴은 웃었으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커피 한 잔 하시죠.”

눈앞에 카페라떼 한 잔이 놓였다. 교회 카페에서 만들었다는, 테이크아웃용 컵에 담긴 카페라떼. 전에 없던 경험이다. 은은한 커피향에 긴장이 풀린다. 피영민 목사는 하루에 한두 잔은 이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처음부터 웃고 있었다. 강단 위에서 보였던 학자의 풍모와 날카로운 눈빛은 없었다. 이후 우리의 대화는 시종 부드럽고 즐거웠다. 그가 즐겨 마신다는 카페라떼처럼.

-최근 몇 주간 주일예배에서 에스겔서를 강해하고 계십니다. 이유가 있나요.

“평소 하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에스겔서를 두고 ‘성경에서 가장 무시된 책’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과 관련된 종합적인 설교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더군요. 제가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는, 20세기 근본주의자들이 에스겔서를 잘못 해석 하는 것 같아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전통적 개혁주의 입장에서 다시 해석해보려는 것이죠.”

-목사님은 에스겔서를 어떻게 보십니까.

“에스겔서는 굉장히 상징적인 것으로 가득합니다.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선 안 될 이유죠. 특히 막대기와 성전에 관한 예언 등이 그래요. 과연 이러한 상징들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을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전부 말할 수 없지만, 많은 기도와 고민 속에서 아, 이것들이 신약 시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예언이라는 걸 깨달았죠.”

-근본주의 해석에 거리를 두시는 것 같은데, 침례교는 어느 정도 근본주의에 속하지 않나요.

“침례교는 원래 두 종류에요. 하나는 알미니안주의를 따르면서 일반 속죄설을 주장하는 일반 침례교고 다른 하나는 칼빈주의의 제한 속죄설을 내세우는 특수 침례교죠. 침례교 역사를 보면 특수 침례교가 다수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한국의 침례교도 근본주의적 특성을 띄게 됐어요. 그래서 초기엔 칼빈주의가 강했지만 점차 알미니안주의로 기울었죠. 하지만 전 여전히 개혁주의 신학이 근간을 이루는 특수 침례교 쪽 전통을 따릅니다.”

-강해설교를 자주 하십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기에 강해설교가 가장 적합한 설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제목설교도 지양하는 게 좋다고 봐요. 설교자 개인의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있지 때문이죠. 또 목회자들은 설교에 고민이 많아요. 다음 주에는 어떤 본문으로 설교할까 하는 것인데, 강해설교를 하면 그런 걱정은 사라지죠.(웃음)”

-목사라고 성경을 다 아는 건 아니기에 간혹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있죠. 아무리 어려워도 부딪히면 해야 하니까. 그런 본문을 만나면 특히나 설교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요. 긴장도 많이 되고 기도도 그만큼 오래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쁨도 커요. 성도들에게도 큰 은혜가 되는 것 같고.”

-강해설교가 처음 예배에 참석한 이들에겐 다소 어렵지 않을까요.

“현장에 있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겁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말하면 초신자든 기신자든 다 함께 은혜를 받아요. 어려운 것도 어려운 대로 그냥 하면 하나님께서 각자의 수준에 맞도록 알아듣게 하시죠. 중요한 건 설교자가 하나님의 주권을 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설사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설교자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죠.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건 설교자는 성도들의 필요가 있건 없건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그들이 이루는 문화는 목회자의 삶과 언어, 인격 등과의 교류를 통해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결코 목회자가 성도들의 필요를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요즘 보면 성도들은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이런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미리 짐작해서 설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성경의 텍스트에는 그 어떤 콘텍스트에도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에게선 신학적 분위기 또한 강하게 풍겼다. 그는 신학이 목회의 근간이며 잘못된 목회엔 잘못된 신학이 있다고 강조했다. ⓒ강남중앙침례교회 제공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 얼마나 됩니까.

“설교는 교회의 기둥과 같아요. 다른 게 약해도 설교가 강하면 목회는 됩니다. 하지만 다른 게 아무리 강해도 설교가 약하면 목회가 잘 되지 않죠. 물론 설교도 강하고 다른 것도 강하면 가장 좋지만 우선 설교는 강해야 해요. 특히 담임 목회자는 설교에 그가 가진 가장 최고의 것들을 투자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 설교 듣는 게 다이므로 목회자는 설교에서 최상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설교의 성격과 유형을 결정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무엇보다 설교자가 가진 신학적 구조 아닐까요. 설교자가 어떤 신학적 베이스를 갖고 있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슷비슷한 말 같아도 신학적 베이스가 다르면 결국 전달하는 메시지는 완전히 달라지죠. 저 같은 경우 개혁주의신학이 설교의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는 신학의 위기인가요, 아니면 목회의 위기인가요.

“신학의 잘못이에요. 목회는 잘못될 수 없습니다. 목회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현장인데, 현장은 잘못될 수 없죠. 결국 신학이 잘못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개혁주의에서 벗어나면 신학과 목회엔 필연적으로 괴리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내 설교가 달라졌다, 이런 걸 느꼈던 적이 있으셨습니까.

“제가 1986년부터 설교했으니까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을 설교자로 살았네요. 그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0년도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였죠. 그 때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 논문 작성을 잠시 미루고 1년 간 조직신학을 다시 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개인적으로 참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어떤 문서를 온갖 악령들이 지키고 있는데 주님의 인도로 악령을 물리치고 내가 빼앗아 펼쳐보는 꿈이었죠. 이 꿈을 꾼 후 그 동안 공부하면서 잘 몰랐던 것들이 전부 깨달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 섭리 이 모든 말들이 전혀 새로운 것들로 제 가슴에 와 박혔습니다. 이후 신앙과 신학, 설교 등 모든 사역의 근간이 바뀌었어요.”

-훌륭한 설교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경을 혼자 묵상해서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성경 묵상에는 반드시 인풋이 있어야 해요. 역사 속 사람들이 무어라 말했는지 부지런히 읽고 공부해야 하죠. 그렇게 인풋이 쌓이면 그로 인해 올바른 아웃풋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기에 책도 많이 봐야 하고 역사상에 나타났던 문헌들도 찾아봐야 하고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도 무수히 들어야 해요.

전 특히 스펄전의 설교를 정말 많이 읽고 들었습니다. 일단 설교 본문이 잡히면 이 본문을 두고 과연 스펄전은 어떻게 말했는지 찾아 읽고 또 읽었죠. 그 밖에도 많은 설교가들의 설교를 참고했어요. 역사적으로 칭송을 받은 설교가들에겐 성경을 보는 그만한 통찰력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목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확고한 소명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자신과 하나님의 일대일 관계에서 과연 내가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좋은 설교자도 훌륭한 목회자도 될 수 없어요.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결코 좋은 설교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목회에서 결코 요행은 없습니다. 성실하게 기도하고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는 길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