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왜 나의 인생 여정은 이렇게 힘만 듭니까?"라고 물으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제가 노인대학 강의할 때, 노인들이 친교하시면서 고생한 이야기 하면 서로 다 챔피언입니다. 좌우지간 인생여정이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나이가 많으면 더 잘 살고 더 잘 알아야 될 텐데 인생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숙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정착역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냥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의롭게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1) 미리 아시고(foreknew)
2) 정하시고(predestined)
3) 부르시고(called)
4) 의롭다 하시고(justified)
5) 영화롭게 하신다(glorified)

내 인생이 울고 싶고 아무리 힘들 지라도 우리는 4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부르시고, 미리 나를 정하여 주셨고, 정한 나를 어느 땐가 불러주셨고, 불러주신 나를 하나님께서 자녀삼으시고, 우리는 영화로운 자리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자인 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것도 맞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 틀리듯이, 나를 향한 특별한 섭리와 계획이 나를 여기까지 있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멋지게 만드시지, 기왕이면 어디가도 탑이 되는 사람이 되게 만드시지, 왜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게 만드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우리의 삶의 길을 디자인 해 놓으셨다면, 기왕이면 편하고 아름답게 사는 자로 해 주시지 왜 이렇게 고생고생하게 하셨습니까?"

질문입니다. 잘 사는 것, 그리고 바르게 사는 것.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무엇을 믿어야 하는 가'가 교리에 대한 문제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는 계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믿고,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 섭리를 따라 가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전체적으로 성경을 볼 때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것이 이스라엘 역사가 연결돼 있는 데 시가서 5권만 상관이 없는 책입니다. 역사가 아닌 다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지혜서라고 부릅니다. 지혜라는 것은 다른 말로 살아가는 삶의 스킬입니다. 'way of life'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지혜서입니다.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주시는 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르게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나의 인생을 디자인한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를 이 지혜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혜서의 첫번째 욥기서입니다. 이 5권(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을 통해서 우리를 바르게 살아가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욥기가 왜 여기에 붙어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죠. 연대기 순으로 보면 창세기 앞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 시가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십니다.

내일을 살아본 자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이 모든 계획 가운데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냥 이 땅에 보내시고 알아서 잘 살라고 하지 않으시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시면서, 어떠한 삶을 살면,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삶을 자기 인생 가운데, 통달한 삶(Mastering Life)을 살 수 있을까, 그 영적 비밀이 여기에 욥기 있습니다.

"하나님, 고난이 내 인생 가운데 왜 꼭 있어야 합니까. 좀 피하고 살면 안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잘 사는 사람보다 바르게 사는 사람을 원하시는 데, 그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시는 데 욥기에서 가르쳐주십니다. 각자 김씨, 박씨 다 다르지만 자기 인생의 매스터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욥기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 자기 인생의 매스터로 살고 싶습니까?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Why me?하면서 인생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그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문제를 모르면,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참 많습니다.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의 특별섭리를 깨닫고 붙잡아야만이 인생에 만나는 많은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될 것이며, 복된 자기만의 영역을 누리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은 여러분을 매스터리 라이프로 이끄는 첫번째 단계입니다.

친구들이 와서 네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게 있지 않냐 등으로 핀잔을 줄 때, 욥이 끝까지 하나님한테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욥도 궁금했던 것입니다. 끝끝내 하나님께서 그 대답은 안하십니다.

욥기서 1장에서 하나님은 사단을 향해 자랑하시면서 욥을 향해 완전한 자, 의인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처음에는 욥도 주신 고난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을 통해 계속 질문하는 것이 왜 이러십니까? 입니다.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욥 13:3)" 영어로 보면 변론은 argue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 앞에 한번 따져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욥 13:15)"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욥 19:6~7절)"

욥은 내가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묻지만 계속 대답이 없자, 하나님의 의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욥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당신이 하나님 이실지라도, 당신이 틀렸다(wrong)고 말하기에 이릅니다.

욥은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끊임없이 불어오는 고난으로 하나님의 의를 의심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죄 때문에 고난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하여 자기의 믿음과 신앙이 흔들려 하나님의 의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인생의 고난의 강을 넘게 하실 때에, '하나님이 너와 변론하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너는 믿느냐?'라는 것을 물으십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 가운데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햇빛 날 때만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비올 때도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고난 가운데 던져졌을 때도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왜 나입니까?" 가 아닙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네가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믿느냐?"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네가 지금 당하는 이 고난,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십니까?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인생을 미리 아시고(fore knew) 영화롭게 하시는 한 과정입니다. 이 고난을 잘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잘 믿고 나갈 때 하나님은 언제든지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 우리는 자랍니다. 고난은 우리를 이렇게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한 몇 가지 유익을 가르쳐주십니다.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욥 22:29)"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겸손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한번 당해보면 다 압니다. 고난은 우리를 정말 아름다운 성품의 사람으로 만드는 최고의 채널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이제 됐다, 네가 알아서 살아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보다 의롭다' 이 명백한 사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획을 믿느냐?는 물음입니다.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절망 가운데서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아~ 하나님은 여기서도 함께 하시는 구나, 햇빛 속에서만 아니라, 폭풍 가운데서도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두번째 고난은 우리를 테스트해 나갑니다.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해 나갈 때 고난이라는 채널을 사용하십니다.(욥2:3)

하나님이 욥을 사단에게 던져놓습니다. 욥을 통한 메인메시지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에요. 사단이 도구로 사용했을 지라도, 그것을 허락한 자가 누구에요? 하나님이에요. 왜? 우리를 업그레이드 시키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자랑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하고 싶으십니다. 그것을 테스트를 통해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 테스트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무너졌던 욥기 다시 세워짐으로,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서는 삶을 살아갔듯이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를 시험 하시고 업그레이드 하십니다. 이후 욥이 두배로 축복을 받습니다.

세번째 고난은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를 잘 알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자기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고,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4~5)"

넷째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킵니다. 오합지졸이 아니라 하나님,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가십니다. 끝내는 우리를 두배로 축복 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우리의 인간적인 다가섬(approach)가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섣불리 위로 했을 때 당하는 사람이 굉장히 아픕니다. 섣부른 도움은 때로 너무나 아프게 합니다.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뒤에서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돌아보면 고난의 바람은 우리 인생 가운데서 세게 느꼈을 때가 있고, 약하게 느꼈을 뿐이지 고난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 라는 믿음. 고난을 통해 빚어질 소망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어느때 고난이 고난처럼 안느껴지냐면 믿음의 각도로 바라보면 고난이 고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깜깜합니다.

'내가 생각해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애, 고난 가운데서 내 마음이 강팍해졌어' 이런 날카로운 마음으로 있을 때 문제가 커집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어떠한 자가 돼야 할 것인가? 고난을 통해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해되어져서, 고난 가운데 떠는 자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오히려 빚어져 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47:8-9)"

인생의 거목으로 빚어진 야곱. 인생의 험한 세월을 보낸 야곱의 고난이 그를 믿음의 거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난은 디자인된 나의 인생을 통달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채널이라는 것을, 고난을 통해서 나는 겸손해 질 것이고 고난을 통해서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것이고, 훈련받는 깊은 영성의 사람이 될 것이고, 두배로 축복받을 것을 믿기 때문에, 이 말씀을 붙들고 2010년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바랍니다.

강연: 신현국 목사(주빌리장로교회)
정리: 권나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