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기 위하여 나는 광야에도 가고 사막에도 갑니다. 이제 막 사진에 입문을 한 나 이지만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신의 창조물인 자연을 가장 가까이 느끼면서 하는 여행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월에 나는 노란피를 토해내며 가을을 떠나가는 사시나무의 단풍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요세미티 너머에 있는 비숍(Bishop, California)에 갔었습니다. 가고 오는 길에는 끝없는 광야가 펼쳐져 있어 나는 그 광야에 서서 구름을, 선인장을 그리고 바위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주로 대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우리는 대중과 문화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사회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혹은 문명의 혜택속에서 매일 마시는 공기처럼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복잡한 삶에서 탈피하여 나를 발견하고 싶을 때, 혹은 인간의 머리 위에서 심장까지도 지배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의 이기 앞에서 무력함을 느낄 때, 무작정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거나 또 다른 삶의 일탈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잡다난속에서 살아갈때 사막은 뜨거운 태양아래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비웃둣 정적과 죽음과 고행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막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리워하기도 하는 가 봅니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지요.

사막의 태양은 아침이면 떠올라 온 세상을 아름답게 밝혀주고 저녁이면 붉은 빛 노을을 선사하는 그런 낭만적인 의미이기 보다는, 때로는 죽음과 허무와 고통의 태양일 뿐입니다.

사막의 태양은 살아있는 일체의 생명체를 최대한으로 뜨거운 고통으로 몰고가며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메마른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잔인한 태양일 뿐입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땅과, 바람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뿌리뽑힌 잡목들, 독을 품고 물고자 하는 뱀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광야는 모든 생명의 의지를 끊어버리는 사막보다는 내게 더욱 친숙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막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삶이던, 죽음이던 그 자그마한 흔적조차도 발견할 수가 없는, 우리 인간이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또 다른 영역의 신비로움이 있는 반면, 광야, 그곳은 비록 적어도 어느 정도 고행적인 삶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의 흔적을 볼 수가 있는 곳입니다. 비록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굴러다니기는 하나 잡목과 작은 들풀이 있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생존하는 선인장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광야의 끝에 서면 겸손을 배우게 되기도 합니다. 겸손해져야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스스로 낮아지고 엎드릴 때 겸손해진 자아를 발견 할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이 밤, 이번 가을 사진 여행에서 돌아와 썼다는 <손종렬>작가의 <광야는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의미있는 시를 나지막히 읊어봅니다.

“당신은 광야을 지나가 봤는가? 광야를 거쳐간 사람은 안다. 광야에서 외로움에 떠는 것은 혼자가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이대로 혼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이다.

광야는 가득찬 채움으로는 지날 수 없는 곳이다. 광야는 영성이 돋아나는 시간이다.
다 버려지고 다 비워져 아무 것도 없으니 바라볼 것은 오직 한군데, 저 높은 곳 밖에 없다.

뜨거운 햇빛과 바람과 모래뿐이지만 그 안에서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는 고마운 생명을 만난다. 나 또한 제 색깔을 내며 숨가쁘게 살아있어야 하는 마땅한 이유가 비로서 깨달아지는 것이다.(중략)

광야는 춥고 어두운 곳이다. 지붕도 없고 이불도 없다. 잔뜩 움크리고 긴 밤을 맞아야 한다. 그러나 광야는 어두울수록 그 어둠이 오히려 눈부셔 누구보다 별과 달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중략/
광야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곳이다.
내가 하루를 살아야 할 것인지, 백 년을 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닫는 곳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보이지 않는 깨달음을 선사해줍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을 보게 해주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의 나그네 길에서 잠시 쉬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 가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해줍니다.

엘리자벳 김(수필가)
Lizkim525@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