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 후 다시 개척하기를 여섯번째인 목사, 부흥성회 인기 초청 강사이지만 사례비를 거의 받지 않는 목사로 유명한 고권능 목사. 현재 8월, 9월 두차례 성바울교회, LA성산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청받은 상태다. 잠시 LA를 들른 고권능 목사를 만나 그의 목회 현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의 간증을 들어 봤다.

고권능 목사가 시무하는 세계로교회는 서울 노원구 상계2동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2,3층과 지하 1층을 본 교회로 사용 중이다. 2층은 본당, 3층은 선교관으로 쓰고 있으며 최근에 200만불 상당한 지하 1층을 구입, 기도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기도

세계로교회는 매일 밤 11시 기도회로 모인다. 이 교회 성도뿐 아니라 개척의 어려움을 갖는 목회자들도 함께 와서 합심으로 기도한다. 뜨겁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활활 타오르게 마련이다. 고 목사의 목회 철학은 ‘하나님의 일만큼은 인간의 방법과 기술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과 기도로써 한다’는 것이다.

목사가 기도의 사람이니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셨다.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헌금이 들어왔고, 성도들의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 자연히 십일조가 늘었고 교회는 매달 형편이 어려운 가정과 개척교회를 도우면서도 교회는 성장해 왔다. 성도들은 기도로 힘을 얻고 말씀으로 은혜받아 전도에도 열정적이다. 성도들은 한달에 5만여 장의 전도지를 갖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이다.

교회를 개척, 성장 후엔 떠나기를 여섯번

국내에서의 교회 개척은 이제 여섯 번째다. 빈손으로 개척하여 교회를 잘 세워놓으면 집도, 차도 다 반납하고 새롭게 교회를 개척했다. 개척해서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 목사는 왜 그렇게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것일까.

“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고생스럽더라도 안일하고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서죠. 개척을 통해 초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복음의 열정을 갖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고 목사가 개척하게 된 또 다른 동기가 있다. 어느날 차가 고장이 나서 지하철을 오랜만에 탔는데, 어떤 사람이 인사하는 게 아닌가. ‘누군데 나한테 인사하나, 집회 나갔을 때 만난 신자인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분이 주일날 교회에서 또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고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 신자였던 것이다. ‘내가 죽일 놈이다. 어떻게 자기교회 신자를 못 알아 본단 말인가.’ 고 목사는 회개했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 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정된 목회를 뒤로 하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또다시 개척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성경 100번 완독하며 성경 중심의 말씀 전해

이날 만남에서 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 은사 강조의 목회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고 목사도 한때 책을 한 번 손에 쥐면 눈을 뗄 줄 몰랐고 그의 서재에 3만여 권의 책이 쌓여 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확신한다. 책들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얻은 게 있었지만 이제는 성경만으로 성경을 말하는 때가 왔다고.

또한 고 목사는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꿈을 꿨다. 설교 원고가 없어 원고를 찾으려는 사이 성도들이 다 빠져나가는 꿈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책망하는 음성을 듣게 됐다. 실제로 성도들이 떠나갔다. 결국 고 목사는 오랫동안 소장해 온 3만권의 책을 다 처분하고 성경을 보기에만 전념했다. 성경을 100번 완독을 한 후에는 원고 없이도 자유자재로 설교가 가능하게 됐다.

“하나님께서 365일동안 설교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나를 들어 깊은 말씀을 끄집어 내게 합니다. 2천번 이상 부흥회를 다녔지만 같은 설교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감사합니다.”

구제 사역은 하나님 사랑 전하는 중요한 사역의 하나

지난 IMF 때는 영등포역과 서대문공원에서 3백~4백여 명의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뷔페식당을 다니며 주방에서 음식을 수거하고 수십 군데의 빵집을 다니며 재고품을 모아 컵라면과 함께 제공했다. 몸이 고단해도 집에 올 때면 마음은 늘 흐뭇했다.

한번은 크리스마스 전날 거지옷을 빌려 입고 깡통을 찬 후 교회 성도들의 집을 다니며 동냥했다. 대부분 야박하게 쫓아낼 뿐, 진심으로 기쁘게 맞아주는 곳은 다섯 집도 안됐다. 고 목사가 크리스마스 예배 때 바로 그 복장으로 강단에 올라 설교하자 교회는 곧 눈물바다가 됐다.

이러한 일을 한 그에게도 사연이 있었던 것. 개척교회를 할 때 그의 이불 속에 발가락이 시커먼 거지가 오줌을 싼 채로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려던 참이었다. 그 때 성령께서는 ‘내 집에 내가 자는데 네가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셨다.

라면을 먹이고 점퍼와 운동화와 양말을 준 후 마침 주머니 속에 있던 5천원을 꺼내 주었다. 고 목사는 “이 곳은 여성도들도 와서 철야 기도하니 다른 곳에 가 보라”고 했다. 그 때 “목사님, 하루 밤만 자고 가면 안 될까요”라고 되묻던 거지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크리스마스 예배 때 그는 “나는 예수님을 쫓아버린 목사”라며 울며 설교했고, 이튿날 교회에는 성도들이 노숙자들을 위해 내놓은 옷과 양말, 운동화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주님과의 만남

고 목사의 이러한 사랑의 목회, 남과 다른 목회는 결국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12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사업이 부도나면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죽기 위해 강원도로 도망쳤다는 고 목사. 급기야 수면제 3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고, 의사는 그가 죽었다고 진단했다.

생과 사를 아우르며 사경을 헤맬 때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천국과 지옥을 뚜렷이 보게 됐고, 3일 후 거짓말처럼 깨어났다. 마치 3~4시간 숙면을 취한 것처럼 개운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경험한 후 6개월 만에 신학대에 갔고, 여름방학 동안 그 당시 70년 된 교회에 첫 부흥회를 참석하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 때 천국에서 뵌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 있다. 세상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며 한사코 돌아가기 싫어하는 그에게 주님은 “내가 너를 보낼테니 너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 후 20년 동안 고 목사는 각 개교회 또는 선교지에서 복음 전도자로 일해 왔다.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집회는 지금까지 65개여 국에서 2천여 회에 달한다.

고 목사는 전세계 교회, 집회에 부흥사로 참석하지만 가능하면 개척교회를 찾아 다니려고 한다.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개척교회를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사례비는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주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은퇴 후 어려운 교회 돕는 부흥사로 활동하고파

모두가 큰 교회를 지향하는 이때 몇천명 다니는 교회로 부흥시키고 사임 후 다시 교회를 개척하길 여섯번째인 고권능 목사. 앞으로의 계획은 후학양성과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 모델 확립, 은퇴후 어려운 해외교회와 농어촌 교회를 돌며 돕는 선교활동으로 압축할 수 있다.

신학교를 통한 제자양육과 후학양성은 그의 오랜 꿈이다. 또한 뜻있는 분이 5천평 땅을 헌물할 계획이기에 그 땅에 교회와 수영장, 레저시설 등 복지시설을 지어 지역사회에 봉사할 계획이다. 그리고 일찍 은퇴해 농어촌 교회와 해외 교회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며 돕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