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존스 목사. ©Christian Post
샘 존스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샘 존스 목사의 기고글인 '서방이 보지 못하는 나이지리아 반기독교 테러의 현실'(The Nigerian anti-Christian terrorism blind spot the West ignores)을 6월 20일 게재했다. 

샘 존스 목사는 아이오와주 험볼트에 위치한 어번던트 라이프 크리스천 펠로우십(Abundant Life Christian Fellowship)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저자로도 활동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수년간 세상은 나이지리아의 테러 문제가 주로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들어왔다. 

서구 언론 매체들은 보코하람(Boko Haram)과 이슬람국가 서아프리카지부(ISWAP)에 대해 일상적으로 보도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잔혹한 만행은 현실이며 마땅히 주목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편중된 관심은 위험한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가 북부에서 벌어지는 지하드(Jihad, 이슬람 성전) 폭력 사태를 주시하는 동안, 기독교인이 다수인 나이지리아 '미들 벨트(Middle Belt, 중부 지역)'를 관통하여 점차 기독교 중심의 남부 지역까지 또 다른 형태의 지하드 확장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서구 독자들은 지도에서 '오요주(Oyo State)'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지함 때문에 최근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오요주는 나이지리아의 최북단에 있지 않다. 많은 외부인이 지하드 활동과는 전혀 연관 짓지 않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생한 공격들은 베누에(Benue), 플래토(Plateau), 카두나 남부(Southern Kaduna)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수년 동안 겪어온 것과 동일한 패턴을 보여준다. 숲속의 요새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무장 단체, 몸값을 노린 납치, 지역 사회 공격, 영토 잠식, 그리고 기독교 밀집 지역에서 커져가는 치안 불안이 바로 그것이다. 

아호로-에시엘레(Ahoro-Esiele) 학교 납치 사건은 가장 최근의 예일 뿐이다. 무장 테러리스트들은 학생과 교직원들을 납치한 뒤 10억 나이라(₦1 billion)라는 엄청난 몸값을 요구했고, 대규모 보안 작전을 촉발시켰다. 결국 당국은 이바단(Ibadan)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력자들을 포함해 몸값 수금 및 분배에 연루된 6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경찰조차 주동자들은 여전히 숲속 은신처에 숨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것은 단순히 돈에 눈이 먼 자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명백한 하나의 패턴을 보여준다. 수년간 나이지리아 중부 지역 전역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풀라니족 민병대(Fulani Ethnic Militia)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들이 결코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고 경고해 왔다. 수많은 기독교 마을이 파괴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났다. 기독교인 농부들은 두려움에 떨며 밭을 버려두고 떠나야만 했다. 수천 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공격들의 배후에 있는 광범위한 이념적, 영토적 차원의 의도를 인식하기보다는, 그저 서로 무관한 지역 내 분쟁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지하드는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투쟁을 통한 이슬람 지배력의 확장이다. 역사를 통틀어 지하드 운동은 확장을 우연이 아닌 의무로 여겨왔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고, 영향력을 넓히며, 영토와 인구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하드 폭력이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이유다. 꾸란(Quran)은 인류를 신자와 불신자로 거듭 나누며, 지하드 단체들이 영토 확장과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명령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꾸란 9장 29절은 무슬림들에게 "알라를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라... 그들이 기꺼이 지즈야(인두세)를 바치고 스스로 굴복함을 느낄 때까지"라고 지시한다. 마찬가지로 꾸란 8장 39절은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고 명시한다. 현대 서구의 평론가들이 어떻게 믿고 싶어 하든 간에, 나이지리아에서 폭력을 자행하는 단체들은 흔히 자신들을 바로 이 틀 안에서 이해한다. 그들의 행동은 무작위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세계관에 뿌리를 둔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를 거듭 증명해 준다. 팽창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외부인들이 멈추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의미 있는 저항에 부딪힐 때까지 계속 나아간다. 

이러한 현실은 베누에와 플래토의 기독교 공동체를 짓밟았던 폭력이 왜 점점 더 남쪽으로 내려와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수년간 보코하람과 ISWAP라는 이름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해 왔다. 하지만 중부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를 유린하는 수많은 공격의 주범은 이 단체들이 아니라 '풀라니족 민병대(FEM)' 조직들이다. 이 그룹들은 여러 주에 걸쳐 대학살, 납치, 마을 파괴, 토지 강탈, 그리고 기독교 인구의 강제 이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폭력의 규모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인과 정책 입안자들은 '풀라니족 민병대'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보코하람이 저질렀다면 즉각 '테러'라고 낙인찍혔을 공격들이, FEM 그룹이 개입되었을 때는 종종 "농부와 유목민 간의 충돌", "도적 떼의 소행", 혹은 일반적인 치안 불안 정도로 묘사되곤 한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보코하람이 마을을 불태우면, 세상은 그것을 테러라고 부른다. 하지만 무장한 풀라니 민병대가 기독교 공동체를 파괴하면, 세상은 종종 다른 변명거리를 찾으려 애쓴다. 

이러한 이중 잣대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것은 기독교인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려버린다. 정직한 분석을 방해한다. 그리고 방관자들이 '이슬람 지하드(Islamic Jihad)'라는 명백한 용어를 인정하기 거부하는 사이,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도록 방치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 증거들은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뚜렷해지고 있다. 

오요(Oyo), 콰라(Kwara), 코기(Kogi)의 숲은 나이지리아 북부의 전통적인 테러 거점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중부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동일한 범죄 패턴이 그곳에서도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은 변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 경고의 징후들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이는 필자로 하여금 매우 뼈아픈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주류 언론은 왜 나이지리아 북부의 테러에 대해서는 온 세상이 알도록 떠들어대면서, 정작 풀라니족 민병대가 중부와 남부에서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에 이토록 익숙해져 있는가? 

만약 피해자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세상이 이토록 철저히 침묵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이지리아 전역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굳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그 외면당한 진실에 대해 계속해서 잔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