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타적 성격으로 인한 집시사역의 어려움
그들과 교제를 위해 거의 매일 집시 마을인 체펠을 찾게 되었다. 체펠을 찾을 때면 언제든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소일하기에 마을을 찾을 때에는 많은 집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교 현장에서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곳은 아마도 집시선교의 현장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늘 방문했던 체펠 마을은 약 25가정으로 120여 명 남짓 집시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가깝게는 형제에서부터 사촌... 모두가 사돈지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안에 경계가 있어 보이고 가족 친척 간에 서로 왕래가 없는 그런 형편이었다. 때로는 형제가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마을을 매번 방문할 때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성껏 준비해서 들어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모두가 자신들만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얻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라도 준비를 해서 가게 되면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손으로 받아 뒤로 감추고 다른 손으로 다시금 달라고 하기도하며 또 앞줄에서 방금 과자를 받은 아이가 집에다 갖다 놓고서 다시금 돌아와 자신은 받지 않았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 아이의 부모도 같이 와서 “우리 아이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는 일은 우리 안에 빈번히 일어나는 일중에 하나일 뿐이다. 어른들이라고 아이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때론 아이들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허다하였다. 아마 이런 모습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생존본능이 아닌가 싶다.
때때로 집시 주민들을 위해서 기증 받은 옷가지 등을 가져가곤 했는데 모두에게 적합한 사이즈에 맞게 나눠주게 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에게 하나라도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게 해서 설령 옷을 얻게 되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색깔이나 디자인이 아니면 그 옷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주게 된다면 좋을 터이지만 그러지 않고 옷을 얻어 가지고 가는 길에 길 가에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또한 받고서 그 옷을 계속 잘 빨아서 입어야 하는데 아이들이나 성인들이나 모두 옷을 입을 때까지 입다가 더러워져서 온갖 냄새로 찌들게 되면 그냥 벗어서 버리면 되는 것이 그들의 사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볼 때마다 더욱 우리 마음에는 저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처음에 라슬로 가정과 몇 몇 가정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해 오던 방법을 원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집시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성격과 다른 사람을 의심하며 특히 선교사가 혹시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에게 사랑과 관심을 더 쏟을까봐 서로를 질시하며 때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로 인하여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이 집시 마을에서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이끄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배를 2005년 1월 첫 주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지만 막상 예배를 시작하려 하니 마땅한 장소가 없던 차에 라슬로 형제가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첫 주일예배의 시작
2005년 새해 시작과 함께 첫 주일 예배를 체펠 집시 마을에서 드리게 되었다. 라슬로 형제의 방은 채 3-4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이었지만 어른과 아이들 모두 40여 명이 모여 비좁은 가운데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모두에게 처음 드리는 예배는 낯이 설기가 그지없었다. 한 번도 예배에 참석을 해 본적이 없어서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기도 하고, 기도시간이 되었지만 어색해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히죽 히죽 웃는 모습이며, 불러본 적이 없는 찬송가, 말씀을 들어도 진지함보다는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한 없이 어설퍼 보이기만 했던 첫 예배, 그러나 예배를 진행하는 우리의 얼굴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눈물은 그동안 우리의 수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시고 너무도 기뻐하셨을 하나님 그분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동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며 지난 시간들은 오늘 첫 예배를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척박한 마을에서 앞으로 중단 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다.
그들과 교제를 위해 거의 매일 집시 마을인 체펠을 찾게 되었다. 체펠을 찾을 때면 언제든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소일하기에 마을을 찾을 때에는 많은 집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교 현장에서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곳은 아마도 집시선교의 현장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늘 방문했던 체펠 마을은 약 25가정으로 120여 명 남짓 집시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가깝게는 형제에서부터 사촌... 모두가 사돈지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안에 경계가 있어 보이고 가족 친척 간에 서로 왕래가 없는 그런 형편이었다. 때로는 형제가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마을을 매번 방문할 때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성껏 준비해서 들어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모두가 자신들만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얻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라도 준비를 해서 가게 되면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손으로 받아 뒤로 감추고 다른 손으로 다시금 달라고 하기도하며 또 앞줄에서 방금 과자를 받은 아이가 집에다 갖다 놓고서 다시금 돌아와 자신은 받지 않았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 아이의 부모도 같이 와서 “우리 아이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는 일은 우리 안에 빈번히 일어나는 일중에 하나일 뿐이다. 어른들이라고 아이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때론 아이들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허다하였다. 아마 이런 모습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생존본능이 아닌가 싶다.
때때로 집시 주민들을 위해서 기증 받은 옷가지 등을 가져가곤 했는데 모두에게 적합한 사이즈에 맞게 나눠주게 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에게 하나라도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게 해서 설령 옷을 얻게 되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색깔이나 디자인이 아니면 그 옷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주게 된다면 좋을 터이지만 그러지 않고 옷을 얻어 가지고 가는 길에 길 가에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또한 받고서 그 옷을 계속 잘 빨아서 입어야 하는데 아이들이나 성인들이나 모두 옷을 입을 때까지 입다가 더러워져서 온갖 냄새로 찌들게 되면 그냥 벗어서 버리면 되는 것이 그들의 사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볼 때마다 더욱 우리 마음에는 저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처음에 라슬로 가정과 몇 몇 가정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해 오던 방법을 원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집시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성격과 다른 사람을 의심하며 특히 선교사가 혹시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에게 사랑과 관심을 더 쏟을까봐 서로를 질시하며 때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로 인하여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이 집시 마을에서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이끄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배를 2005년 1월 첫 주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지만 막상 예배를 시작하려 하니 마땅한 장소가 없던 차에 라슬로 형제가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첫 주일예배의 시작
2005년 새해 시작과 함께 첫 주일 예배를 체펠 집시 마을에서 드리게 되었다. 라슬로 형제의 방은 채 3-4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이었지만 어른과 아이들 모두 40여 명이 모여 비좁은 가운데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모두에게 처음 드리는 예배는 낯이 설기가 그지없었다. 한 번도 예배에 참석을 해 본적이 없어서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기도 하고, 기도시간이 되었지만 어색해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히죽 히죽 웃는 모습이며, 불러본 적이 없는 찬송가, 말씀을 들어도 진지함보다는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한 없이 어설퍼 보이기만 했던 첫 예배, 그러나 예배를 진행하는 우리의 얼굴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눈물은 그동안 우리의 수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시고 너무도 기뻐하셨을 하나님 그분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동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며 지난 시간들은 오늘 첫 예배를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척박한 마을에서 앞으로 중단 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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