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중 가장 화려한 리더십은 비저너리 (visionary)의 리더십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무언가 앞날을 향하여 질주하며 그것에 따라 환호하는 팔로우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비전의 리더십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꿈을 꾸게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리더십의 맹점은 잘못하면 그 비전의 음지에 갇혀진 사람들을 외면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불만에 빠진 사람들이다.

요즘 한국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왜 고공 행진을 계속하던 리더십이 그렇게 곤두박질을 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로 분주하다. 더구나 소고기 수입 사태로 인해 대단히 곤경에 처해 있는 대통령을 보게 된다. 나는 정치에는 문외한이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수입 소고기 사태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식견이 결여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을 보면서도 이 사람 의견을 들어보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의견을 들어 보면 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수입 소고기 사태를 뛰어 넘는 더 큰 무언가 이슈가 이번 사태에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다.

나 자신도 목회를 하면서 많은 교인들과 상대하게 된다. 더구나 이민 교회 교인들은 다 출신이 다양해서 그런지 의견들이 다양하다. 거기에는 교단 배경도 다르고 미국 거주 년수도 다르고 세대의 차이도 다각각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눈, 교회에 대한 시각도 천차만별이다. 이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한 초점으로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종종 신문 기사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목양의 리더십과 관련되어 있음을 어느 날부터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위와 권한은 목회자와 대통령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목양적인 리더십이라는 공통 분모가 존재함을 인식하게 된다. 대통령도 목회자도 목양이라는 성격을 담고 있다. 목양이란 한마디로 양을 돌보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란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돌보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개인적으로 사랑을 주고 받는 그런 특성이 있다. 아무리 큰 교회 목사라도 그 목양적인 요인을 소홀히 한다면 그 목사는 좋은 목사가 될 수가 없다. 사람을 늘 의식하며 사람들이 가지는 어두운 문제, 고통의 문제를 귀담아 듣고 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목양 의식이다. 목양은 영혼의 깊은 데 까지 그 아픔을 다루는 의식이다.

이 대통령은 CEO 출신의 대통령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력있게 문제를 돌파하고 외교를 잘하고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한 경영적 마인드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 같다. 바로 목양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목양이 비전과 경영만큼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변화의 세상에서 목양과 같은 한가한 리더십이 왜 필요한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전과 효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국민들의 일정 부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소외된 사람, 음지에 있는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대통령에게는 필요하다. 온 국민들이 다 화려한 글로발화와 영어 공교육과 장밋빛 소득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에는 수십만의 실직자들이 존재하며, 파산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소 기업인들과 지방 출신들의 소외된 그룹들, 성장의 그늘 아래 소외 당한 사회적 약자 그룹들이 셀 수도 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대통령이 품고 있는 그 멋진 비전과 세계화에 동참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과 아픔을 품고 있다면 대통령의 그 멋진 미래의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불만 세력으로 욕구 분출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래 한국의 한 마리의 잃어 버린 양이 될 것이다.

제왕적 리더십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과 긍휼의 눈매로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양의 리더십이 우리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