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창세기에 나타나는 요셉 시절에는 풍년 7년에 이어 흉년 7년의 고통의 시절을 맞이한다. 그 때 요셉은 애굽의 모든 창고를 열고 비축한 식량을 일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리고 심지어는 인근 국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푼다. 그 때 아버지 야곱과 형들, 그리고 동생 베냐민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한다. 우리의 인생의 계절에도 반드시 침체기는 찾아온다. 사업에서도 침체기가 찾아온다. 한 나라의 경제 사이클에도 침체기는 찾아온다. 이러한 침체기가 지속되면 믿지않는 사람들은 자살을 하기도 하고 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상당히 고통의 해를 겪고 있다. 서브 프라임으로 인해 부동산과 모기지 사업 불황, 고유가, 미국 내의 반 이민 정서등 한인들이 맞을 수 있는 직격탄을 계속 맞고 있다. 불체자들이라도 해도 우리 곁에 있을 때 도시가 활기가 있고 살아있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거운 침체의 그림자만이 가득 드리우고 있다. 내가 사는 애틀랜타도 웬지 힘이 빠져 보인다. 한인들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그동안 아무리 어렵다하여도 부동산 경기며 일반 경기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불황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올해는 더욱 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불경기가 될 것이라고 세상 미디어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하기에 미국의 경기가 지난 몇 년동안 잘 된다는 이야기를 한번 더 들어 본 적이 없다. 늘 불황이다, 불경기다 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그런지 경제 호황을 체감한 적이 거의 없다.

미국의 경제가 좋은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사는 미국의 경기는 이민자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누린 그런 호황의 시절들은 거의 다시 도래할 것 같지 않다. 이제는 모든 한인 이민자들이 새로운 삶의 질서에 적응하고 새로운 경제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본다. 더구나 미국이 지향하는 반 이민 정서는 과거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트렌드로 우리는 예의주시하게 된다. 이민자들이 앞날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들을 지혜롭게 만들어 나갈 때가 아닌가 본다. 그런 점에서 교회들이 한인 사회와 연계하여 전략적인 생존 방식의 공생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민자들의 투표 등록 운동, 이민자들이 주류 사회로 보다 진입하는 데 교회들이 적극적인 도우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앞날을 우리 손으로 헤쳐 나가는데 일조를 해야 한다. 교회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교회를 개인의 영적 게토로만 만들지 말고 교회의 힘들을 결집하여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확산하는 선교적인 도구로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본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들의 획기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의 경기로부터 면제 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경제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경기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 아니다. 세상 경기를 너무 의식하거나 근심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에 손상을 입게 된다.

불경기의 해는 오히려 믿는 성도들에게 같은 불같은 시험으로 인해 믿음이 갱신 될 수 있는 축복의 해다. 우리 성도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힘의 근원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 우리는 이 말씀에 믿음을 걸고 어려운 한 해 하나님께 내 삶과 사업과 재정을 송두리째 맡기는 믿음의 여정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

어려운 해일수록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간증들이 쏟아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전적으로 나의 인생, 나의 사업, 그리고 나의 직장을 통제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최악의 불경기에 최고의 영적 축복을 경험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