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대비없이 전쟁을 맞은 한국군은 추풍낙엽 같았다. 밀리고 밀린 한국군은 7월 미군의 참전으로 힘을 얻는 듯했으나, 계속 밀렸다. 밀리고 밀리다 겨우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낙동강 방어선은 눈물겨운 사투였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미국 정부가 이승만 대통령 망명을 종용했단다. 그만큼 전황은 절망적이었다.
이 상황에 부산에서 기도회가 있었다. 모르긴 해도 많은 기도가 있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두 기도회가 있다. 하나는 초량교회(한상동 목사)에서 열린 고려신학교 교장인 박윤선 박사와 박형용 박사가 중심이 된 기도회다. 초량교회가 피난객 목사와 장로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제공했고, 목사와 장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특별 기도회를 갖게 되었다.
8월 30일경에 시작된 이 기도회는 당초 일주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박윤선 목사가 신사참배의 죄를 고백하자 기도회는 통곡이 가득했다. 너도 나도 회개하기 시작했고, 기도회가 계속 이어졌다. 목사들은 양떼를 버리고 도망 나온 삯군 목자라며 회개했다. 모두 자기 죄악 때문이라며 회개했다. 초량교회에는 절규 같은 기도 소리가 가득했다. 피난 내려간 250여명의 목사 장로들의 애끓는 절규가 부산의 하늘을 메아리쳤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 중앙교회(노진헌 목사)에 또 다른 기도회가 있었다. 한경직 목사 등 공산 치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이북 출신 목회자들과 피란 교역자들이 모여 기도했다. 그들은 ‘한국기독교연합 전시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매일밤 예배당에 모여 나라의 운명을 걸고 부르짖는 구국기도회로 모였고, 낮에는 고통당하는 전쟁 피난민 구호활동을 실천했다.
한경직 목사는 처음부터 기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앞장섰다. 한목사는 피난 내려가며 이미 대전에서 ‘대한 기독교 구국회’를 결성하여 피난민들을 돕는 일을 실천했고 부산에 내려와서도 동일한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기도하되, 지금 당장 굶어 죽어가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라는 실천적 영성을 강조했다.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국제적 안목과 영어 실력을 갖추었던 한경직 목사는 기도회 중 결의를 통해 트루먼 미국 대통령, 유엔(UN) 사무총장,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에게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를 구원해 달라"는 긴급 구호 및 군사 지원 요청 메시지를 작성해 타전했다. 이런 기도와 간청이 미국 주류 사회와 유엔 사회를 움직이게 되었고 전쟁 상황을 역전시키는 인천 상륙작전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다.
한경직 목사는 미국 선교사이자 종군기자였던 밥 피얼스(Bob Pierce) 목사와 긴밀하게 동역했다. 그들은 부산 송도 등에서 특별 부흥회를 함께 인도하며 전쟁고아와 전쟁 과부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이런 눈물의 기도, 협력과 지혜가 씨앗이 되어 전쟁고아를 돕는 구호기관 기독교선명회가 탄생하였는데, 지금 지구촌의 대표적인 구호 기관인 월드비전 전신이다.
초량교회에서는 한상동, 박윤선, 박형용목사 등이 마룻바닥을 적시며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회개 기도를 했고, 중앙교회에서는 한경직 목사 등이 "이 나라의 자유를 지켜주시고 피란민을 구원하소서"라며 실천적 기도를 드렸다. 이 두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그래서 기도회가 무르익던 1950년 9월 15일 기적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 기도가 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