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병원 침대에 누워 이제 마지막 순간만을 남겨둔 한 어린 소년이 아버지와 소통하려 애썼다. 기계음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고 있었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햇빛이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한 소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제 마지막 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몸은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2] 침대 곁에는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버지는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때 소년이 떨리는 손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다.
[3] 아버지는 급히 펜과 종이를 건네주었다. 소년은 힘겹게 손을 움직였다. 한 글자, 또 한 글자. 삐뚤빼뚤하고 힘없는 글씨였지만,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종이 위에는 짧지만, 너무도 선명한 한 문장이 남았다.
“JESUS IS REAL.”(예수님은 진짜예요).
그 순간 병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4] 아버지는 그 글을 바라보다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문장이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한 영혼이 남긴 마지막 고백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한 분이 너무나 분명했던 것이다. 바로 예수님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붙잡고 살아간다. 돈, 명예, 건강, 성공, 사람들의 인정, 미래에 대한 계획들….
[5]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문 앞에 서게 되면,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게 된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힘을 자랑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보다 더 확실한 한 가지를 붙들고 있었다.
“예수님은 진짜예요.”
생각해 보면 신앙의 본질은 복잡한 지식을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6] 때로 우리는 신앙을 너무 어렵게 만들 때가 있다. 신학적인 설명, 교리적인 논쟁,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아이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진리를 붙들고 있었다.
“예수님은 진짜예요.”
마 27:54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7]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Truly’ this was the Son of God.”
불신자들도 예수님이 진짜라고 고백했다.
아이가 힘없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글자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JESUS IS REAL.”
[8] 쉬 알아보기 힘든 이 세 글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요즘 아이들 용어로는 “레알!”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레알이시다.
그분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시다.
그분의 사랑도 진짜다. 십자가도 진짜다. 부활도 진짜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혜도 진짜다. 그분은 소위 말하는 ‘짜가’가 아니다. 짝퉁도 아니다.
[9] 그래서 믿음이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습관이 아니다. 믿음은 마지막 순간에도 붙들 수 있는 한 분을 아는 것이다.
세상이 흔들리고 몸이 무너지고 삶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여전히 붙들 수 있는 이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쩌면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시는지 모른다.
“너는 정말 내가 진짜라고 믿느냐?”
[10] 평안할 때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죽음을 앞두고서도 “예수님은 진짜예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 그것이 진짜 믿음이다. 언젠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 역시 그 소년처럼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다.
“JESUS IS REAL.”(예수님은 진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