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서울지역 부활절 연합 예배 설교 동영상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다. 설교자의 대통령 칭송이 도를 넘었다. 부활절에 전해야 할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했다. 동영상을 들어보면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모습이 한국 교회 보기에도 아름답다며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대통령에 따르면 대통령과 설교자가 친구라는데 그렇다면 설교자 선정부터 실패다.
1966년에 대통령 조찬 기도회로 시작한 국가 조찬기도회가 자주 비판받는다. 정교(政敎) 유착과 권력 옹호 혹은 권력 정당화에 대한 비판이다. 정권을 칭송하고 사람을 높이는 예배나 기도회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이 많았다. 설교나 기도가 대통령을 위한 용비어천가가 된다면 무서운 타락이다. 설교나 기도로 대통령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것은 악한 일이다.
군종 목사 생활을 20년 했다. 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한 시절도 있었고, 어렵고 불편한 날들도 있었다. 불편한 상황 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지휘관과의 갈등이었다. 억울한 때도 있었고, 어쭙잖은 원칙 때문에, 스스로 갈등을 선택했던 때도 있었다. 어리고 미숙한 시절에 두 주인을 섬기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 갈등을 스스로 선택했던 때도 있다.
예배당을 지키려고 지나치게 고집을 피웠던 시절이 있다. 강당 시설이 부족했던 부대에서 예배당을 간부 교육이나 강연 장소로 빌려 달라던 지휘관이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 섬기며 전도 기회로 삼아도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예배당을 우상처럼 지키며 깐깐하게 굴며 갈등을 자초했다. 그 철없던 시절의 고집과 갈등은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갈등하고 고민했던 문제 중의 하나가 지휘관 환영 예배, 환송 예배였다. 군인 교회는 부대 지휘관이 취임하거나 이임할 때 감사 예배를 드린다. 신앙인이 하나님께 감사 예배드리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비신자인 지휘관의 환영 예배나 환송 예배로 지휘관을 배려하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배의 주인공이 지휘관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우리들은 지휘관의 비위를 맞추거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배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쉽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장면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지점에서 지휘관과 갈등도 피하지 않았다. 이럴 때 많은 지휘관이 너그럽게 양보해 주셨고, 몸을 낮춰 주셨다. 돌아보면 하나님 은혜로 그 강들을 건너왔다. 이 기회에 그 지휘관님들의 너그러운 양보에 감사드린다.
대통령. 지휘관, 회사 사주 등 실력자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실력자의 업적을 찬양하는 설교를 하고, 실력자를 칭송하는 기도를 드리면 안 된다. 지도자를 응원하고 위하는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자칫 하나님 자리에 대통령이나 힘 있는 사람을 앉히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예배와 신앙의 왜곡이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이다. 나아가 그 실력자의 영혼에 독약을 먹이는 행위다.
인류의 두 번째 범죄가 가인의 죄다. 가인은 예배받으시는 하나님 마음보다 자기만족에 집중함으로 분노하고 살인했다. 가인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예배를 한 듯하다. 예배나 기도회는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 그리고 감사를 드리고 간구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가인처럼 우리 자신과 사람을 섬기려는 실수를 범한다.































![[신성욱 교수 칼럼] Happy Resurrection Day!](https://kr.christianitydaily.com/data/images/full/145842/happy-resurrection-day.jpg?w=250&h=154&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