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일까? 다양한 답변과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기도와 말씀 사역이다’라고 믿는다.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집사들을 세우며 사도들 자신이 헌신해야 할 직무를 기도와 말씀 사역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집사들에게 구제와 봉사를 맡기고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자 말씀이 점점 왕성하였고 교회가 부흥했다(행6:7).

교회는 이 두 가지 사역에 집중하는 전통을 비교적 잘 지켰다. 그런데, 중세에 교황들과 교권주의자들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왜곡이 말씀의 왜곡이었다. 교회와 성직자들이 말씀에 대한 신실함을 상실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말씀 사역의 회복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래서 기독교 (Protestant) 전통은 대체로 말씀 사역을 강조한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사역자를 위한 말씀 훈련, 설교 훈련을 충실히 했다. 그런데 말씀 사역만큼 강조되어야 할 기도에 관한 훈련이나 기도 신학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신학교에서 기도 훈련을 하고 기도 시간을 갖게 하고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를 강조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만큼 기도를 가르치지 않았고, 지금은 훨씬 미흡하다.

예수님은 지상 공생애를 통해서 기도를 가르치셨고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제자들도 기도에 관해서 배우기를 원했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거듭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는 비유도 많다.

그러나 제자들은 단 한 번도 예수님께 “우리에게 설교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예수님은 설교하는 방법을 보여 주시기 위해 설교하는 법을 가르친 예도 없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비유는 많지만,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는 없다.

물론 설교나 말씀 전하는 사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곡해하지 않아야 한다. 성경 곳곳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논점은 교회가 말씀 사역에 과도하게 기울어져 기도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는 현실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교회는 기도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실상은 기도를 등한히 한다.

얼마 전 미국 교회 조사기관으로 잘 알려진 바나 그룹(Barna Group)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목회자의 3%만 기도를 중요한 사역으로 인정한단다. 이것이 미국 교회 현실이다. 한국 교회는 조금 나을까? 교회나 사역자가 기도를 등한히 여기는 것은 주님 말씀을 등한히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기대하지 않은 신앙 근본의 문제다.

<기도하는 교회(A Praying Church)>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목회자들을 위한 기도 세미나 45분짜리 첫 강의를 마치고 둘째 강의를 시작하며 강사가 물었다. “목사님들 평생에 기도에 대해서 얼마나 배우셨나요?> 한 참석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45분요!> 이 대답에 좌중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의 냉정한 현실인진 모른다.

어느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배우지 않는다’라고 했다. 인생 승패를 좌우하는 일(결혼 생활, 부모 되기)에 관해 배울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과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도도 배울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잘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신앙생활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