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50년 동안 운영해오던 대북방송을 전격 중단한 것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선행 조치로 해석되지만, 북한 주민의 외부 통로를 절단하는 방법 밖에 없었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인권적 가치를 앞세우는 민주당 정부가 정작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어 이율배반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중순 대북 라디오 5개와 TV 방송 1개를 전부 중단했다. 북한이 심리전 차원에서 해오던 대남 방송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 것이란 보도가 있었으나 국정원 측의 공식 해명이 없는 사이에 억측만 무성하다.

대남 방송을 전격 중단한 결정이 만약 일부 보도 내용처럼 북한의 대남방송 중단에 따른 상응 조치라면 적절하다 할 수 없다. 북의 대남방송은 남파 간첩에게 난수표를 읽어주는 이른바 암호 지령용 방송이었다. 반면에 국정원의 대북방송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한 벗의 역할을 해왔다. 완전히 다른 성격인데 북한이 중단했다고 우리도 따라서 중단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 가운데 대북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방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고 남한의 생활을 그대로 전해주기 때문에 거부감 없어 듣다가 어느덧 남한 생활을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최근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외부 정보 차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남한 드라마나 노래를 듣다가 발각되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거나 심지어 공개 총살형에 처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눈을 떠 집단적인 저항 세력이 되지 않을까 두려운 거다. 그전에 싹을 잘라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게 그들의 현실이자 고민이다.

북한이 대북 전단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을 보여 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탈북민 인권단체가 제작한 대북 전단지 중엔 김정은 일가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와 모욕적인 표현도 일부 들어 있어 유독 북이 거칠게 반응해 왔다.

그런 북한을 달래기 위해 새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 전단 살포를 막고 확성기 방송을 멈추더니 아예 대북 확성기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또 통일부 정동영 장관의 건의에 따라 한-미 연합 훈련을 연기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북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에 방점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반응은 보면 정부의 바람과는 영 딴판이다. 북 김여정은 지난달 28일 담화에서 "이제와 스스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엄청난 오산"이라며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북의 이런 쌔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남이 무슨 목적으로 유화적으로 나오는지 아는 북으로선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궁극적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도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모욕적인 험담을 퍼부으면서 뒤로는 거액의 경제 지원을 요구하고 핵무기 개발에 시간을 버는 이중 전략을 폈다.

하지만 북의 속셈이 뻔히 보이는 데도 무조건 저자세로 구걸하듯 매달리건 남북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전 문 정부에서 경험했듯이 북한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위한 불쏘시개 정도로 남한 정부를 이용하려 들 게 뻔하다.

그런데도 북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은 대북방송을 끊고, 한미연합 훈련까지 연기하려는 건 처음부터 북의 정략에 말려드는 매우 잘못된 정무적 판단이라고 본다. 더구나 북 주민의 숨통 역할을 한 대북방송을 끊은 건 부적절하고 비인도적인 처사라 비난을 받아도 싸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 라디오 방송을 북에 송출해온 한국순교자의소리(한국VOM)가 최근 방송 횟수를 기존 하루 4회에서 5회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VOM의 대북 복음 방송 송출 확대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 중단에 이어 국정원의 대북 방송까지 끊긴 상태에서 북 주민에게 기독교 복음 전파의 통로를 이어주는 간절한 바람이 마침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방송엔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설교와 탈북민이 낭독하는 성경 말씀이 추가로 편성된다고 한다. 설교와 성경 전체 낭독 방송을 통해 북한 지하교인들이 직접 받아 적으며 신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한국VOM 측의 바람이다.

한국VOM 에릭 폴리 대표는 "전략적 필요에 따라 중단된 정부 대북방송과는 달리 기독교 방송은 언제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지금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복음을 접할 기회가 더 넓어진 시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북한 주민들 가운데 약 14~20%가 암시장에서 구입한 이어폰 전용 라디오로 외부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대북방송이 중단된 상태에서 앞으로 북 주민들은 거의 유일한 대북 복음 방송 청취에 매달리게 될 거란 거다.

다만 이 복음방송은 정부나 공공 기금 지원 없이 오직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동참이 필수적이다. 북한 지하교인 뿐 아니라 북 주민의 영적 양식이 될 대북 복음방송이 열악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중단되는 일 없이 통일이 되는 날까지 쭉 이어지게 되기를 희망한다.